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0대 주부들 아기 봐주기로 다시 '활력'

중앙일보

입력

자녀들이 대학이나 직장에 들어가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들은 뿌듯하면서도 허전하다. 남편은 여전히 밤 늦게 들어오고 언제나 텅 빈 집.

'빈 둥지 증후군' 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들이 느끼는 허탈한 마음은 때로 우울증을 동반하기도 한다. 게다가 이때쯤엔 갱년기의 육체적.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지게 마련.

이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 때로 약물에 의존하기도 하고 취미생활에 몰두하기도 한다.

한편 그중엔 그 어렵다는 아이 돌보기를 통해 갱년기를 극복하고 삶의 새로운 활력을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경제적으로도 여유있는 편인 주부 김미순(51.서울 강남구 청담동)씨가 처음 다른 집 아기들을 돌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두 아들을 모두 군대에 보내고 나서 썰렁해진 집안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는 아이 봐 줄 사람을 찾던 4개월 된 이웃집 아기 진경이를 돌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앞섰어요. 하지만 내 손녀라도 그리 예쁠까 싶게 정이 가더군요. 두 아들을 키웠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아기 키우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어요. 오히려 우울하고 침체됐던 생활이 기쁨과 활력에 넘치게 된 것이 고마울 뿐이에요" .

김씨의 자랑은 또 있다. 진경이의 엄마가 건축사 시험에 2등으로 합격한 것. "내가 아이를 돌봐준 덕분에 아이에 대한 신경을 덜 쓰고 시험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라는 김씨는 여성인력의 사회적 기여를 높이는데 자신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진경 엄마는 얼마전 김씨를 믿고 아예 미국에서 1년간 건축공부를 결심하기까지 했다고.

남편이 대기업 간부인 윤정미(51.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도 두 아이를 외국에 어학연수 보낸 후 아이 돌보기를 시작했다.

IMF(국제통화기금)한파로 아이들 학비가 신경쓰여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육아에 관해 강의를 하러 다닐 만큼 전문가가 됐다.

"IMF가 아니었다면 다른 중년 주부들처럼 여행을 다니거나 운동을 하면서 여가를 즐겼겠죠. 이젠 형편이 좋아졌지만 두 딸이 아이를 낳아서 손자.손녀들을 봐줘야 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려고 해요. 그 후엔 고아원이나 사회복지 시설의 가엾은 아이들을 돌보며 살 거예요. "

대학졸업 후 교사임용을 받고도 결혼으로 포기해야 했던 윤씨로선 뒤늦게나마 보람있는 일을 찾아 사회 생활을 시작한 셈.

"아직까지 육아가 엄마들의 책임인 우리나라에서는 믿을 만한 육아 도우미가 필요한 실정" 이라며 그는 아이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베이비시터들이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육아의 제일 원칙은 '사랑' .애정이 있으면 잘 돌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되고 아이들도 따른다는 것.

또 '칭찬' 은 매보다 효과적이이어서 잘하는 점을 골라서 자꾸 칭찬하면 천방지축인 아이들도 금방 순한 아이로 변한다고 말한다.

"내 또래 친구들이 모두 겪는 갱년기도 돌보던 아기가 뒤집고, 기고, 걷고, 말하는 과정을 보면서 기뻐하는 사이에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 김씨와 윤씨, 이들에게 아기는 행복을 주는 마술상자와도 같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