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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귀 없는 사장과 귀 있는 사장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최인녕의 사장은 처음이라(20)

‘사람의 귀는 2개, 입이 1개’.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조직생활에서 ‘듣는 자세’를 갖추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경력과 연차가 쌓여 직위가 높아질수록 나보다 경험이 부족한 팀원의 말을 경청하는 일은 더욱 어렵다.

리더는 주로 말을 하는 위치에 있다. 전 직원에게 사내 중대한 결정을 발표하고, 위기 상황에서 직원에게 동기부여 되는 말을 하며, 필요한 자리에서 중요한 시기마다 회사를 대표해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말하는 기술’이 더 많이 요구될 법한 리더에게 ‘잘 듣는 법’이 강조되고 있다. CEO들은 코칭 전문가를 통해 경청하는 기술을 배우고, 국내 경영서에도 ‘경청의 중요성’에 관한 내용이 많아졌다. 리더에게 ‘잘 듣는 법’이 왜 중요할까? 잘 듣는 리더와 잘 듣지 않는 리더는 조직문화를 어떻게 바꿀까?

직원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답을 말하는 X사 사장, 직원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질문하는 O사 사장, 리더에 따라 회사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사진 pixabay]

직원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답을 말하는 X사 사장, 직원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질문하는 O사 사장, 리더에 따라 회사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사진 pixabay]

직원이 한마디 하면, 사장이 열 마디 하는 X사가 있다. 회의시간 내내 직원은 사장의 말을 듣기만 한다. 모든 프로젝트의 방향성, 실행계획은 사장의 말에 따라 결정된다. 직원들 사이에서 X사 사장은 이미 ‘답정너’로 불린다.

한편, 30분 미팅에서 사장이 딱 3개의 질문, 1개의 요청만 하는 O사가 있다. 직원이 보고할 때 사장은 노트 필기를 하고, 직원의 말을 주의 깊게 듣는다. 사장은 보고가 끝나면 미팅의 목적과 업무 목표에 맞는 질문과 요청을 하고, 대부분 프로젝트의 실행계획과 주요 결정은 담당팀에게 맡긴다. ‘잘 듣지 않는 리더’가 이끄는 X사와 ‘잘 듣는 리더’가 이끄는 O사의 조직문화는 어떻게 다를까?

“사장님, 연말 서비스 개편을 위해 사용자 만족도 테스트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안 과장, 안 들어도 다 알아. 테스트를 해봐야 사용자가 만족하는지 불만족하는지를 알 수 있나? 척 보면 척이지. 요즘 한창 뜨는 회사는 이런 건 이렇게 하고, 저런 건 저렇게 한다는데…. 그래서 우리도 이런 프로모션 해보는 건 어때?”

안 과장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답정너’ X사 사장의 말이 시작됐다. 안 과장은 사장에게 사용자 만족도 테스트 계획과 추가 비용 발생 건을 승인받기 위해 미팅을 요청했지만, 사장 개인의 생각부터 시작해서 다른 회사의 ‘카더라’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사장은 일방적이고 장황한 얘기로 논점을 흐리다가 갑자기 프로모션에 관한 전혀 다른 업무를 지시했다.

“안 과장, 지난달 프로모션 결과가 어떻게 나왔나? 내가 어제 모임에서 듣기로는 요즘은 무조건 무료 체험 후에 판매한다고 하네. 당장 다음 달부터 우리 A제품도 무료 체험을 시범운영 해보면 어때? 그러려면…. 내가 말하는 포인트 잘 알아들었지?”
“아 네, 사장님. 그런데 현실적으로 당장 다음 달 런칭은 무리가 있습니다. 무료체험을 하려면 예산부터 세부계획, 담당 인력까지 검토해야 하는데요, 런칭 시기를 팀 내 상의해서 다시 보고를….”
“안 과장, 무료체험은 당장 다음 달부터 시작해보자고. 그리고 말 나온 김에 B제품도 한번 준비해 보고. 아, 다음 달에 A제품 무료체험 시작되면 재고량도 늘려야 하니까 생산라인과 협의해서….”

사실 무료체험 건은 여러 번 나왔던 얘기였으나, 자사 상황에 맞지 않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반대했다. 사례에서 보듯 X사의 사장은 직원의 말에 전혀 귀 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확신이 강하고, 모든 팀 업무에 대해 자신이 직원보다 더 많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원은 본인의 말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장 체면이 있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꼭 관철하려고 한다.

직원의 말을 듣지 않는 리더가 있는 X사의 조직문화는 어떨까? 예전에는 사장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객관적인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소신껏 의견을 내는 직원이 있었다. 그러나 직원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장에게 사장과 다른 의견은 늘 무시 받으면서, 점점 사장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직원만 남게 되었다.

