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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월마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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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없는 게 없다는 월마트지만, 딱 하나 없는 게 있다. 노동조합이다.

노조라면 아예 싹을 자른다. 채용 때부터 걸러낸다. 옳은 일에 흥분을 잘하는 사람? 기피 대상 1호다. 고학력자? 가능한 한 안 뽑는다. 뽑고 나서도 철통 감시가 이어진다. 언제 '노조 물'이 들지 몰라서다. 1991년 작성된 내부 지침서엔 노조 결성 낌새를 눈치채는 법 24가지가 적혀 있다.

'직장 동료들 간 전화 통화가 늘어난다.

회사 이익이나 정책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진다.

회의 때 과격한 질문이 많아진다.

중재, 고충처리, 근속 연수 등 노조 용어들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평소 안 친하던 직원들이 갑자기 자주 만난다.' 등등.

하나라도 이런 조짐이 보이면 관리자는 즉시 본사 노조 대책반에 알려야 한다. 대책반은 바로 전용기를 타고 현장으로 날아든다. 창업 40년이 넘도록 노조가 발을 못 붙인 이유다. 꼭 한 차례, 2004년 캐나다 퀘벡주의 한 매장이 노조를 만든 적이 있지만, 월마트는 이듬해 매장을 아예 폐쇄해 버렸다.

월마트의 무(無)노조 경영은 창업자 샘 월턴의 고객 철학에서 비롯했다. 월턴의 철학 제1조는 '고객은 항상 옳다'다. 제2조도 있다. '만약 고객이 옳지 않다면 제1조를 들여다보라'다. 고객이 부당한 요구를 해도 화내면 안 된다. 고객이 불만을 제기하면 불려가 이유 불문, 잔소리를 듣거나 사유서를 써야 한다. '열 걸음 지침'(Ten Foot Rule)은 필수다. 고객이 자신의 열 걸음 앞에 오면 항상 고객의 눈을 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도와줄 것을 물어야 한다.

'묻지마 반품 정책'도 여기서 나왔다. 고객은 굳이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맘이 변했다" 한마디면 족하다. 그러다 보니 캠핑 갔다 와서 텐트를 반품하고, 핼러윈 축제 후 파티복을 무르는 '월마트 반품족'이 득실하다. 그런데 반품을 모두 받아주려니 돈이 많이 든다. 다른 곳에서 아낄 수밖에 없다. 그중 쉬운 게 임금 줄이기다. 무노조 경영의 이유다.

월마트의 지난해 매출은 2850억 달러, 세계 23위인 사우디아라비아 국내총생산(GDP)보다 많다. 15개국에서 170만 명을 고용 중이지만 무노조 원칙은 깨진바 없다. 그런 월마트에 며칠 전 노조가 생겼다. 중국 푸젠성 진장점에서다. 30여 명이 노조를 결성하자 월마트는 "종업원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 '40년 고집' 월마트도 중국 시장만은 포기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이정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