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30~60%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중앙일보

입력

'희망과 회복의 여행' .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태국 푸켓에서 열린 제3차 아시아.태평양 정신약리학회의 슬로건이다. 이는 곧 정신질환자들이 겪어야 할 투병과정과 이들의 소망을 말해준다.

내과 질환이 감기.설사처럼 가벼운 병부터 암 같은 난치병까지 있듯 정신질환 역시 가벼운 불안증.우울증부터 심한 정신분열증이나 조울증 등 힘든 치료과정을 거쳐야 하는 병까지 있다.

홍콩 중국대학 정신과 싱리 교수는 "암을 극복하기 위해 몇 년 동안 힘든 투병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아시아에서는 수많은 편견과 오해, 사회적 지원 부족으로 치료조차 못받는 정신질환자가 30~60%나 된다" 고 말했다.

정신질환에 걸리면 직장.가족관계.대인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기 어렵다. 점차 사회에서 소외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닥치는데 이들이 다시 사회에 복귀하려면 우선 병이 치료돼야 한다. 현재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

학회 좌장으로 참석한 연세대 의대 정신과 민성길 교수는 "수십년간 사용했던 기존의 정신질환 치료제들은 부작용이 많았다" 며 "이 때문에 치료를 쉽게 중단하거나 포기해 병이 깊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고 밝혔다.

병이 깊어지면 더 많은 약이 필요하고 당연히 부작용도 심하게 나타나 또다시 치료를 중단하면서 병이 진행되는 악순환을 걷게 된다는 것.

자신의 정신분열 투병기를 발표한 미국인 빌 캄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중 정신분열증이 발병해 한순간 직장과 집을 잃고 환청에 시달리면서 길거리를 헤맸다.

"얼마 후 치료를 받았지만 약 부작용으로 정상생활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약을 먹자 환청은 없어졌지만 하루종일 졸린 데다 체중이 30㎏이나 불었거든요.

주변에서는 정신과 약은 으레 부작용이 많다는 얘기만 들었지요" 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담당의사에게 절망스러운 느낌을 털어놨고 의논 끝에 약을 바꿨다. 다행히 새로 복용한 약은 부작용이 적어 꾸준히 치료한 결과 정신분열병을 극복하고 현재는 캘리포니아에서 정신질환자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의 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정신질환은 증상개선뿐 아니라 약을 먹으면서도 정상생활이 가능해야 하므로 부작용을 늘 담당의사와 상의해 개선해 나가야 한다" 고 강조했다.

싱 리 교수는 "아시아에선 환자의 3분의 2가 약의 부작용을 담당의사에게 말하지 않고, 의사의 80%는 환자에게 약 부작용과 약의 교체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는다" 고 현황을 밝혔다.

이번 학회에선 약을 먹으면 나타나는 졸리움.손떨림 등 뿐 아니라 체중증가로 인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당뇨병과 심장병 위험성에 대한 관리도 강조됐다. 미국 워싱턴대 정신과 존 뉴커머 교수는 "정신과 약물은 대부분 몇 년 이상 장기 복용해야 하므로 개개인에 따라 부작용이 가장 적은 약을 선택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정신질환을 바로 알기 위한 대국민 홍보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호주 정신분열병 상담소 버나드 맥나이르 소장은 "호주에서 둘째 아이 출산 후 정신분열병에 걸린 박사가 자신의 질병극복 과정을 1백만명의 시청자가 보는 TV프로에 출연해 들려준 후 정신질환 극복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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