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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장 지시 두고 직원 갑론을박 하는 회사 잘 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21)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취준생이 일하고 싶어하는 A사 사장은 평소 말을 애매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사장님이 ‘그… 어제 왜 그거 있잖아, 내가 말한 대로 했어?’라고 말하면, 계약직 인턴 중 O가 기가 막히게 알아듣고 사장님 지시사항을 정확히 진행한다는 것이다.

사장은 점점 O를 통해 업무지시를 하고, 자신의 주요 일정에 동행하게 했다. O는 결국 사장의 특별비서로 채용돼 사장과 가장 가까이 일하며, 사장의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됐다. 심지어 O보다 직급이 높은 직원도 사장의 의도를 헤아리기 위해 O에게 잘 보인다고 한다.

사장 회의가 끝나면 항상 2차 회의를 하는 B사. 이 회의에선 직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사장의 의도와 의미를 추리한다. 사장의 말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는 2차 회의는 참 비효율적이다. [사진 pikist]

사장 회의가 끝나면 항상 2차 회의를 하는 B사. 이 회의에선 직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사장의 의도와 의미를 추리한다. 사장의 말을 파악하기 위해서 하는 2차 회의는 참 비효율적이다. [사진 pikist]

한편 사장 회의 후 2차 회의가 일상인 B사가 있다. 사장은 매번 열심히 지시하는데, 직원들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2차 회의를 한다. 이 회의에선 직원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사장의 의도와 의미를 추리한다. 직원들끼리 저마다 해석을 하고 일을 진행하다 보니 사장이 원했던 방향과 다르게 진행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장의 말을 파악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노력, 원래의 목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됐을 때 드는 비용과 부진한 결과를 고려하면 B사의 2차 회의는 참 비효율적인 셈이다.

우리는 애매모호하게 업무지시 하는 리더를 심심치 않게 만난다. 문제는 사장의 모호한 지시나 질문이 일을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할 수 있고, 직원은 사장의 말을 해석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한다. 사장은 왜 모호하게 업무지시를 하는 걸까?

해당 업무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

IT 기업에 새로 영입된 J사장은 세일즈 분야의 살아있는 신화였다. 이 회사의 임원 대부분은 IT 전문가였는데, 조직의 매출 증가와 영업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J사장을 어렵게 모셔왔다. 그런데 얼마 후, 직원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사장이 업무 포인트를 정확히 짚지 못하고, 애매하게 지시하는 일이 반복됐다. 일이 IT계 생리에 맞게 진행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처리되지 못했다.

특수성·전문성을 지닌 회사에서 유능한 외부 인사를 리더로 영입할 때 주로 발생하는 이슈다. 사장이 해당 업무를 정확히 이해하거나 파악하지 못할 경우 사장은 애매하게 업무 지시를 하게 된다. 직원에게 올바른 지시와 질문을 해야 면이 서는데, 말 그대로 사장이 잘 모르니까 모호한 지시와 질문을 하는 경우다.

직원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경우

사장은 모든 팀의 업무가 회사의 방향, 조직 문화, 업무 목표, 기업윤리, 당면과제 등에 맞춰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므로 실무를 하는 직원만큼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 [사진 pexels]

사장은 모든 팀의 업무가 회사의 방향, 조직 문화, 업무 목표, 기업윤리, 당면과제 등에 맞춰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므로 실무를 하는 직원만큼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 [사진 pexels]

업무의 방향성, 문제의 해결방안은 이미 사장의 머릿속에 있다. 그런데 정답을 미리 말하지 않고, 소위 열린 결말처럼 ‘만약 김 팀장이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또는 ‘A안, B안 중 어떤 안으로 가야 할까? 김 팀장은 왜 B안은 안된다고 생각해?’라고 광범위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장은 자신의 모호한 질문에 직원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또한 구체적인 질문이나 지시가 생각의 폭을 제한할 수 있으니, 광범위한 질문을 던진다. 직원의 창의성이나 생각하는 역량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고, 본인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대화하다 보면, 직원의 입장에선 ‘사장이 내 창의성이나 열정을 테스트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런 대화가 반복될 경우, 직원들은 업무 자체보다 사장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우선시 될 수도 있다.

