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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재임 중 딱 3번 조문…논란 있는 곳 안 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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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오른쪽)과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13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뉴스1]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오른쪽)과 박한기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13일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은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과 백선엽 장군의 빈소를 찾지 않았다. 대신 ‘대통령 문재인’ 명의의 조화를 보냈고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대신 조문했다. 결과적으로 갈라진 조문 정국에서 어느 쪽도 택하지 않은 셈이다.

성추행 의혹, 친일 행적 논란 고려 #박원순·백선엽 모두 조화만 보내 #미 NSC “백 장군 덕분에 한국 번영” #야권은 문 대통령 조문 계속 요구

정치 지도자가 망자에게 예를 갖추는 방식은 그 자체로 정치적 메시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정부 차원의 조문단을 북한에 보내지 않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천안함 사건(2010년 3월)과 연평도 포격 사건(2010년 11월)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북한을 향한 강경 메시지였다.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직접 조문한 건 세 차례다. 2018년 1월 밀양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2019년 1월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 조문했고, 그해 12월엔 소방헬기 추락사고로 순직한 소방항공대원 5명의 영결식에 참석했다. 2018년 6월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별세했을 때는 조문하지 않았다.

박 시장과 백 장군의 빈소에 조문하지 않은 문 대통령의 선택은 두 고인을 둘러싼 성추행 의혹과 친일행적 논란을 고려해 기계적 균형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무조건적인 중립으로 정부의 갈등 조정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에게 백 장군에 대한 예우를 요구하고 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반드시 창군 원로이자 나라를 구한 애국자인 백 장군을 조문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백 장군은 6·25전쟁의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출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운 분”이라며 “백선엽 장군의 장지를 놓고 정치권이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을 보고 과연 우리나라가 정상적인 나라인가 생각했다”고 지적했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실(NSC)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애도 성명. 백 장군이 쓴 영문 회고록 표지를 함께 게시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미 백악관 국가안보실(NSC) 공식 트위터에 올라온 애도 성명. 백 장군이 쓴 영문 회고록 표지를 함께 게시했다. [사진 트위터 캡처]

백 장군에 대한 추모와 애도에 한국보다 미국 정부가 더 앞장섰다는 점에서도 문 대통령의 ‘부작위’는 아이러니하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이날 공식 트위터 계정에 애도 성명을 올려 “한국은 1950년대 공산주의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백선엽과 다른 영웅들 덕분에 오늘날 번영한 민주공화국이 됐다”며 “우리는 그의 유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NSC는 『부산에서 판문점까지:한국군 최초 4성 장군의 전시 회고록』이란 제목의 백선엽 장군의 영문 회고록 표지 사진도 함께 올렸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날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백 장군의 빈소를 찾아 거수경례로 조의를 표했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는 버웰 벨 전 주한미군 사령관(2006~2008년 재임)이 “백 장군은 미국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조지 워싱턴과 같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애도했다. 존 틸럴리 전 사령관(1996~1999년)은 “백 장관은 누구보다 부하를 사랑했던 지휘관”이라고 추모했고, 제임스 셔먼 전 사령관(2011~2013년)도 “그는 나의 가까운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안보에 매우 헌신하고 신뢰받은 지도자로서 백 장군은 자유와 희생의 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사령관(2016~2018년)은 “그의 타계는 한·미 동맹에 큰 손실이며 진정한 역사의 한 부분이 사라진 것”이라며 “그가 전쟁을 지휘할 때 그를 존경하며 함께 복무하다 먼저 떠난 전우들과 함께 영원한 안식을 얻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윤성민·현일훈 기자,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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