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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자금줄 파보니…의류 밀수출해 환치기로 번 돈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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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국세청은 올해 서울 동대문 옷 가게 사장 A씨의 아파트 매입 자금 출처를 조사하다 수상한 점을 발견했다. 자금조달 계획서에는 은행 대출이나 증여를 받은 돈이 아닌 거액의 현금을 자기 돈으로 조달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조사 범위를 옷 가게로 넓히자 새로운 범죄 혐의가 속속 드러났다. A씨는 중국 보따리상에 보세 의류를 밀수출한 뒤 판매대금을 환치기업자로부터 직접 송금받는 식으로 사업소득을 감췄다. 김길용 국세청 부동산납세과장은 “A씨는 외환 거래 허가를 받은 금융기관을 건너뛴 채 환치기업자와 직접 자금을 거래하면서 밀수출한 행위가 적발됐다”며 “A씨에는 사업소득을 숨긴데 대한 소득세 탈루 혐의로 수억원대 추징금을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밀수출·환치기로 번 돈, 부동산 매입하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밀수출·환치기로 번 돈, 부동산 매입하고.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자금 출처 조사 결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자녀에게 상가를 물려준 부모도 있었다. 부동산매매업을 하는 B씨는 수도권 소재 땅을 사놓은 뒤, 이곳에 상가 2개동을 지었다. 이후 상가 지분 절반씩을 초등학생 자녀와 미취학 자녀에게 각각 나눠줬다. 이 과정에서 증여세를 낸 기록은 없었다. 국세청은 B씨에 대해서도 수억원대 증여세를 추징했다.

초등생·미취학 자녀에게 상가 편법 증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초등생·미취학 자녀에게 상가 편법 증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국세청, 다주택자 세무조사 왜? 

국세청은 28일 다주택자 등 부동산 탈세 혐의자 413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폭등하는 ‘풍선효과’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편법으로 여러 주택을 사들이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조사 대상자는 국세청 내 ‘부동산거래탈루대응 태스크포스(TF)’ 감시 내용과 자체 과세 자료,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 통보 자료 등을 바탕으로 선정했다.

부동산을 사들일 때 제출하는 자금조달 계획서가 조사자를 선정하는 기초 자료가 됐다. 이 계획서상 소득 없이 고액 자산을 사들인 30대 이하 연소자나, 100만원 안팎의 소액으로 법인을 세운 뒤 다수 주택·분양권을 사들인, 자금 출처가 불분명한 사람이 조사 대상에 올랐다. 자금조달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는 고액 전세 거주자에 대해선 사업소득 탈루 혐의나 편법 증여 혐의가 없는지 검증 강도를 강화했다. 부모가 자녀 대신 5000만원 이상 전세 보증금을 내주는 식으로 재산을 증여하면 증여세를 내도록 돼 있다. 업·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부동산 강의로 인지도를 높인 뒤 아파트를 중개하면서 관련 수수료 수입을 사업소득에서 누락한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조사하기로 했다.

탈세 혐의자 '영끌' 3040, 유독 많아

조사 대상자는 최근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집을 산 3040 세대가 유독 많았다. 전체 조사자 413명 중 30대는 47.7%(197명), 40대는 25.9%(107명)였다. 소득이 없는 20대 이하도 39명에 달했다.

국세청은 지난 2월 서울·중부지방국세청에 ‘부동산거래탈루대응 TF’를 구성한 데 이어 이달에는 인천·대전지방청에도 이를 추가로 설치했다. 지난달 17일 ‘6·17 대책’ 이후 자금조달 계획서 제출 대상이 확대되면서 국세청으로 통보되는 탈세 의심자도 늘어날 전망이다. ‘토지거래 허가구역’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송파와 용산 지역 등에 대한 국토부 실거래 기획조사 결과도 조만간 국세청에 통보된다.

김태호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은 “재산 형성 초기인 30~40대 계층이 최근 주택을 많이 취득하다 보니, 조사 대상자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정당하게 세금을 내지 않고 편법으로 부를 축적하는 사례가 없도록 철저히 과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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