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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턱밑까지 추격한 이재명, 어느새 與당권도 쥐고흔든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낙연 의원(왼쪽)과 김부겸 전 의원.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낙연 의원(왼쪽)과 김부겸 전 의원. [연합뉴스]

“국난극복을 위해서 모든 힘을 다 모아서 하겠다는 각오로 대표를 맡고자 결심했다”(이낙연 의원)
“당 대표가 되면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 어떤 대선후보라도 반드시 이기게 하겠다.”(김부겸 전 의원)

문재인 정부 국무총리 출신 ‘국난 극복’ 당 대표냐, 아니면 ‘대선 승리’를 책임지는 영남 출신 당 대표냐. 더불어민주당 8·29 전당대회의 막이 본격적으로 올랐다. 이낙연 의원과 김부겸 전 의원이 20일 오전 각각 당 대표 경선 후보 등록을 마치면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선 후보 선호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이 의원의 우세를 점치는 사람도 있지만, 결과는 끝까지 알 수 없다. 수성(守城) 입장인 이 의원은 움직임이 날렵하지 않다. 본인도 인정하는 지적이다. 이 의원은 이날 “(현안에 대한) 대처가 좀 굼뜨고 둔감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저는 제 위치가 특별해서 좀 더 조심스러움이 있다. 그것이 책임 있는 자세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의원은 ‘당선 시 대선 불출마’라는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나섰다. 다만 무턱대고 공격만 할 순 없다. 상대 후보가 민주당의 소중한 전력, 차기 대권 주자이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김 전 의원은 이날 “상대 후보를 생채기 내는 선거운동은 하지 않겠다. 상대를 무차별 공격했다가 전대 후 찢어져 버린 과거는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의의 대결만 펼치기엔 당이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충격이 정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재판에서 풀려나면서 정치 시계도 빨라지고 있다.

변수① - 이재명계는 어디로

최근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눈에 띄는 현상은 이재명 경기지사의 약진이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17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낙연 의원은 23.3%, 이재명 경기지사는 18.7%로 집계됐다. 두 사람의 격차는 4.6%포인트로, 리얼미터 조사에선 4·15 총선 이후 처음 오차범위 내로 좁혀졌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같은 여론 조사를 토대로 “이 지사의 지지층이 김부겸 전 의원을 물밑에서 측면 지원하지 않겠냐”는 말이 나온다. 적극적인 팬덤을 형성한 이 지사 지지층이 김 전 의원을 밀면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 지사는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선 21.2%를 득표해 이변을 일으켰고, 2018년 경기지사 후보 경선에선 ‘친문 핵심’ 전해철 의원을 23.2%포인트 차이로 크게 이겼다. 국회에선 경기 지역 의원 4~5명만이 ‘이재명계’로 꼽히지만, 최근 이 지사의 ‘고위공직자 부동산 백지신탁’ 주장을 의원 15명이 법안으로 내놓는 등 원내 보폭도 넓어졌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 이낙연 의원은 이날 “선거는 수많은 얘기가 있기 마련이다. 거기에 대해 일일이 말한다는 건 출마한 사람으로서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김 전 의원 측 관계자는 “조직적인 결합은 없다”면서도 “아무래도 그쪽에서 이낙연 의원을 돕진 않을 것 아니겠냐”고 했다.

다만 이 지사가 공식적으로 특정 후보를 미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이 지사의 대선 경선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정성호 의원은 이날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 지사는 전당대회와 관련해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어떠한 정치적인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 저를 포함해 가까운 의원들도 마찬가지”라고 선을 그었다.

변수② - 위기 대처 능력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민주당 지지율은 하락세다. 특히 2030 여성 지지층의 이탈이 급격하다.

하지만 60대인 이낙연·김부겸 두 후보는 속 시원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민주당이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이란 단어를 써서 논란이 일었을 때도, 이 의원은 ‘피해 고소인’, 김 전 의원은 ‘고소인’이란 단어로 논란을 우회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민주당은 정치의 위기, 정책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며 “외부에서 제기되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는지가 중요한 선거”라고 말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당원 게시판에서도 당 위기에 대한 질타가 끊이지 않는 상황”이라며 “계파 조직간 힘겨루기 선거가 아닌 만큼, 당 안팎을 설득할 수 있는 해법이 나오면 구도를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이 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변수③ - 막판 박주민 출마 여부

서울 은평갑이 지역구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최근 동료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본인의 당 대표 출마에 대한 의견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고민하고 있다. 결정은 아직 안 내렸다”고 말했다. 후보 등록 마지막 날인 21일 결정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박 의원은 2018년 전당대회 최고위원 선거에서 21.3%의 득표율로 1위를 기록했다. ‘친문계’와 뚜렷한 인적 고리는 없었지만 ‘세월호 변호사’라는 인지도 덕에 ‘친문’ 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박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 나설 경우 이낙연·김부겸 양강 구도를 흔들 가능성이 있다.

셈법은 엇갈린다. 이 의원 측 관계자는 “박주민 의원이 출마할 경우 우리 표도 잠식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김 전 의원을 돕고 있는 한 의원은 “아무래도 3자 구도가 되면 이 의원을 견제하는 표심이 분산되지 않겠냐”고 예측했다.

다만 박 의원이 2년 전 전당대회 때처럼 ‘친문’ 지지층의 지지를 온전히 받을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의 한 의원실 관계자는 “‘친문’이 특정 당 대표 후보를 밀진 않지만, 어떤 후보도 안되게 할 힘은 있다”면서 “박 의원이 ‘친문계’와 조율이 안 되었을 경우 본격적인 견제에 시달리면 처참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강성 친문’으로 꼽히는 정청래 의원은 이날 이재명 경기지사의 ‘4·7 보궐선거 무공천’ 주장에 대해 “지금 시기에 ‘혼자 멋있기 운동’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고 공개 비판했다. “앞으로 이 문제에 왈가왈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 당권 경쟁이 본격화되면 ‘친문’의 군기 잡기는 거세질 것”(민주당 수도권 의원실 관계자)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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