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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전환 늘자 월세 누르기···“임대인·임차인 싸움 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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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을 기존 4%에서 2.5%로 하향조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정부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전월세 전환율’을 기존 4%에서 2.5%로 하향조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19일 서울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 아파트 단지 내 공인중개업소의 모습. [뉴스1]

정부가 오는 10월부터 전·월세 전환율을 기존 4%에서 2.5%로 낮추기로 했다. 19일 열린 제3차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확정된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행 4%인 전·월세 전환율이 월세 전환 추세를 가속하고, 임차인의 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는 지적 등을 고려해 전·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 #전ㆍ월세전환율 4→2.5%로 낮춰 #신규 계약 적용불가, 연장 때만 적용 #"시장 원리 또 왜곡, 혼선 가중될 것"

정부ㆍ여당이 밀어붙여 통과한 ‘임대차 3법’의 후속 조치다. 이 중 전·월세 상한제(5%)와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이 시행되자, 집주인들이 기존 전세 매물을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결국 임차인의 월세 부담이 커졌다는 지적에 정부가 또 강화된 규제책을 내놨다. 사실상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해 강제로 월세를 37.5% 이상 낮추는 것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추가로 계약연장 할 때 월세 부담이 줄어들겠지만, 신규 계약에는 적용할 수 없어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주택 유형별, 지역별 편차가 크다 보니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하던 것까지도 정부가 일괄적으로 비율을 적용토록 강제해 결국 시장 원리를 왜곡하고 부작용을 낳을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계약 연장 때만 적용, 신규 계약에는 적용 불가 

전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월세 전환율 하향 조정.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재 주택 임대차보호법 상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될 때 적용되는 전·월세 전환율은 4%다. 한국은행 기준금리(연 0.5%)에 3.5%를 더한 수치다. 정부는 기준금리에 덧붙는 전환율을 3.5%에서 2%로 낮춘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4%인 전·월세전환율이 시행령이 개정되는 10월께 2.5%로 낮아진다.

이 비율은 임차인의 전세대출금리(2%대), 임대인의 1년 만기 정기예금과 같은 원금보장 투자상품 수익률(1% 중후반)과 주택담보 대출 금리(2%대)를 고려해 결정했다는 게 정부 측 설명이다. 즉 4%의 전·월세 전환율을 적용할 경우 집주인의 임대수익이 시중 투자상품과 비교해 너무 많다는 게 정부 셈법의 바탕이다.

만약 5억 원짜리 전세를 보증금 3억 원짜리 반전세로 바꾼다면, 세입자는 현재 전·월세 전환율 4%를 적용(2억원X4%)해 1년에 800만원, 월세 66만6000여원을 내야 한다. 하지만 전·월세 전환율이 2.5%가 되면 연간 임대료는 500만원, 월세로 따지면 41만6000여원이 된다. 이에 따라 저금리와 정부 규제로 전세를 월세로 바꾸려는 집주인의 기대수익률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역, 주택 유형별 편차 큰데 일괄 적용 

지역·주택에 따라 다른 전월세 전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지역·주택에 따라 다른 전월세 전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문가들은 시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을 문제로 지적한다. 시장에서 통용되는 전·월세 전환율은 법정 전환율보다 높다. 지역, 주택 유형, 면적에 따라 편차가 크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6월 기준 전국 주택 전·월세 전환율은 5.9%다. 서울의 경우 평균보다 낮은 5%지만, 지방은 7.1%로 높다. 지방이더라도 아파트의 전환율은 5%인데, 단독ㆍ다가구의 경우 9.1%에 달한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면적, 층과 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정부가 이를 2.5%로 단일화한 것이다. 특히 전·월세전환율이 높았던 지방 다가구주택의 타격은 크다. 1000만원 보증금을 월세로 돌릴 때 약 8만여원 받던 것을 2만원만 받아야 한다.

면적에 따라 다른 전월세 전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면적에 따라 다른 전월세 전환율.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주택 도시연구실장은 “지방의 경우 월세 미납, 공실 우려에 따른 리스크 프리미엄도 더해져서 시장에서 유연하게 정하던 것을 일률적으로 낮춰 혼선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정책 저항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집주인이 월세를 올리지 못하는 만큼 임대 공간의 질이 떨어지거나, 임차인에게 유지보수 비용이 전가될 우려도 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임대인이 그동안 비용 처리 하지 않고 임대료에 포함했던 부분을 비용으로 환산, 추가 옵션비용을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고 진단했다.

집주인이 2.5% 전환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는 식의 처벌 규정은 없다. 그러나 정부는 강행 규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토부 측은 “집주인이 월세를 더 올릴 경우 임차인은 초과분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이 이를 거부하면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은 더 잦아질 수밖에 없다. 박일규 법무법인 조운 대표변호사는 “규제가 너무 많아 결국 임차인과 임대인 중 누가 비용을 더 부담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더 커졌고 각종 소송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세입자가 이사 나간 이후에도 퇴거한 주택의 전입 신고, 확정일자 현황 등을 볼 수 있도록 정보 열람권을 확대하기로 했다. 집주인이 “직접 살겠다”고 거짓말을 하며 전·월세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일을 막으려는 조치다. 바뀐 임대차법에 따라 집주인이 살지 않을 경우 전 세입자는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집주인과 세입자의 대립 양상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세입자에게 집 주인 감시까지 시키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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