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골랐어요] 그림책, 학습 도구로 강요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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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림책을 학습 도구의 하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분위기 탓에 똑똑한 아이를 원하는 부모들에게는 DHA 분유와 IQ.EQ 교육 교재와 더불어 그림책도 빠뜨릴 수 없는 필수품목이 되었지요. 그러다 보니 그림책을 보여주는 목적은 '지능 발달' 에 많이 치우쳐 있습니다.

엄마들은 뒤질세라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도 어쩐지 허전하고 불안합니다.

얘가 대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는 걸까? 줄거리를 모두 기억하고 있나?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인데, 왜 반응이 없지? 글자는 언제 깨쳐서 혼자 책을 읽지□ 궁금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확인 질문을 합니다.

이런 수고를 덜어주려고 쪽지시험 치듯 책 뒤에 질문을 적어놓은 바보 같은 그림책들도 나오고 있지요.

이런 것은 모두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주는 즐거움은 쏙 빼놓은 채, 지능 발달의 수단으로만 생각한 결과입니다.

그림책이 인지 발달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이 그림책을 통해서 얻는 즐거움에 비하면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그림책의 세계에 푹 빠져드는 것을 방해하지 마세요. 눈으로 당장 확인할 수는 없어도 그림책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채워줄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죠. 『 쿠슐라와 그림책 이야기 』(보림) 는 신체 장애와 정신 지체라는 진단을 받은 쿠슐라의 성장 과정에서 그림책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사실 그대로를 기록한 책입니다.

표지에는 '이 책은 책이 아이의 삶에, 아니 우리의 삶에 무엇을 주는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이라고 써있죠. 여기서 우리는 그림책이 쿠슐라의 인지 발달 전반(특히 언어 능력) 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책이 쿠슐라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림책은 부모가 읽어줘야 하는 책입니다. 아이들이 글자를 읽을 줄 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품에 꼭 안고 읽어준다면 더 좋겠지요. 아이들은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귀로는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책이 주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 받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 머리가 좋아지는 일이라면 뭐라도 할 것 같은 요즘이지만, 똑똑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보다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살 맛 나지요.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길에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허은순 '애기똥풀의 집' 사이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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