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소생의 힘 불어넣는 '사랑의 치료사'

중앙일보

입력

"음악으로 병을 고친다는 것이 믿기지 않으십니까."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S아파트 복도를 지날 무렵이면 심심치 않게 작은 악기연주소리를 들을 수 있다. 때로는 피리소리가, 때로는 목관악기 소리가 마치 어린아이가 연주하듯 제멋대로 소리를 낸다. 흔히들 어린자녀를 둔 일반가정이겠거니 하며 지나치지만 이곳은 음악을 통해 병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실이다.

이곳에서 하은경씨(35세)가 음악치료사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한지는 지난 93년부터. 병원 가기를 꺼리는 환자들을 위해 정서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아파트를 치료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대학시절 피아노를 전공한 그녀가 '음악치료사'라는 자격증을 얻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10여년이란 긴 세월이 필요했다.

"처음 대학입학시에는 대부분 피아노학과 지망생이 그렇듯 저도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써클활동을 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제가 가진 재능을 활용해 많은 이들에게 도움과 사랑을 베풀 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특수교육학과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의 세계를 알게 되었죠."

음악을 통해 아픈이들의 병을 치료하는 '음악치료사'. 하씨는 순간 '바로 이거다'라고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자신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음악치료사라는 길은 우리나라에선 생소하기만 한 직업이었다. 특별히 교육받을 수 있는 교육환경도 전무한 상태였다.


"이미 외국에서는 음악치료사들의 활동이 왕성합니다. 미국의 경우 1946년 캔자스대학에 처음 전공학과가 개설된 후 현재 음악치료사로 활동하고 있는 인원이 5천여명에 달할 정도니까요."

대학졸업후 선교단체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던 하씨는 해외유학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유학의 길도 하씨에게는 결코 만만치만은 않았다. 직업성격상 정신지체자나 신체장애자를 주로 상대하는 버거운 일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반대가 완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씨의 결심은 완강했고 89년 마침내 독일 함스부르크 학교를 향해 유학의 길에 오를 수 있었다.

"음악치료사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정상인을 상대하는 직업은 아니지요.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랑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또한 음악을 통한 치료법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음악적 소양은 물론이고 몇가지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어야 하죠. 때문에 음악치료학부가 있는 외국대학의 경우 입학시험이 까다로운 편입니다."

그녀가 함부르크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4년 학부과정중 남은 1년과정은 인턴으로 실습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1년의 인턴과정은 우리나라 장애아동들을 위해 활동할 것을 요청했다. 자신이 봉사하고 일할 곳은 독일이 아닌 한국이기 때문이다. 학교의 허락을 받은 그녀는 충현교회 장애아동조기교실에서 1년간의 인턴실습을 마칠 수 있었다. 인턴기간동안 학생들을 치료한 하씨의 치료법은 기대 이상이었다.

"음악치료의 기본원리는 음악을 통해 자극을 준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극도의 흥분상태로 인해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진 이들에게는 음악을 통해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지요. 치료방법은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이루어집니다. 다양한 종류의 타악기를 놓고 제가 연주해주는 생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환자에게 연주를 맡기기도 합니다. 단 악보는 없습니다. 단지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말들을 음악을 통해 마음껏 표현하는 것이지요."

하씨는 환자의 연주를 통해 심리상태를 분석한다. 음악을 통해 환자의 숨겨진 감정을 표출시키는 것이다.

하씨가 치료하는 환자는 1달에 10명 정도. 주 20시간 치료활동을 한다.

"한번은 40대의 뇌종양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었습니다. 서울대 출신으로 대기업에서 엘리트 간부로 일하던 도중 뇌종양 판정을 받도 한쪽 뇌를 절단한 환자분이었죠. 배가 고픈지 부른지도 모른채 음식이 있으면 한없이 먹고 신체의 반은 마비상태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음악치료 3개월 만에 빠른 향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절제성이 생기기 시작했고 악기를 연주하고자 하는 의욕이 생기면서 마비되었던 팔과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러나 어른환자의 경우는 음악치료만으로는 이미 병역이 클 확률도 많고 본인 스스로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 때문에 치료환자의 대부분은 주로 정신지체아나 자폐아동, 간질환자등의 어린환자들이 많다.

하씨는 현재의 일에 대해 100% 만족을 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치료받은 환자나 부모가 후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올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는 그녀는 현재 어린이를 위한 건강한 음악환경에 대한 저서 <아빠 tv소리 좀 줄여주세요>를 10월중 출간예정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음악치료사 양성을 위한 전문과정의 학교나 기관이 없다. 때문에 음악치료사로써 전문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모두 해외유학 출신자들이다. 현재 국내에서 공인음악치료사자격증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은 하은경씨를 비롯해 총 4명뿐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음악치료사 자격에 대한 법률조항이 없어 전문과정의 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비자격자들도 법적제재없이 음악치료사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들어 한국임상예술연구회에서 음악치료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음악치료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하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 여건은 미비한 실정이다. 때문에 해외에서 음악치료사 자격증을 획득하고도 국내로 들어오지 않는 한국유학생들도 꽤 된다는 게 하씨의 말이다.

음악치료사 교육과정은 미국이나 독일등의 유럽권이 발달했는데 보통 2년제부터 4년제, 6년제까지 교육과정이 다양하다. 음악치료는 노래, 연주, 악보나 가사읽기, 동작, 창의력(짧은 노래나 가사짓기), 감상 등 6가지로 나누어 1대 1이나 그룹별로 나누어 치료를 실시하고 있다.

이미 외국의 경우 종합병원을 비롯해 개인 치료실까지 음악치료사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음악을 통한 정신적·신체적 치료에 대한 필요성은 우리나라 대부분 정신과 의사들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직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숙명여자대학교에서도 음악치료사 전문과정 신설을 검토중에 있기도 하다. 음악치료가 환자의 치유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음악치료 활성화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모색이 필요하다.

글 : 月刊 리크루트(1996년) 신영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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