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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UAE 26년만에 화해? 기대 속 감춰진 기막힌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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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아랍권은 아라비아만으로 부름) 연안 지역의 아랍국가 아랍에미리트(UAE)가 8월 13일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 지역의 외교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1979년 이집트에 이어 1994년 요르단과 수교한 뒤 26년 만에 이뤄진 아랍권과의 화해라는 점에서 역사적인 것은 사실이다. 서구와 이스라엘은 큰 기대를 보인다.

이스라엘·UAE 13일 수교 합의 역사적 #아랍·이슬람 30개국 승인·입국 등 거부 #이스라엘을 국가로 여기지 않고 적대시 #지도에서 말살하고 인적교류 끊어와 #‘반이스라엘’ 정치적으로 이용 다반사 #이슬람권 정치인 포퓰리즘 정책 활용 #이란, 반미·반군주제·반이스라엘 외쳐 #아랍 공화국 다수 국민, 적대적 시각 #UAE 등 군주국은 협력·이익에 눈떠 #아랍권 공화국-군주국 간에 이견 많아 #이스라엘과 대화해로 가는 길은 험난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하기로 발표하자 8월 14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나불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부터),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왕세제, 베냐민 네탸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에 모욕을 의미하는 발자국을 찍어 놓은 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랍에미리트(UAE)가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하기로 발표하자 8월 14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나불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부터), 무함마드 빈 자이드 UAE 왕세제, 베냐민 네탸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진에 모욕을 의미하는 발자국을 찍어 놓은 채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UAE-이스라엘 수교, 대화해의 시작일까

하지만 이번 수교가 중동권의 이스라엘 적대정책을 종식하고 대화해 시대를 여는 시작이 될지, 아랍권·이슬람권의 대대적인 반발을 불러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아랍권 내부를 깊숙이 살펴보면 복잡한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얽히고설킨 중동과 이스라엘 관계와 그 전망을 살펴본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8월 13일의 수교 발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자 명의로 나왔다. 서구 미디어에 MBZ라는 약자로 등장하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제는 와병 중인 형인 할리파 빈 자이드를 대신해 국정을 이끌고 있다. 할리파 반 자이드는 UAE를 이루는 7개 토후국 중 가장 크고 석유 생산의 98%를 차지하는 아부다비의 에미리트(이슬람 군주)로 UAE의 대통령과 군 통수권자를 겸해왔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성명은 이스라엘과 UAE 대표단이 투자·관광·직항노선·보안·통신과 여타 사안에 대한 양자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앞으로 몇 주 안에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UAE와 이스라엘 양국은 조만간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 대사와 대사관을 교환하게 된다.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 네타냐에 있는 평화의 다리에 지난 8월 16일 이스라엘 국가와 아랍에미리트(UAE)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13일의 수교 발표를 축하하는 양국 국기 게양이다. A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북부 도시 네타냐에 있는 평화의 다리에 지난 8월 16일 이스라엘 국가와 아랍에미리트(UAE)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13일의 수교 발표를 축하하는 양국 국기 게양이다. AP=연합뉴스

건국 이래 존재 부인한 이스라엘과 수교

이 사건이 왜 역사적인가? 아랍권은 1949년 이스라엘의 건국 이래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조차 거부해왔기 때문이다. 1971년 독립한 UAE처럼 뒤늦게 독립한 아랍 국가도 예외 없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다. UAE는 건국 이래 이스라엘을 거부해온 셈이다. 지도에서도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이름은 없다. 지명을 ‘팔레스타인’으로 적을 뿐이다.
유엔에 따르면 이번에 UAE가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수교를 발표하면서 현재 193개 유엔회원국 중에서 163개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30개국이 승인을 거부한 상태로 남았다. 아랍권 지역기구인 아랍연맹(AL)에 따르면 22개 회원국 중 알제리·바레인·코모로·지부티·이라크·쿠웨이트·레바논·리비아·모로코·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튀니지·예멘 등 17개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AL 회원국인 이집트는 1979년, 요르단은 1994년 각각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이어 외교관계도 수립했는데 이번에 UAE가 추가된 것이다. AL 회원국인 서아프리카의 모리타니는 2009년 이스라엘과 외교관계를 중단했다가 이듬해 복구했다. 팔레스타인은 유엔에선 옵서버 국가지만 AL에선 회원국인데 1993년 이스라엘과 오슬로 협정을 맺으면서 사실상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한 셈이 됐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대도시 카라치에서 8월 16일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의 수교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UAE 인구의 12%는 파키스탄에서 간 이주노동자다. EPA=연합뉴스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의 대도시 카라치에서 8월 16일아랍에미리트(UAE)와 이스라엘의 수교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UAE 인구의 12%는 파키스탄에서 간 이주노동자다. EPA=연합뉴스

