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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병원 "직원 월급도 못줄 판"

중앙일보

입력

서울 마포구에서 23년째 40병상의 중소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L원장(65). 며칠 전 10년 이상 동고동락하던 직원 몇명이 떠나면서 그는 진료의욕을 완전히 잃었다.

현재 남은 직원은 15명. 40여명의 직원 중 3분의2가 지난 1년 사이 병원을 떠났거나 앞으로 떠날 예정이어서 폐업결정은 시간 문제다.

L원장은 "5개월치 월급이 밀려 직원들에게 더 있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다" 며 "40년 가까운 의사생활에서 얻은 것은 5억여원의 빚 뿐" 이라고 털어놨다.

현재 이곳의 하루 외래환자는 30~50명선. 한때 3백명까지 오던 환자가 분업 후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의약분업 이후 중소병원 몰락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4월부터 1년 동안 휴.폐업한 병원은 모두 68개. 전년도 23개보다 45개가 늘었다.

병원급 의료기관을 벼랑으로 모는 가장 큰 요인은 환자의 급격한 감소. 의약분업 이후 환자부담 진료비가 의원급에 비해 5~6배나 높아져 병원을 외면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만5천원의 진료비가 나왔을 경우 의원에 가면 자기부담 2천2백원만 내면 되지만 병원에 가면 초진비 8천4백원에 검사비.처방료 등을 합쳐 1만2천원 이상이 든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의약분업 후 중소병원 외래환자는 10~50%, 입원환자도 10~30% 줄어 병상가동률이 60%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원급의 증가는 언뜻 보기에는 바람직한 현상으로 이해된다. 1차진료를 담당할 주치의사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 문제는 요즘 개원이 집단화.고급화.전문화한다는 것이다.

병원협회 성익제 사무총장은 "의원과 중소병원.대학병원이 역할분담을 하는 체제로 가야 하는데 오히려 비대해진 의원들과 병원이 같은 환자를 놓고 경쟁을 해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개원의의 증가는 중소병원의 몰락을 의미하고, 급기야 의료전달체계의 허리가 잘리는 왜곡현상을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송건용 연구실장은 의원과 병원의 분류부터 다시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의원급의 입원실을 없애고, 1차진료를 유도함으로써 병원급 기능과 철저히 차별화하자는 것.

송실장은 "오지.벽지 병원은 조세 지원으로, 도시의 병원은 낮은 입원료를 현실화함으로써 지역중심병원으로 성장시켜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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