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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박수 칠 때 떠난 톱 모델, 그와 소환한 90년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42)

시청률 1위, 주요 음원 차트 모두 1위. MBC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프로젝트 혼성그룹 ‘싹쓰리’ 이야기다. 즐겨 보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는데 유재석과 이효리, 비라는 막강한 조합이 눈에 띄었고, 1990년대 스타일의 댄스뮤직을 한다는 그들의 선언에 관심이 생겨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그들이 소환하는 당대의 음악과 춤, 패션 등이 나의 20대를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일과 사랑을 찾아 좌충우돌 부딪치며 지냈던 대학 시절부터 취재와 편집 작업, 회의와 술자리로 하루가 꽉 차 있던 기자 초년병 시절까지 1990년대는 숨 가쁘게 다이내믹했고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때를 다시 돌아볼 기회가 이렇게 생기다니, 기대하지 않던 일이라 더 즐겁다.

“나 다시 또 설레어 /이렇게 너를 만나서 /함께 하는 지금 이 공기가 /다시는 널 볼 순 없을 거라고 /추억일 뿐이라/ 서랍 속에 꼭 넣어뒀는데….”

세 사람이 웃으며 신나게 부르는 ‘지난 여름 바닷가’의 가사처럼 말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신경 쓸 일과 사람이 늘어난다. 그만큼 일상은 분주해진다. 그래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진다. ‘뭐 신나는 일 없나’를 찾던 1990년대의 바이브는 당연히 없다. 그러니 이렇게 추억이라도 끄집어낼 수 있는 영상을 보는 게 즐거울밖에.

이효리, 비, 유재석이 함께한 '싹쓰리'. [사진 MBC '놀면 뭐하니?']

이효리, 비, 유재석이 함께한 '싹쓰리'. [사진 MBC '놀면 뭐하니?']

마침 이달에는 나를 당시로 소환하는 또 다른 이슈가 있었다. 창간 32주년 기념호인 우먼센스 8월호가 그것이다. 잡지 만드는 사람의 일종의 습관 같은 건데, 창간 몇 주년이란 타이틀이 붙는 달이 되면 분주해진다. 독자에게 처음 잡지를 선보일 때의 초심을 생각하며 그 잡지만의 개성을 담은 기획 기사와 특별한 인터뷰를 실으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여를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뒤돌아보게 되었다. 내친김에 1988년부터 지금까지의 우먼센스를 책임졌던 편집장을 만나 당대의 여성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나보다 20여 년 선배인 초대 편집장은 ‘언제나 소비자가 어디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2년 전 여성잡지의 소비자는 기혼 여성이었고, 그래서 우먼센스의 캐치프레이즈도 ‘센스있는 여성, 젊게 사는 주부’로 정했다고. 확실히 요즘의 여성잡지와는 정말 다르다. 여성은 일정한 시기에 결혼해 주부가 된다는 당시의 일반적 사회상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당시의 잡지를 보면 살림살이와 가족관계에 관련된 기사가 눈에 많이 띄었다. 그런데도 당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본격화되고 대단지 신축 아파트가 분양되던 때라 여성의 일자리나 리빙 관련 기사도 놓치지 않았다고 편집장은 말했다.

1988년 당시 취재팀장이었고 몇 년 뒤 편집장을 역임했던 또 다른 선배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1988년은 알다시피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리던 때였어요. 모든 매체가 관련 기사와 비화를 다뤘고 여성지도 마찬가지였죠. 좀 다르게 가고 싶었어요. 물론 기사를 놓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주부들이 제일 관심이 있고 고민하는 문제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주방대연구’ 특집도 만들었고, 선생님에 대한 돈봉투 문제도 그래서 끄집어냈죠.” 올림픽 개막식의 굴렁쇠 소년, 지강헌이 인질을 잡고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 압구정동에 처음 문을 연 맥도널드 매장에 대한 기사 등 당시의 기억이 소환되기 시작했다.

