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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건반, 버튼 68개, 발 건반…복잡함의 극치인 이 악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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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콘서트홀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조재혁. 최근엔 파리의 마들렌 성당 오르간으로 연주한 앨범을 냈다. 김호정 기자

롯데콘서트홀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조재혁. 최근엔 파리의 마들렌 성당 오르간으로 연주한 앨범을 냈다. 김호정 기자

연주는 40분, 악기 세팅은 6시간.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13일 오르간 연주를 위해 쓰는 시간이다. 그는 오르간 연주도 겸하는 ‘희귀한’ 피아니스트다.
건반을 연주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오르간은 피아노와 완전히 다른 악기다. 그는 유학 생활을 하던 뉴욕 맨해튼 음대 예비학교에서 16세에 오르간을 만났고 매력에 빠졌다. 이후 두 악기 사이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는 전반부에 피아노를, 후반부에 오르간을 연주한다. 오르간 연주를 위해서는 실제 연주할 악기를 세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 연주의 12배 정도 되는 시간이 든다. 8일 만난 조재혁은 “세팅 시간이 넉넉할수록 좋다”고 했다. “한 종류의 악보를 보고도 수만가지 방법으로 연주할 수 있는데, 피아노와 달리 오르간은 연주 방법을 악기에 입력해 놓아야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르간은 복잡하다. 롯데콘서트홀 오르간에는 68개의 스톱(stop, 음색과 음높이를 바꾸는 버튼과 같은 장치)가 있다. 곡의 연주 방법에 따라 눌러놓을 스톱의 종류와 개수를 정해야 한다. 피아노 건반은 한 단이지만, 이 공연장 오르간의 건반은 네 단이다. “많은 경우엔 일곱 단까지 있다”고 했다. 이 중에 어떤 건반들을 섞어서 연주할지도 결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고, 발로도 건반을 연주해야 한다. 탭댄스 슈즈 같은 오르간 신발을 신고 피아노 건반처럼 배열된 페달을 밟아 연주를 한다. 발 하나당 앞 뒤 두 지점, 즉 발의 네 곳을 조합해 음을 낸다. 손과 발뿐 아니라 두뇌까지 총동원되는 악기다.

 롯데콘서트홀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조재혁. 소리는 벽면의 파이프에서 난다. 김호정 기자

롯데콘서트홀의 오르간을 연주하는 조재혁. 소리는 벽면의 파이프에서 난다. 김호정 기자

조재혁은 “처음 오르간을 연주했을 때 뇌가 너무 활발히 움직여 머리가 아픈 느낌이었다”며 웃었다. 그만큼 복잡하고 골치 아픈 악기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푹 빠졌다. “어려서부터 집에 있는 냉장고와 라디오를 전부 해체해보고 다시 조립했다. 오르간을 처음 본 순간에도 뜯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음악대학 예비학교에서 주전공 피아노, 부전공 오르간으로 공부를 했고 이후엔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며 예배를 이끌었다.
이 복잡하고 어려운 악기의 매력은 뭘까. 조재혁은 바흐의 악보를 펼쳤다.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토카타와 푸가 작품번호 565다.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오케스트라로 이 곡을 연주했다. 시작 부분은 목관 악기, 이후 소절은 각기 다른 악기가 맡도록 정해서 연주했다.”

조재혁은 오르간 연주를 오케스트레이션에 비교했다. 실제로 스톱을 조정하면 오케스트라 속 다양한 악기로 음색을 바꿔 연주할 수 있고, 때로는 전체 오케스트라의 사운드를 낼 수도 있다. 한 종류의 악보로도 수만까지 경우의 연주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같은 부분도 어떤 오르간 연주자는 관악기로, 다른 이는 현악기 사운드로 연주한다. 그는 “작곡가가 써놓은 악보는 오르간 연주에서 50% 정도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연주자의 재량”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조재혁이 짚어내는 오르간의 매력은 많다. 피아노의 가장 낮은 음보다 더 낮은 음들은 인간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음을 낸다. 피아노는 이미 존재하는 공간에 놓는 악기이지만 오르간은 건축 설계 단계부터 계획해야 하는, ‘공간’이다. 조재혁은 “오르간이야말로 연주가 되는 바로 그 시간, 장소에 같이 존재하며 듣고 봐야 하는 악기”라며 “공기의 진동까지 느낄 수 있는 입체적 경험”이라고 설명했다. 조재혁의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는 13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그는 “앙코르로 관객이 즉석에서 제시하는 음악으로 오르간 즉흥연주도 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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