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돌연’ 중국에 휴스턴 총영사관 폐쇄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돌연’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보아 중국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공산당 정권 교체까지 외치는 미국 #중국 민족주의 정서 자극해 냉전 유도 중 #중국, 미국 도발에 소련 전철 밟을까 우려 #'시간 끌기'로 미국이 제풀에 지치길 기다려
미국의 최근 중국 때리기는 이처럼 상상을 초월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23일 연설에서 중국을 "프랑켄슈타인(시체로 만든 괴물)"이라고 칭하면서 “중국이란 새로운 독재 국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외쳤다. 이젠 대놓고 중국 공산당 정권 교체를 주장하고 있다.
중국 학계는 경악하고 있다. 추수룽(楚樹龍) 칭화(淸華)대학 교수는 “이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단교를 결정해도 놀라지 않을 상황”이라고 말했고, 스인훙(時殷弘) 인민(人民)대학 교수는 중·미 관계가 “자유 낙하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거센 포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린(吉林)성의 곡창 지대를 '여유롭게' 시찰하고 있다. 미국의 속셈을 읽었기에 중국은 중국 방식대로 나아간다는 계산이다.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의 지난 25일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냉전의 함정’을 파고 있다고 본다. 미국은 현재 정상적인 무역이나 경제적 수단을 통해 중국을 억제할 방법이 없다.
남은 건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카드다. 이 같은 최후의 카드 사용을 앞두고 중국을 도발해 중국의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려 한다. 중국이 흥분해 미국이 거는 싸움에 맞서면 국력이 소진해 망하고 마는 소련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바로 ‘냉전의 함정’이다.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건가. ‘시간의 함정’을 파고 있다고 둬웨이는 말한다. “손 따라 두지 않는다”는 바둑의 격언처럼 미국이 하는 대로 끌려다니지 않으면서 시간을 끌어 미국의 힘이 빠지게 하는 책략을 구사 중이란 이야기다.
한편으론 군사적 방비에 신경 쓰면서 다른 한편으론 중국 경제와의 관계를 끊으려는 미국의 디커플링 전략에 맞서 중국 국내 경제의 완비에 힘을 쏟는다는 작전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 16일 발표한 ‘중국 향촌 산업발전 계획 2020~2025년’이 그런 구상 중 하나다.
미국의 중국 압박이 몇 년은 더 계속될 것으로 보고 중국은 향후 5개년에 걸쳐 농촌산업을 대대적으로 진흥시키며 이를 통해 향후 5년간 1500만 명의 도시 인력을 농촌으로 흡수한다는 계획이다. 농촌에서만 새로운 일자리 6000만 개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
시 주석이 지린성 옥수수밭 등 곡창 지대를 다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 인민일보는 26일 “손안에 양식이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고 한 시 주석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소개 중이다.
1982년 3억 5500만t이던 곡물 생산이 2019년엔 6억 6400만t으로 87% 늘었으며 수재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풍년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중국의 향후 5개년 농촌진흥 계획은 단순한 곡물 증산이 아니라 농촌에 인터넷을 접목해 농산품 가공과 농촌 관광 등에서 완전히 새로운 농촌경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과거 중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을 ‘도시 봉기’가 아니라 ‘농촌의 도시 포위’로 성공시켰다. 시진핑은 미국의 거센 압박에 맞서 다시 ‘농촌’을 강조 중이다. 밭일하면서 시간은 언제나 중국 편이란 믿음으로 미국이 제풀에 지치기를 기다린다는 계획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