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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원격수업으로 교육격차 더 심해진다, 사회가 대안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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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볼티모어에 사는 사라 엘라이는 다음 학기 두 자녀를 가르칠 개인 교사를 물색 중이다. 코로나19 확산 후 도입된 원격교육에 만족할 수 없어서다. 매달 2800달러(334만여 원)가 더 들지만, 그와 남편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 이를 기꺼이 감당할 것이라 했다. 이 사례를 보도한 미국 NBC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 경고했다.

에듀테크 ‘에누마’ 이수인 대표 #“온라인 교육의 한계 직시해야 #저소득층 아이는 글 못 배울 수도 #미국선 공공도서관 활용해 지원”

코로나19로 교실 수업이 원격교육으로 바뀌면서 교육격차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상황도 미국과 다를바 없다고 말한다. 추가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 가정과 공교육 외에 딱히 대안이 없는 가정 사이 격차는 코로나19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에듀테크 스타트업 에누마 이수인(44) 대표는 지난달 2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모니터 앞에 앉은 아이가 학습 가능한 상황이냐’ 라는 문제를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에누마는 지난해 테슬라 최고 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가 기금을 낸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Global Learning XPRIZE)’에서 종합학습 앱 ‘킷킷스쿨’로 우승한 회사다. 인터뷰는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으로 진행됐다.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코로나19가 촉발한 교육격차 문제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에누마]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코로나19가 촉발한 교육격차 문제에 주목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에누마]

코로나19가 교육격차를 어떻게 더 벌리나.
기존 공교육은 앱으로 치자면 ‘도달률 100%’짜리 서비스였다. 학교에 아이를 보내면 어떻게든 뭔가를 배워온다. 부모와 사회가 공교육에 기대하는 일종의 약속인데 그게 코로나19로 깨졌다. 학교에 갔다고도, 안 갔다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학습을 못 하는 학생 비율이 많이 늘었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교육에 지장을 받은 학생은 190개국 16억 명에 달한다. 전 세계 교육기관 등록 학생 중 90%가 넘는다.
한국은 순차 등교를 하고 있다.
여태까지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학교의 본질적 기능이 있다. 아이들을 잡아놓는 기능이다. 딴짓하지 못할 환경에 아이를 데려다 놓고, 애들이 너무 지루한 나머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학교가 만들어줬다. 교사가 수시로 들여다보고 대면 소통으로 아이들을 끌고 갈 수 있었다. 하지만 1주일에 한두 번 학교에 나와서는 이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원격 교육은 대안이 될 수 없나.
학교에서 교사가 가르쳐 주는 수준까지 원격교육이 맞추지 못한다. 보조 역할 정도다. 교사의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교육이 효과를 봤다는 연구결과는 국제적으로 드물다. 에누마가 우승한 엑스프라이즈 대회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아이들 대상으로 15개월간 킷킷스쿨로 실험한 게 거의 유일한 성공사례다. 그것도 아프리카 오지에서 다른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이뤄진 결과다. 왜냐면 온라인상에서 자기 절제를 배우는 게 쉽지 않아서다. 컴퓨터에 게임, 유튜브, 공부거리가 있을 때 아이가 공부를 선택할 것이라 자신할 수 있을까. 온라인 교육은 완벽한 해법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19 전에도 안되던 게 게 코로나19 이후라고 될 리가 없지 않나.
코로나19가 촉발한 원격교육은 교육격차를 키운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사진 셔터스톡]

코로나19가 촉발한 원격교육은 교육격차를 키운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사진 셔터스톡]

교육격차를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다 똑같이 학교를 못가도, 원래 공부를 잘하는 아이는 계속 잘한다. 경제적으로 여력 있는 집은 학원에 보낸다. 그러나 집에 그냥 있어야만 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학교에서 하던 것처럼 공부하는 아이는 몇 퍼센트 안 된다. 코로나19 전에도 교사가 신경 써줘야 따라왔던 애들은 원격교육이라는 상황에서 계속 다른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책 결정자들은 이 부분을 직시해야 한다. 학교에 처음 가는 아이들, 온라인 교육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저소득층 아이들은 글 읽는 것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할 수 있다.
정부에선 쌍방향 원격 수업 확대하는 등 대책을 만들고 있다.
정책 결정자들이 속한 세상의 아이들은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는 체계가 잡힌 애들이 많다. 그런데 세상엔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더 많다.
어떤 대책이 필요한가.
지금 나오고 있는 정책들은 모바일 기기를 나눠주고 와이파이 깔고 인터넷 속도 올리고 그런 논의다.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온라인 교육이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을 인정하고 학교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줄 창의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에선 부유층을 중심으로 교사를 고용하는 소규모 사설 그룹과외 ‘파드(POD)’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공공 정책이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어떻게 하고 있나. 
최근 샌프란시스코는 여력이 없는 부모들을 위해서 시내 공공도서관 등을 활용한 학습 지원책을 발표했다. 9월부터 도시 내 수십 개 도서관 및 주민센터를 원격학습 허브로 만드는 내용이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학생 6000여 명이 대상이다. 원격 수업으로는 불가능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크다. 중요한 건 교육격차가 심해질 것이라는 점을 모두가 인정하고 활발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선 그런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아 안타깝다.
 고등학교 3학년 등교 개학을 앞둔 지난 5월 광주광역시 북구 빛고을고등학교 교실 책상이 1m씩 거리를 둔 채 배치돼 있다. [중앙포토]

고등학교 3학년 등교 개학을 앞둔 지난 5월 광주광역시 북구 빛고을고등학교 교실 책상이 1m씩 거리를 둔 채 배치돼 있다. [중앙포토]

이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은.
온라인 교육을 잘하자, 더 많이 하자는 게 해법이 될 수 없다. 학교에 가지 못하고 부모도 없이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유혹하는 사이트를 어떻게 차단할지, 학교가 아닌 동네 기반으로라도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어떻게 환경을 조성할지 고민해야 한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 맞벌이를 하는 가정에선 아이의 미래와 경제적 안정을 놓고 저울질해야만 하는 현실이 공론화돼야 한다. 모든 가정에 닥쳐올 질문이다. ‘아이의 미래를 포기할 것인가, 부모의 커리어를 포기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개인에게 맡기지 말고 사회가 찾아야 한다. 학교도 최선을 다해야 하고 온라인 교육 제품들도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야겠지만, 뻔히 앞이 보이는 온라인 교육의 결과를 각 가정이 알아서 책임지라고 떠넘기면 안 된다.

박민제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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