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알바시켜줄게” 미성년자와 술 마시고 성추행한 편의점 주인

중앙일보

입력

[중앙포토]

[중앙포토]

지난해 2월 18살 A군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구인 광고를 보고 인적사항을 보냈다. 그러자 편의점 업주 B씨는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 장소로 오라”고 했다. 처음으로 알바에 지원해본 A군은 술집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면접이 이뤄졌다. 두 사람은 인근 호프집으로 이동해 술을 더 마신 후 헤어졌다.

직후 B씨로부터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라”는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A군은 “집에 가야 한다”고 거절했지만, 자신의 집에 오지 않으면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B씨의 말에 결국 그의 집으로 향했다. A군은 당시 경제적으로 어려워 편의점 알바가 꼭 필요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B씨 역시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었다.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 편의점 업주 무죄

B씨는 이후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현행법상 강제추행죄가 적용되려면 폭행‧협박이 동반돼야 한다. 반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는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게 지위나 권세를 이용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게 했다면 인정된다.

B씨는 “알바 채용을 하지 않을 것 같은 카톡을 보낸 것만으로는 충분한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B씨의 손을 들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알바 구직자인 A군을 ‘업무 관계로 인해 B씨의 감독을 받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느냐가 쟁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성추행이 일어나기 전까지 알바 채용이 이뤄지지 않았고,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기에 B씨를 ‘직장 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보지 않았다. 특히 면접이 언제 종료됐는지도 불분명한 이 사건의 경우 A군과 B씨를 감독-피감독 관계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 “절박한 상태 이용해 피해자 추행” 인정

반면 2심 재판부는 B씨가 A군을 사실상 감독하는 지위에 있으며 채용 권한을 이용해 A군을 추행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채용 절차에서 면접자는 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다양한 종류의 질의를 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업무에 적합한지 확인하기 위한 행위를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 구직자는 이미 다른 직장에 채용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러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응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채용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근로계약 관계보다 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알바 채용 과정에서 A군이 절박한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위력으로 피해자를 추행했고, 그 추행의 정도도 상당히 무겁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및 80시간의 사회봉사,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3년간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A군에게 용서를 구하고 합의한 게 유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대법원 “채용 절차도 업무 관계에 포함”

B씨는 이에 불복했고,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만장일치로 2심 재판부의 결정이 옳다고 판단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해 자기의 보호‧감독을 받는 사람’에는 직장 안에서 감독을 받는 상황뿐 아니라 채용 절차에서 영향력의 범위 안에 있는 사람도 포함된다고 판단했다. 또 B씨의 지위, A군의 연령, B씨와 A군의 관계, 범행 당시의 정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B씨가 위력을 행사해 A군을 추행한 것이 맞다고 결정했다.

이가영 기자 lee.gaoyung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