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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징용기업, 돌연 변호인 선임 왜···“패소위기 몰리자 재판 지연작전”

중앙일보

입력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관련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외면해온 일제 강제징용 기업들이 소송 15개월 만에 변호인을 선임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전범 기업들이 패소위기에 몰리고 나서야 변호인을 선임했다"는 반응이다.

미쓰비시중공업·스미세키홀딩스 변호인 선임 #근로정신대모임 "패소 위기 몰리자 대응" 분석 #피해자들, "일제 기업들 소송 알고도 지연전략"

미쓰비시·스미세키 변호인 선임

지난 2019년 4월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4월 29일 오전 광주 동구 광주지방변호사회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전남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전범기업 대상 1차 집단소송 기자회견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광주전남지부와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관계자, 소송에 참여한 원고들이 회견문 낭독을 마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22일 '근로정신대와함께하는시민모임'에 따르면 강제징용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응하지 않았던 미쓰비시중공업과 스미세키홀딩스(탄광)가 각각 소송대리인 위임장을 담당 재판부에 제출했다.

 앞서 광주·전남 지역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등 20명은 지난해 4월 29일 미쓰비시중공업과 스미세키홀딩스 등 일제 강제징용 기업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었다. 이중 미쓰비시중공업 피해자가 12명, 스미세키홀딩스는 8명이다.

 광주지법에서는 지난해 11월과 12월, 올해 4월과 5월 등 4차례 재판이 열렸지만, 미쓰비시중공업과 스미세키홀딩스 측은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변호인도 선임하지 않은 상태에서 각 기업에 발송한 소송 서류가 제대로 전달됐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패소 위기 몰리자 변호인 선임"

 앞서 광주지법 민사14부는 지난 5월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 미쓰비시 중공업과 스미세키홀딩스가 재판에 응하지 않더라도 원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재판부가 피고 측에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시송달'을 결정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는 '궐석재판'으로 속행 의사를 밝힌 것이다.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만큼 재판 결과는 미쓰비시 중공업과 스미세키 홀딩스의 패소가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지난 1월 14일 오전 광주 동구 변호사회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33명과 함께 일본 6개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14일 오전 광주 동구 변호사회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33명과 함께 일본 6개 기업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대해 이국언 근로정신대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두 기업이 패소 위기에 몰리자 변호인을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며 "패소하면 (근로정신대 문제 같은 외교적 논란 외에도) 실질적인 손해배상 절차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대응한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 지난 2018년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집단소송 패소 이후 국내 자산이 압류됐고, 지난해 7월에는 피해자들이 자산 매각도 신청해놓은 상황이다.

"일제 기업 재판지연 전략 분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궐석재판 직전 변호인을 선임한 것은 강제징용 위자료 청구 소송 진행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킨 것"이라고 봤다. 미쓰비시중공업이 재판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사이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 12명의 강제징용 위자료 청구 소송 원고 중 한 명인 고(故) 이영숙(당시 89세) 할머니가 지난해 7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재판을 보지 못한 강제징용 피해자는 또 있다. 지난해 4월 미쓰비시중공업과 스미세키홀딩스에 강제징용 집단소송이 제기될 당시 3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또 다른 7개 일제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그동안 64명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모든 기업은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았었다. 미쓰비시중공업 측 변호인이 참여하는 첫 재판은 오는 23일 광주지법 203호 법정에서 진행된다. 스미세키홀딩스의 재판은 오는 9월 중 열린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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