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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사판정 간소화로 윤리 논쟁 불붙어

중앙일보

입력

국립 장기(臟器)이식관리센터가 뇌사(腦死)판정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함으로써 소극적 안락사.낙태.대리모 인공수정 시술 허용 논란, 유전자 조작 논란 등에 이어 생명 윤리 논쟁이 다시금 불붙게 됐다.

특히 의료법학회 세미나(12일)에서 한림대 법학부 이인영 교수가 뇌사의 전면 합법화를 주장할 예정이어서 뇌사에 대한 찬반 논쟁으로 비화할 전망이다.

◇ 간소화 추진 배경=지난해 2월 공식적인 뇌사 판정 제도 도입 이후 절차가 복잡해져 뇌사자가 급감함으로써 장기 이식 건수가 크게 줄어든 점을 개선하자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지난해 2월 장기이식관리센터가 출범하며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던 장기 이식을 정부 창구로 일원화한 뒤 올해 4월까지 발생한 뇌사자는 68명이다. 1998년 1백62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뇌사자의 장기를 이용한 이식수술 건수도 98년 5백36건에서 2000년 2월~2001년 4월에는 2백92건으로 감소했다.

반면 지난해 2월 현재 2천84명이었던 장기 이식 대기자는 올 4월 현재 7천7백55명으로 늘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이식센터 관계자는 "뇌사자는 인공호흡기로 2주일 정도 생명을 연장하다 사망(심장사)한다" 면서 "뇌사자에게서는 모든 장기를 적출해 이식할 수 있으나 사망자는 각막만 가능하다" 고 말했다.

한밤에 뇌사판정위원회(60개 대형 병원에 설치)를 소집하거나 장기 적출(摘出)시 가족 두명의 서면동의를 받아야만 하는 애로를 해소해야한다는 실무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향후 법률 개정 과정에서 복지부가 간소화 쪽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뇌사판정위원회를 없애자는 안보다 덜 민감한, 장기 적출시 가족동의자의 수를 두 명에서 한 명으로 줄이자는 안을 지난달 초 생명윤리위원회에 상정했을 때 갑론을박하다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고 말했다.

◇ 찬반 논쟁=서울대의대 신경과 노재규 교수는 "사회사업가나 종교인 등 의사 아닌 판정위원들의 참석률이 저조해 위원회가 형식적 기구로 전락한 상태이기 때문에 신경과 의사 판단에 맡기는 게 타당하다" 고 말했다. 그는 무호흡 검사가 장기를 손상하는 점 등을 들어 뇌사 인정 기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이윤성 교수도 "뇌사 판정절차 간소화는 뒤늦었지만 적절한 조치" 라며 "의사협회 윤리지침안도 뇌사의 전제조건을 장기이식 목적으로 제한하지 않고 일반 사망(심장사)과 같은 죽음으로 인정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료사고를 다루는 전현희 변호사는 "뇌사 판정을 의사에게만 맡기면 자의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면서 "장기가 필요한 환자와 병원이 묵계하면 의사의 뇌사 판정이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 고 반문했다.

<뇌사란…>

뇌를 구성하는 대뇌.소뇌.뇌간 등 모든 뇌가 회복할 수 없는 병변을 일으킨 상태를 말한다. 스스로 호흡을 못하고 인공호흡기에 의존한다.

심장이 멎은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심장.간장.신장 등 체내 모든 장기를 이식할 수 있다. 뇌사 상태에서 심장이 멈추면 신체의 다른 장기나 조직이 순차적으로 죽게 돼 사망에 이른다.

뇌의 일부 세포가 파괴돼 인공호흡기 없이 스스로 호흡하며 영양을 공급받고 병상에 누워있으면 식물인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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