직원의 말을 듣지 않는 리더가 있는 X사. 사장과 다른 의견은 늘 무시 받으면서, 점점 사장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직원만 남게 되었다. 직원들의 주도적인 자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진 pxhere]

직원의 말을 듣지 않는 리더가 있는 X사. 사장과 다른 의견은 늘 무시 받으면서, 점점 사장이 시키는 대로 일하는 직원만 남게 되었다. 직원들의 주도적인 자세는 사라진 지 오래다. [사진 pxhere]

직원들 사이에선 업무에 대한 책임감, 주도적인 자세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어차피 사장이 시키는 일만 하면 되니, 모든 프로젝트의 중간관리자는 분석하고,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역량을 기를 수 없었다. 아무리 경험과 노하우를 많이 가진 사장이라도 모든 업무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없다. 따라서 사장의 지시대로 한 프로젝트는 종종 성과 미달, 실패로 이어지기도 했다.

“정 과장, 연말 서비스 개편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요?”
“사장님, 서비스 개편을 위해 사용자 만족도 테스트를 먼저 진행해보려고 합니다. 기존 만족도 조사와는 다른 차원의 테스트이기에 고객 사용성을 훨씬 더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네, 그렇군요. 어떤 방식의 테스트인지 궁금하네요. 기존 방식과 어떻게 다르며, 어떤 부분에서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제가 다음 미팅이 있으니 가급적 30분 이내에 미팅을 끝내면 좋겠습니다.”

정 과장은 준비한 자료를 토대로 보고했고, 사장은 메모를 하며 정 과장의 브리핑을 주의 깊게 들었다.
“정 과장, 준비를 많이 하셨네요. 고생했어요. 연말 서비스 개편에 테스트 결과를 반영시킬 수 있나요? 시간상 촉박할 것 같은데요.”
“저희 팀 내에서 업무분담을 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문제없이 반영할 수 있습니다.”
“정 과장 팀은 팀워크가 워낙 좋으니까요. 알았습니다.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음 미팅에서는 서비스 개편을 위한 또 다른 세부계획과 지난번 얘기 나왔던 무료체험 시행 건도 함께 구체화해서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까지 타 팀의 의견까지 정리해서 다음 주 미팅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O사 사장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담당 실무자가 그 일에 대해 가장 잘 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건에 관한 보고는 직원의 생각과 계획을 듣는 자리며, 사장의 역할은 목표와 맞는지를 확인하고, 프로젝트를 지원하며, 최종 승인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O사 사장은 회의 시 직원의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말문을 열 때 먼저 직원의 노력과 팀워크를 인정하고 칭찬하려 노력한다. 직원 스스로 동기부여를 갖고 일하게 하는 사장의 커뮤니케이션 방식 덕분에, O사 직원들은 본인 업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한다.

눈빛, 반응, 표정, 집중하는 자세뿐 아니라 직원의 말을 듣고 목적과 목표에 맞는 질문을 하는 것, 직원에게 동기부여 되는 칭찬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은 경청하는 리더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사진 pexels]

눈빛, 반응, 표정, 집중하는 자세뿐 아니라 직원의 말을 듣고 목적과 목표에 맞는 질문을 하는 것, 직원에게 동기부여 되는 칭찬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은 경청하는 리더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사진 pexels]

경청하는 사장은 직원들의 업무 역량과 업무 태도를 바꾼다. 사장이 경청하는 자세를 보인다는 건, 직원에게 ‘내가 당신을 신뢰하고 있다’라는 것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다. 직원에 대한 사장의 신뢰감은 직원의 업무 의욕을 고취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잘 듣는 리더는 비언어적인 방법과 언어적인 방법을 조화롭게 사용한다. 눈빛, 반응, 표정, 집중하는 자세뿐만 아니라 직원의 말을 듣고 목적과 목표에 맞는 질문을 하는 것, 말을 하기 전 직원에게 동기부여 되는 칭찬 한마디를 덧붙이는 것은 경청하는 리더에게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다.

현실적으로 사장의 입장에서 직원의 계획이 비현실적이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될 때도 있다. 그러나 경청하는 사장은 직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사장의 직접적인 지시로 일을 진행하는 상황을 최대한 경계한다.

직원보다 더 많은 업무 경험과 더 넓은 시야를 지닌 리더로서, 말을 아끼고 귀를 여는 일은 항상 각성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잘 듣는 리더가 직원들의 책임감과 동기부여, 업무 역량 향상에 도움이 되며 건강한 조직 문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잘 듣는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는 것은 어떨까?

INC 비즈니스 컨설팅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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