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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진 마이어슨, 머물지 않는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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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진 마이어슨, BROADACRE, 2013-14, Oil on Canvas, 188x410㎝. [사진제공= 조현갤러리]

진 마이어슨, BROADACRE, 2013-14, Oil on Canvas, 188x410㎝. [사진제공= 조현갤러리]

“너는 어디에서 왔니?”
이런 질문을 듣고 당황하거나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여본 적이 있나요? 미국 출신의 화가 진 마이어슨(Jin Meyerson·48)은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이렇게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30대 초반에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마이어슨은 2004년 뉴욕의 자크 포이어 갤러리와 파리의 페로탱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며 주목받았습니다. 2004년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에서 영국의 세계적인 컬렉터 찰스 사치(77)가 한 부스에 전시된 그의 작품 전체를 구매해 화제를 모았죠.

이후 그는 국내에서도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는데요, 2013년 한국 기자들에게 그가 자신의 개인사를 밝혔습니다. “나는 1972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고아원에서 지내다가 다섯 살 때 미국 미네소타 주 유대계 스웨덴 가정에 입양돼 자랐다”고요.

이어 한 인터뷰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 자신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스물여섯 살 때부터 뉴욕에서 살았고, 이후 파리와 홍콩, 런던, 독일 등 세계 여러 도시를 떠돌며 살아온 그는 “머물지 않는 삶에 익숙해지고 중독된 것 같다”고 했습니다.

PULP, 2004, Oil, acrylic and reflective tape on panel, 305 x 394cm. [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PULP, 2004, Oil, acrylic and reflective tape on panel, 305 x 394cm. [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흥미로운 것은 최근 그의 거대한 캔버스에 자주 등장하는 도시와 자연의 형상입니다. 밀도 높은 도시의 건물과 도로, 대지와 나무, 그리고 군중은 마치 작은 퍼즐 조각들처럼 화면 위에 복잡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인공적인 도시이고, 어디부터가 자연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의 풍경이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듯이 표현된 그의 반추상(Semi-abstract) 작품은 미술 애호가들로부터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진 마이어슨, HWANGHAKDONG 20013 Oil on canvas 100 x 96 cm Petch O/Sansab Museum Collection, Bangkok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진 마이어슨, HWANGHAKDONG 20013 Oil on canvas 100 x 96 cm Petch O/Sansab Museum Collection, Bangkok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진 마이어슨, INCHEON 2017 Oil on canvas 90 x 60 cm Noblesse Collection, Seoul[.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진 마이어슨, INCHEON 2017 Oil on canvas 90 x 60 cm Noblesse Collection, Seoul[. [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진 마이어슨, YGGDRASIL 2012 Oil, acrylic, ink on canvas 200 x 300 cm Private Collection, Luxembourg[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진 마이어슨, YGGDRASIL 2012 Oil, acrylic, ink on canvas 200 x 300 cm Private Collection, Luxembourg[사진 진 마이어슨 제공]

“너는 어디서 왔니?” 어릴 때 이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하던 소년은 이제 없습니다. 입양과 잦은 이주 등 그가 살아오며 겪은 경험, 즉 흔들리는 정체성은 그에게 중요한 자산이 됐습니다. 지금 부산 달맞이고개에 자리한 조현화랑에서는 국내외 작가 7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섬머 쇼(Summer Show)’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박서보의 ‘묘법 No.170816’, 정광호의 섬세한 조각 ‘THE FLOWER 89205’과 더불어 진 마이어슨의 대형 작품(‘BROADACRE’)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10여 개 도시를 돌며 활동해온 마이어슨은 몇 년 전부터 서울 문래동에 정착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내년에 조현화랑에서 큰 개인전을 열 예정이고요.

“예술은 깨달음과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마이어슨. 서울에서의 그의 삶과 경험이 작품에 또 어떻게 녹아들고 있을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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