원래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경우

사장의 말하는 방식 자체가 애매모호한 경우도 있다. 말을 장황하게 하거나, 논점이 왔다 갔다 하거나, 말하는 의도나 지시사항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말하는 방식이다. 사장이 해당 업무를 잘 몰라 애매하게 질문하는 경우 답은 정해져 있는데 직원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은 경우보다 훨씬 개선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리더가 말하는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직원이 애매모호하게 말하는 사장을 바꾸기는 어렵다. 직원은 사장의 말을 못 알아듣는 직원으로 낙인 찍힐까 걱정하거나, ‘센스 없는 직원’으로 평가될까 걱정한다. 그래서 사장의 지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도 계속 질문하길 어려워한다.

게다가 사장의 권위가 매우 중요하거나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강조되는 회사의 경우 사장의 지시가 명확해질 때까지 직원이 질문하기는 더욱 어렵다. 분명한 위계질서에서 직급이 낮은 직원은 질문할 기회가 거의 없고, 모두가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질문하는 건 눈치가 없거나 혼자 튀는 것을 좋아하는 직원으로 평가되기 쉽다.

말 잘하는 리더일수록 리더의 권위, 직원의 존경심을 얻기 쉽다. ‘리더의 말하기’는 단순히 유창한 화술을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꾸준한 반복과 연습이 필요하다. [사진 pexels]

말 잘하는 리더일수록 리더의 권위, 직원의 존경심을 얻기 쉽다. ‘리더의 말하기’는 단순히 유창한 화술을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꾸준한 반복과 연습이 필요하다. [사진 pexels]

결국 사장의 모호한 지시는 직원의 입장에서 개선되기 어렵기 때문에 리더 스스로 본인의 지시와 질문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장은 업무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직원에게 목표와 목적에 맞는 질문과 지시를 해야 한다. 마치 사장님의 숨은 의도 찾기처럼 장황한 말, 무작정 직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질문은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중간관리자와 실무진에 포진한 요즘 세대와는 명확하고, 간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이 필요하다. 한편, 직원의 성향이나 선호하는 업무 방식에 따라 직접 지시를 하거나, 직원이 주도적으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끄는 스킬도 도움된다.

만약 사장이 해당 업무를 잘 몰라서 애매모호한 업무 지시를 하는 경우는 사장의 영역과 직원의 영역을 나눠서 그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사장은 직원의 업무 영역을 인정하고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존중한다. ‘이 분야에서는 나보다 00이 더 전문가니까’라고 직원과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이 사장이 모른다는 걸 감추는 것보다 오히려 사장의 권위, 리더십에 득이 된다. 물론 리더로서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당 업무를 이해하고 핵심을 파악하려는 노력, 간결하고 명확하게 지시하고 질문하는 연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직원은 사장이 A부터 Z까지 모든 팀의 업무를 실무진처럼 세세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사장은 모든 팀의 업무가 회사의 방향, 조직 문화, 업무 목표, 기업윤리, 당면과제 등에 맞춰 진행되고 있는지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므로 실무를 하는 직원만큼 세부사항을 알지 못한다.

말 잘하는 리더일수록 리더의 권위, 직원의 존경심을 얻기 쉽다. ‘리더의 말하기’는 단순히 유창한 화술을 자랑하는 것 이상으로 꾸준한 반복과 연습이 필요하다. 신입사원 시절에 메일 쓰는 법, 전화 받는 법, 비즈니스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익히는 것처럼 리더로서 말을 잘하는 법은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회의가 성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 리더는 늘 말하는 법을 훈련하고 연습해야 한다. 찰떡같이 말하는 사장, 찰떡같이 알아듣는 직원을 위해 간결하고 명확한 지시, 질문을 하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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