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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허가로 공격당한 판사 "감염병 확산 단언하긴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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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담임목사가 지난 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구급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담임목사가 지난 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구급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광복절 집회에 참석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 등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집회를 허가한 판사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광화문 시위를 허가한 판사를 해임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하루 만에 17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21일 답변 기준인 20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행정법원은 이례적으로 집회를 허가한 결정문을 공개했다.

행정법원 행정11부(박형순 재판장)는 14일 10개 단체의 신청 중 2건의 집회금지 집행정지를 인용했다.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이끄는 ‘4‧15 부정선거 국민투쟁본부(국투본)’와 보수단체 ‘일파만파’의 것이다.

서울시 “불의의 사태 발생” 우려했지만…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정부 및 여당 규탄 관련 집회에서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투본은 15일 0시부터 밤 11시 59분까지 서울시청역 인근의 인도와 진행방향 전 차로에 2000명이 모인다고 신고했다.

재판부는 “일부 일탈 행위자를 제외하고는 방역수칙을 준수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판단했다. 해당 단체가 과거 서초역 주변에서 개최한 집회에서 체온 측정, 손 소독, 명단 작성 등 자체 방역대책을 시행한 것을 이유로 들었다.

또 지난 7일 여의도에서 총 1만여명 규모의 집회가 열렸으나 이로 인해 코로나19가 확산했다는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옥외집회에서 코로나19 확산사례가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는다면 향후 개최될 집회에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시는 “만에 하나 불의의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 역학조사 등을 위한 행정력과 의료역량이 투입되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로 인해 소요되는 의료역량이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없을 정도로 넘어선다는 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을뿐더러 이것이 집회 개최 자체를 막아야 하는 절대적인 사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현시점에서 이 집회로 인해 감염병이 반드시 확산하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고 강조하면서 “집회의 자유와 국민의 보건을 적정선에서 조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판부 “100명이면 사회적 거리 두기 가능”

일파만파는 동화면세점 앞 인도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00명이 참가해 시위 및 행진을 벌이겠다는 계획이었다. 재판부는 “감염병으로 인한 국민의 건강 보호 또한 경시되어선 안 된다”면서도 “일정 지역 내 집회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고된 집회 시간이 12시간이지만 실제 집회는 약 4~5시간으로 예정됐고, 동화면세점 앞 인도와 그 일대 2개 차로의 면적을 고려하면 100명의 집회 참여자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준수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예상했다.

재판부는 집회가 실내보다 상대적으로 감염 우려가 적은 옥외에서 개최된다는 것도 허가의 이유로 들었다. 서울 소재 여러 공연장에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객이 운집하고 있으나 제한하지 않으면서 집회를 금지하는 건 국민의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이 사건 집회가 신고 내용과 달리 이루어질 것이라고 미리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당일 참가자들이 대거 몰리면서 동화면세점 앞 세종대로 집회 참가자는 주최 측 추산 1만여명이었다.

노조 집회는 감염병 확산 위험 때문에 불허?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위치한 도심내 집회금지 안내문의 모습.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일대에 위치한 도심내 집회금지 안내문의 모습. [연합뉴스]

또 같은 재판부가 지난 6월에는 노동조합의 ‘아시아나 부당‧불법 정리해고 철회 촉구 결의 대회’는 허가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며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재판부는 “해당 집회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참석한 경우 역학조사 및 방역이 매우 곤란할 것으로 보인다”며 감염병 확산의 위험성을 이유로 집회를 불허했다.

이에 대해 행정법원 관계자는 “이번에 인용된 사건은 자신들의 집회 자체에 대한 집행정지를 구한 사건으로 6월과 신청 취지, 집행정지의 효과가 완전히 다르다”고 해명했다. 6월 집회의 경우 종로구청에서 제정한 집회제한 고시 자체의 집행정지를 요구했기에 이를 인용한다면 그 장소에서 집회하려는 모든 단체에 효력이 미치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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