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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테크 열공'하는 21대 국회, 20대와 다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1대 국회가 ‘테크 공부’에 돌입했다. 지난 6·8·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디지털경제혁신연구 포럼, 4차산업혁명 포럼, 모빌리티 포럼이 차례로 출범식을 열었다. 다음 달 19일에는 ICT융합포럼이 발족한다. 디지털·4차산업을 배우겠다는 이 모임들에 정·부 회원으로 등록한 의원만 117명이다.

그러자 네이버·카카오·현대자동차·삼성전자·KT 등 거대 테크 기업 대표와 임원들이 줄줄이 국회에 나타났다.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 나온 게 아니라, 공부 모임의 강연자·토론자 자격이다. 21대 국회는 ‘테크 현장을 모른다’고 질타받았던 20대 국회와는 다를까, 산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더불어민주당 윤영찬(오른쪽부터), 이용우 의원, 미래통합당 이영, 허은아 의원이 6일 국회 디지털경제혁신연구포럼 출범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윤영찬(오른쪽부터), 이용우 의원, 미래통합당 이영, 허은아 의원이 6일 국회 디지털경제혁신연구포럼 출범식에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20대처럼은 안 돼’

20대 국회는 기술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신·구 산업 간 중재와 갈등 해소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모빌리티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택시 기사들이 잇따라 분신하고, 카풀은 사실상 금지됐으며, 심야 콜버스와 ‘타다’(기사 포함 렌터카 호출 서비스)도 중단됐다.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 통과된 ‘n번방 방지법’(정보통신망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정작 텔레그램에는 효력이 없고 네이버ㆍ카카오 같은 국내 업체 규제만 더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21대 의원 중에서도 이를 고민한 이들이 있다. 중앙일보의 취재에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은 “4차산업혁명이 가져올 사회적 갈등을 미리 살펴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서병수 의원(미래통합)은 “기술 변화에 인문 사회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했다. 윤영찬 의원(더불어민주)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주같이, 우리나라 테크 기업인도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조명희 의원(미래통합)은 “ICT 산업이 제대로 클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이 포럼을 주도했다.

5월부터 준비, 섭외 경쟁도

포럼 구성은 지난 5월 말부터 논의됐다. 물밑에선 회원 모집을 경쟁했다. 의원 10명 이상이 모여야 국회에 정식 등록되는데, 국회 사무처가 의원 1인당 참여 단체를 3개로 제한하기 때문.

여야 5선인 이상민·서병수 의원이 먼저 4차산업혁명포럼을 꾸려 김진표·안민석·홍익표(이상 더불어민주)·유경준(미래통합) 의원 등을 회원으로 들였다. 변재일(더불어민주)·조명희(미래통합) 의원이 주도한 ICT융합포럼은 6월 초 성원이 됐다. 권성동(무소속)·이원욱(더불어민주) 의원이 공동대표를 맡아 전기차·자율주행 등을 연구하는 모빌리티 포럼도 구성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영찬·이용우, 미래통합당 이영·허은아 등 의원 4명이 공동대표를 맡은 디지털경제혁신연구포럼은 회원 모집에 애를 먹다 6월 말 성원 됐다. 구성은 늦었지만, 출범식에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 등을 섭외해 주목을 받았다. 각 포럼은 내빈·연사 섭외에 미묘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4차산업혁명포럼 공동대표인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병수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8일 창립 심포지엄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4차산업혁명포럼 공동대표인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서병수 미래통합당 의원이 지난 8일 창립 심포지엄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여야 힘 싣자, 기업들 '규제 완화' 기대

4개 포럼의 출범식엔 박병석 국회의장,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등이 참석해 축사했다. 여당 인사들은 정부 기조인 ‘디지털 뉴딜’을, 야당은 ‘코로나 이후 새로운 경제 시스템’을 강조했다.

기업인들은 규제 완화를 요구했다. 6일 디지털경제혁신연구 포럼에서 여민수 카카오 대표가 “제도가 받쳐주지 않아 (데이터 기술) 활용을 못 했다”, “국내외 기업에 적용되는 규제 벌칙이 다르다”고 직설 발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현대차·삼성전자·KT·SK 임원들이 참여한 13일 모빌리티포럼에서는 “테슬라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국내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자율주행차도 (타다처럼) 이해관계 충돌이 불가피한데, 최소화할 방법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8일 4차산업혁명포럼 창립 심포지엄에서 윤성로 4차산업위원장은 “공학자로서는 기술 레볼루션(혁명)을 원하지만, 사회에는 에볼루션(진화)이 적용돼야 한다”고 했고,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기술 패권의 쓰나미가 몰려온다”며 의료·데이터 규제 완화와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13일 열린 국회 모빌리티포럼 창립세미나. 권성동(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원욱(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의원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13일 열린 국회 모빌리티포럼 창립세미나. 권성동(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이원욱(앞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의원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사진 연합뉴스

기업 편드나, 시선은 부담 

테크 업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을 반긴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실이나 애로사항을 설명할 기회가 있을수록 좋다”는 것. 보안업체 창업자 출신 이영 의원, 네이버 임원 출신 윤영찬 의원, 카카오뱅크 대표를 거친 이용우 의원 등 테크 출신 초선들이 가교 구실을 하리란 기대도 있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있다. 포럼 실무를 맡은 국회 보좌진은 “현장 목소리를 듣는 취지이지만, 큰 기업들과의 모임은 아무래도 부담이 있다”고 했다. “기업 편들려 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포럼 행사에 기업이 참여할 때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나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같은 유관 단체를 꼭 부른다고 한다.

국회 ICT융합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변재일(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명희(오른쪽)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 연합뉴스

국회 ICT융합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변재일(왼쪽)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조명희(오른쪽) 미래통합당 의원. 사진 연합뉴스

산자위 70%, 과방위 55% 초선 

21대 국회는 300석 중 151석이 초선(50.3%)이다. 16년 만에 초선 비율이 절반을 넘었다. 특히 산업ㆍ테크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20명 중 초선 11명, 55%)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30명 중 초선 21명, 70%)에 초선 비율이 높다. 새로운 의정에 대한 기대와 설익은 규제법에 대한 우려가 업계에서 동시에 나오는 이유다.

중앙일보 팩플팀은 테크와 정책을 점검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를 출시했다. 테크 정책이 시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미리 따져보고, 논란의 이슈에 담긴 기술ㆍ경제ㆍ법적인 문제를 검증해보는 내용을 담아 매주 화요일 무료 발송된다. 구독신청 페이지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3985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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