북한·부탄·쿠바, 이스라엘과 미수교  

이슬람협력기구(OIC)에 따르면 회원국 중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브루나이·인도네시아·이란·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의 7개국과 말리·니제르 등 아프리카의 2개국이 이스라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아랍권이나 이슬람권이 아닌 나라 중에서 남미의 쿠바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의 북한과 불교 군주국가 부탄이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는 국가로 남아있다.
주목할 점은 알제리·방글라데시·브루나이·이란·이라크·쿠웨이트·레바논·리비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수단·시리아·아랍에미리트(이번에 해제)·예멘 등 15개국은 이스라엘 여권 소지자의 입국을 막아왔다는 사실이다. 이 가운데 리비아·수단·시리아·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예멘·이란 등 15개국은 이스라엘 여권 소지자는 물론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기록이 있는 외국인도 입국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는 비자를 여권에 붙여주고 출입국 시 스탬프를 여권에 찍어주지만 항공로나 육로로 이스라엘에 도착한 외국인은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다. 비자와 출입국 기록을 스탬프로 여권에 찍어주지 않고 신용카드 크기의 작은 카드에 인쇄해 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출입국 기록이 있으면 받아주지 않는 나라들 때문에 나온 고육지책이다.

지난 201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열린 평화와 혁신 포럼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스타트업 투자와 발전을 평화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행사로 매년 총리가 직접 주재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지난 2018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열린 평화와 혁신 포럼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스타트업 투자와 발전을 평화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행사로 매년 총리가 직접 주재하고 있다. 채인택 기자

중동 투자가들, 이중 여권으로 이스라엘 방문

이처럼 아랍권·이슬람권과 이스라엘 간의 오랫동안 계속된 ‘엄중한 상황’을 깨고 UAE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맺은 것은 역사적인 사건이 될 전망이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미국의 압박을 넘어 또 다른 경제적·전략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경제적인 이유다.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만난 스타트업 분야 관계자는 “미수교국인 걸프 지역 국가들을 포함한 세계 각국에서 이스라엘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며 “아랍권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 여권을 들고 이스라엘을 방문해 스타트업 기업을 살펴보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묵인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랍권 투자자들과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서구와의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려고 경제적 접촉 면적을 오래전부터 넓혀왔다는 이야기다.
또 주목할 점이 석유와 가스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산유국인 UAE가 이제는 포스트 석유시대에 대비해 자국에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세계 각국의 주요한 첨단산업에 투자해 동반 성장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UAE는 중동의 선진국인 이스라엘에 필요한 것이다. UAE는 이미 한국과 손잡고 바라카 원전 건설에 들어갔으며 지난 8월 1일 1호기의 가동에 들어갔다. 중동권에서 원전 가동은 이스라엘의 네게브 원전과 이란의 부셰르 원전이 이에 세 번째다. 이스라엘과 이란 원전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바라카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규제를 따른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부통령 겸 두바이 에미리트(이슬람 군주)는 지난 8월 1일 아부다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바라카 원전사업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총발전용량 5천60㎿)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 이 사업을 수주해 2012년 7월 착공했다.    애초 2017년 상반기 안으로 1호기를 시험 운전할 계획이었지만 UAE 정부 측에서 안전, 자국민 고급 운용 인력 양성 등을 이유로 운전 시기를 수차례 연기했다. 사진은 2018년 3월 건설이 완료된 바라카 원전 1호기(오른쪽) 모습. 왼쪽은 2호기다. 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부통령 겸 두바이 에미리트(이슬람 군주)는 지난 8월 1일 아부다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바라카 원전사업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총발전용량 5천60㎿)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 이 사업을 수주해 2012년 7월 착공했다. 애초 2017년 상반기 안으로 1호기를 시험 운전할 계획이었지만 UAE 정부 측에서 안전, 자국민 고급 운용 인력 양성 등을 이유로 운전 시기를 수차례 연기했다. 사진은 2018년 3월 건설이 완료된 바라카 원전 1호기(오른쪽) 모습. 왼쪽은 2호기다. 연합뉴스