우먼센스 창간호 화보. [사진 우먼센스]

우먼센스 창간호 화보. [사진 우먼센스]

창간호 화보 모델이었던 박영선 씨도 만났다. 명실공히 대한민국 원조 톱 모델인 박영선 씨는 1980년대 10대의 나이로 모델로 데뷔해 각종 CF를 찍으며 커리어를 시작했고 1990년대에는 패션계와 방송영화계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며 최고의 엔터테이너로 활약했다. 작고 예쁜 얼굴과 큰 키는 그녀만의 독보적인 시그니처였다. 그녀와 창간호 기념 화보를 찍었고 이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1988년 모델을 다시 초청해 2020년에 촬영하다니, 너무 뜻깊은데요. 창간호에서 제 어릴 때 모습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어요. 기억하지 못했는데 정말 놀랐고요. 오늘 촬영 컨셉도 그래서 그 당시 메이크업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갈매기 눈썹에 섀도우 컬러를 많이 쓰고, 립 라인도 그린 딱 1990년대 메이크업이요.”

그녀와 함께 창간호를 펼쳐보며 당시를 떠올려봤다. 잡지가 전화번호부(아마 지금 독자들은 가정마다 한 권씩 있었던 노란색 전화번호부도 모를 수 있다)만큼 두꺼웠던 시절 말이다. 인터넷도 모바일도 없었던 때,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와 광고는 잡지를 통해 읽었다. 그래서 잡지의 내용도 지금보다는 훨씬 다양했다. 패션, 뷰티, 리빙의 생활정보와 이슈가 되는 기사와 인터뷰 외에도 사건 비화, 소설, 수필 등이 특집으로, 단독으로 꽂히던 때였다.

창간호 화보 모델이었던 박영선 씨와 함께. [사진 우먼센스]

창간호 화보 모델이었던 박영선 씨와 함께. [사진 우먼센스]

박영선 씨가 주로 활동했던 영역인 패션 뷰티 관련 기사를 펼쳐봤다. 레트로가 트렌드가 된 요즘이라 잡지에 실린 옷이 낯설지 않았다. 어떻게 입느냐에 따라 굉장히 쿨해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진 찍는 방식이 달라서 그렇지 정말 차이가 없네요. 저는 1988년도에 입었던 옷들 지금도 가지고 있어요. 가끔 입고 나가기도 해요. 유행은 돌잖아요.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그게 옛날 옷인지 모르더라고요”라며 박영선 씨도 내 의견에 동의했다. 색깔별로 가지고 있었던 페이크 목폴라, 죠다쉬와 서지오바렌테 등 지금은 사라진 청바지 브랜드, 나이키를 가지고 싶어해 각종 너이키 등 짝퉁 운동화가 나왔던 것, 핑클 파마와 나이아가라 파마 등 1980년대 패션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시의 상황을 언급하게 됐다.

“이 당시에 저는 진짜 바빴어요. 하루도 안 쉬고 일이 있었어요. 모든 잡지에 제가 나왔었거든요. 과거에 일했던 게 주마등처럼 떠오르네요.”
“그러게요. 영선 씨는 1980년대와 1990년대가 전성기였잖아요. 방송도 많이 하고, 영화도 찍은 거로 알고 있는데 1999년에 갑자기 은퇴했어요. 이유가 뭐였나요?”
“제 나이 32살에 은퇴했어요. 그때만 해도 그 나이가 되면 모델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요즘엔 그렇지 않은데 말이에요. 그러니 불안하기도 하고,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느낌으로 은퇴했죠.”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사회 분위기였다. 혈기방장했던 20대만이 가졌던 에너지는 즐겁고 그리운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곱씹어보니 나 역시 여성으로 취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가족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과 그로 인한 책임을을 잘 해내기 위해 버거워했다. 그렇게 30대와 40대를 맞았고 지금은 50대다. 그 ‘찐한’ 시간을 잘 견뎌왔기에, 그때를 소환하는 지금의 시간이 즐거울 수 있다. “지난 여름 바닷가 너와 나 단둘이 /파도에 취해서 노래하며 같은 꿈을 꾸었지 /다시 여기 바닷가 이제는 말하고 싶어 /네가 있었기에 내가 더욱 빛나 별이 되었다고.” 싹쓰리의 노랫말처럼 말이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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