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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과학’ 300만 한우 ‘아빠소’ 선발 위해 유전체 분석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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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100g 남짓한 1인분에 5만원이 훌쩍 넘는 1++ 등급의 최고급 쇠고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21세기 쇠고기는 과학의 산물이다. 그 키워드로 DNA와 씨수소·정액·인공수정 등을 꼽을 수 있다.

충남 서산 한우개량사업소 현장 #최우수 등급은 무게 1 t 길이 2m #“한우개량의 가치 연 2000억이상”

지난 7일 국립축산과학원은 올 하반기 한우 개량을 이끌어 갈 ‘보증씨수소’ 20마리를 뽑았다고 밝혔다. 전국 한우 300만 마리의 아빠 자격은 국가가 공인한 보증씨수소에게만 주어진다. 생후 6개월 된 수송아지 중 정밀 시험을 통과한 극소수만이 씨수소로 선발돼 자손을 남길 수 있다. 이들 씨수소의 정액을 전국 축산 농가로 공급해 인공수정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먹는 한우엔 자연교배가 없다는 얘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우 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한우개량사업소의 씨수소. 울음소리가 포효하는 듯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우 정액을 생산하는 충남 서산 한우개량사업소의 씨수소. 울음소리가 포효하는 듯하다. 프리랜서 김성태

지난 14일 방문한 충남 서산 농협경제지주 한우개량사업소에는 전국 한우의 ‘국가 공인 아빠소’가 모두 모여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정책사업으로 씨수소 선발·관리, 정액 공급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한우개량사업소는 해발 190m의 야산에 있었다. 산 아래 마을에 있다가 2011년 구제역 위험을 피해 산으로 이주했다. 사실 말이 산이지 나무 한 그루 없이 풀만 자라는 방목지다. ‘입소 군번’이 다른 씨수소 267마리가 살고 있는 곳이다. 평소엔 철저한 컨디션 관리와 정액 체취 등을 위해 우사에서 생활하다 가끔 운동 삼아 산책을 한다.

귀에 ‘1203’ ‘1180’이라 쓰인 식별표를 단 씨수소 두 마리를 연구원이 우사에서 끌고 나왔다. 언뜻 봐도 흔히 보던 소와는 체급이 달랐다. 1203호는 체중 1162㎏에 몸길이 225㎝의 육중한 몸집으로, 꼬뚜레를 잡고 선 성인 남성 연구원이 어린아이처럼 작아 보였다. 가끔 내지르는 소울음은 포효에 가까웠다. 차의수 종축개량장 총괄부장은 “1203호는 씨수소 유전능력 평가에서 지난해 1위, 올해 3위를 차지한 ‘최우수 등급’”이라고 귀띔했다.

정우영 박사가 씨수소의 친자 확인과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하는 칩을 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정우영 박사가 씨수소의 친자 확인과 유전자 정보 등을 분석하는 칩을 들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한우 개량은 ‘선발과 도태’다. 태어난 지 6개월 정도 된 송아지를 검정해 우수한 유전 형질을 보유한 송아지만 자손을 퍼뜨리는 ‘아빠’로 키워낸다. 씨수소로 선발되는 ‘우수함’이란 살집이 많으면서 등심 단면적이 넓고 근육 내 지방이 고루 분포했는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과거에는 혈통과 족보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2014년부터는 DNA 분석 방식을 쓰고 있다. 송아지 때 5만4000개의 유전체 정보를 분석해 ‘씨수소 감’을 골라내 일정 기준 이상에 도달한 소만 선발 검정에 들어간다.

검정은 총 2단계다. 소 자체의 체중과 육질 등을 살펴보는 1단계 평가를 통과하면 ‘후보 씨수소’가 된다. 후보 씨수소의 정액을 추출해 암소와 계획교배한 뒤 ‘아들 송아지’ 또한 우수한지 살펴 보는 것이 2단계 평가다. 아빠소의 형질이 우수하더라도, 아들 소에 제대로 유전되지 않으면 ‘보증 씨수소’가 될 수 없다. 차 부장은 “새끼에게 유전되지 않는 ‘우수함’은 단순한 돌연변이일 뿐이라, 개량사업에는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씨수소를 통한 한우개량사업을 통해 쇠고기 품질이 크게 높아졌다. 1등급 출현율(한우 1마리를 도축했을 때 1등급 이상 고기의 비율)이 20년 전에는 49%로 절반에 못 미쳤는데, 2005년 70.3%로 뛰어올랐고 2018년부터 88.8%를 유지하고 있다. 한우 도축 후 고기 무게도 2007년까지 396kg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446kg으로 뛰어올랐다.

박미나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한우개량사업의 경제적 가치는 매년 2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면서 “이미 100년 이상 개량해온 일본 화우 등 최고급 쇠고기와도 경쟁할 수 있는 품질을 갖췄다”고 말했다.

서산=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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