UAE, 아랍권 최초 원전가동에 화성탐사선도

UAE의 원전 건설은 중동권에서 이 나라를 ‘퍼스트 펭귄’으로 만들고 있다. 아랍 뉴스에 따르면 중동의 강국이라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이르면 16기의 원전 건설 계획만 세웠을 뿐 아직 입찰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느 나라보다 앞서 원전을 가동했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동의 강국으로 자부하는 터키도 2018년 4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과 손잡고 지중해 연안 메르신 지역의 악쿠유 원전의 건설 기공식을 열었다. 기공식에 맞춰 터키를 찾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아랍권의 강국 이집트도 러시아와 손잡고 원전 4기를 건설하려다 미국의 반대로 주춤한 상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요르단도 한국과 협력해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원자력으로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UAE는 지난 7월 20일 중동 최초의 화성 탐사선 아말을 발사했다. 아랍어로 희망을 뜻하는 아말은 이날 일본의 우주발사체인 H2-A에 실려 일본 남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됐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UAE의 첨단과학기술부의 주도 아래 과학기술자들이 지난 6년간 개발한 화상탐사선 아말은 5억㎞의 우주 공간을 날아가 2021년 2월 UAE 건국 50주년에 맞춰 화성 궤도에 진압할 예정이다. UAE는 과학기술로 중동권에 희망을 주고 있다. UAE는 1971년 12월 2일 독립했으며, 1972년 2월 10일 이 나라를 구성하는 7개 토후국 중 마지막으로 라스알카이마가 합류했다.

이란 대학생들이 8월 15일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 대학생들이 8월 15일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군주국들, 혁명 수출 이란에 두려움

UAE가 이스라엘과 손잡은 또 다른 이유로 이란에 대한 두려움을 꼽을 수 있다. 이란은 두 가지 점에서 중동 군주국에 위협이 되어왔다. 하나는 잘 알려진 대로 종파적인 긴장이다. UAE와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 등 중동 군주국은 이슬람 수니파가 국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반면 이란은 대다수가 시아파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다리로 연결된 바레인은 군주는 수니파, 국민 다수는 시아파다. 이란과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군주국 오만은 국민 다수가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종파간 관용’을 추구하는 이바디파를 따른다. 섬나라인 카타르는 군주와 국민이 수니파지만 이란과 가까이 지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부터 혹독한 견제를 당하고 있다.
UAE는 사우디아라비아에 협조해 수니-시아 대리전 성격의 예멘 내전에 참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이스라엘과 손잡고 반이란 연합을 이룰 전략적 필요를 절감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역 내에서 가장 강력한 반이란 국가로 통한다. 이란은 군주제 시절인 1950년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지만 1979년 이슬람혁명이 벌어진 뒤 국교를 단절한 것은 물론 가장 강력한 반이스라엘 국가로 변신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왼쪽)가 지난 2019년 9월 미국의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왼쪽)가 지난 2019년 9월 미국의 마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9할이 외국인 UAE, 이스라엘 보안기술 눈독

UAE가 이스라엘에 다가간 또 다른 이유로 이스라엘의 뛰어난 보안 기술을 꼽을 수도 있다. UAE라는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보안 기술이 필수적이다. 우선 외국인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UAE 인구는 2020년 현재 989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2018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11.48%만 국민이며 나머지 88.52%는 외국인이다. 7개 토후국 중 인구가 많은 5개 토후국을 대상으로 거주자의 국적을 조사한 결과 인도인(25%)·파키스탄인(12%)·에미라티(UAE국민·9%)·방글라데시인(7%)·필리핀인(5%)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UAE는 국제사회에서 ‘거대한 인디언(인도계 주민) 타운’으로 불린다. 10만 명의 영국인과 러시아·유럽중남미 등에서 온 50만 명의 이주민도 거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이주민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기술과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UAE의 석유 시설의 대부분은 이란과 연결된 해상 유전에서 나온다. 해상 유전은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의 작은 섬이나 바다 위에 건설한 인공 섬에서 바다를 뚫어 채굴한다. 이 섬의 원유 채굴 시설, 작업장으로 향하는 선박,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동태 파악과 보안 관리는 UAE 경제의 생명줄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이런 곳에서 활용할 보안과 치안 능력에선 세계 최고의 기술·인력·노하우를 보유한다. 이스라엘의 보안 스타트업은 관련 업계에서 스타급이다. 다른 굵직한 요인보다는 중요도가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보안 기술은 UAE로선 대단히 중요한 협력 요소다.

오만의 군주인 하이삼 빈 타리트 술탄의 모습. AP=연합뉴스

오만의 군주인 하이삼 빈 타리트 술탄의 모습. AP=연합뉴스

UAE 다음은 오만·바레인·모로코 등 거론

UAE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발표한 뒤 세계의 관심은 벌써 아랍권 국가 중 어느 나라가 UAE의 뒤를 따를 것인가에 쏠리고 있다. 이스라엘의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 포스트’ 등 매체는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국가인 오만·바레인과 마그레브(북아프리카) 군주국인 모로코를 그 다음 수교 예상 국가로 꼽는다. 주목할 점은 모두 군주국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이스라엘과 아랍권은 1949년 이스라엘-아랍이 벌인 제1차 중동 전쟁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 계속 대립해왔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이라는 아랍 민족주의적 대의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오슬로 협정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되고 합의가 이뤄졌지만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에 수많은 아랍 국가가 피로증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지도층의 정서일 뿐 대중과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었다. 아랍권과 이슬람권에 대중운동으로 자리 잡은 반이스라엘 운동에 대해 지도층이 내놓고 이견을 제시하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반이스라엘 정서는 이슬람권 대중정치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가 존재하는 공화국에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화해 제스처는 곧 정치적 자해로 이어진다는 문제도 있다.

오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베들레헴에서 주민들이 8월 16일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베들레헴에서 주민들이 8월 16일 반이스라엘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랍권·이슬람권 반이스라엘 정서 강해
1981년 군사퍼레이드 도중 발생했던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사다트는 아랍권 지도자로는 처음 1977년 이스라엘을 방문해 크네세트(국회)에서 연설한 인물이다. 1978년 미국의 중재로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맺어 과거 1967년 6일전쟁 때 이스라엘에 빼앗긴 시나이반도를 되찾고, 그해 노벨평화상도 받았다. 이어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이듬해 국교를 정상화했다. 안타깝게도 그 대가는 이슬람주의자들의 암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집트를 비롯한 아랍권 곳곳에 초강경 이슬람주의자 그룹이 생겼다. 이들은 아랍 테러조직의 바탕을 이뤘다.
아직은 아랍권과 이슬람권에서 공화국이 아닌 군주국에서만 이스라엘과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국민의 반발을 업적으로, 보안 능력으로 감시하고 누를 수 있는 제도와 능력이 있는 나라는 군주국뿐이라는 이야기다.
공화국인 레바논의 미셸 아운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수교에 관심이 있다고 발언했다고 전해지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아운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도다. 레바논은 대통령은 다종교·다종파 국가로 마론파 기독교도가, 총리는 수니파 무슬림이, 국회의장은 시아파 무슬림이 나눠 맡는 권력 분할제를 실시한다. 그런데도 시아파 무장정파로 이란·시리아와 가까운 헤즈볼라의 정치적 입김이 강해 이스라엘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희박하다. 게다가 과거 1982년 이후 이스라엘이 기독교 민병대의 지원으로 레바논 남부를 점령했던 일 등으로 인해 국민의 반이스라엘 감정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결국 아랍국가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한다면 오만, 바레인, 모로코 등 군주국밖에는 거론될 수 없는 상황이다. 형식적이든, 실제적이든 공화제를 실시하고 있는 이란과 이라크,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수교할 가능성은 현재로썬 없다고 봐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랍권 군주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군주제를 전복한 이란인들을 경계한다. 아랍권과 다른 고유의 언어와 이슬람 문화를 키워온 이란인들은 1987년 7월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에서 전통적으로 실시하는 반이스라엘 행진 도중 혁명 구호인 “아저디(자유)”를 외치며 시위를 벌여 보안 당국을 기겁하게 했다. 누가 봐도 혁명 수출과 사우디 군주제 타도를 주장하는 구호다. 당시 이란인과 현지 경찰이 충돌해 이란인 275명, 사우디 경찰 75명, 다른 나라 순례자 42명 등 40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건 뒤 이란과 사우디는 단교했으며 이란인들은 1990년까지 메카 순례를 보이콧했다. 외교관계와 순례는 1991년에야 복구됐다.

8월 13일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교를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과 그의 사위인 저레드 쿠슈너 보좌관. EPA=연합뉴스

8월 13일 백악관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수교를 발표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부터)과 그의 사위인 저레드 쿠슈너 보좌관. EPA=연합뉴스

반미-친미 대결 과열할까…정치적 노림수 경계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란을 비롯한 중동의 공화국은 반미 성향이 강한 국가로서 친미 국가인 UAE나 사우디아라비아와 국제정치상 대척점에 자리 잡았다. 묘하게도 공화국들은 이슬람 시아파 국가, 군주국들은 수니파가 대부분이라 이런 대립은 시아파와 수니파 간 종파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결국 중동과 이스라엘의 수교와 새로운 외교 지형도 건설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대결을 넘어, 군주제와 공화제, 그리고 친미 국가와 반미 국가 간 대결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사태가 복잡해지는 이유다.
거기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정치적 승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을 향한 정치적 업적 쌓기 등 다양한 국내정치 요소가 층층이 자리 잡고 있다. 중동 외교가 어디까지 지각변동을 겪을지를 아직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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