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요리 사제지간에는 바람 빠져나갈 만큼 틈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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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히데코의 음식이 삶이다(7)

요리교실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않는 수강생과 자연스레 사제관계가 형성된다. 연희동 집의 1층을 요리교실 아틀리에로 리모델링하기 전에는 가족이 생활하던 2층에서 요리교실을 했다. 가족이 식사하는 공간에서 수업하고 거실 한가운데 있던 식탁에서 시식하는 식이었다.

두 아들이 어렸을 때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아이들은 외부인이 매일같이 드나드는 거로 모자라 마주칠 때마다 말을 걸어오는 낯선 ‘아줌마’의 존재를 꺼리게 되었다. 남편도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왔는데 거실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유유자적 쉬고 있는 요리교실의 분위기를 점점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1층에 살던 젊은 세입자 친구의 계약이 만료되기를 기다렸다가 아틀리에 공사에 착수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2층 요리교실에 다니는 수강생 중에는 지금도 그때 요리교실이 그립다며 작은 서랍 속에서 추억을 꺼내듯 옛날이야기에 푹 빠지는 친구들이 있다. “2층에서 요리교실을 할 때는 디저트까지 나오는 풀코스였잖아요, 선생님. 그때가 좋았는데.” 은하는 요즘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나는 연희동에 이사 오고 나서 한국에 어떤 요리교실이 있고 어떤 요리 선생님이 있으며 어떤 레슨이 인기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우연히 요리교실을 시작하게 됐다. 프랑스요리 셰프였던 아버지가 주방에서 작은 요리교실을 열던 모습을 떠올리며 아버지 레시피를 참고해 요리 종류와 조리법 등을 모색했다. 아버지의 레시피는 전채요리, 메인, 디저트 같은 순서로 식후에 반드시 디저트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본가에서는 간단한 저녁 식사에도 항상 디저트가 준비돼 있었다.

집을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2층에 가족이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수업을 하고 거실 한가운데 있던 식탁에서 시식하는 식이었다. 두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1층 아틀리에 공사에 착수했다. [사진 pixabay]

집을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2층에 가족이 식사를 하는 공간에서 수업을 하고 거실 한가운데 있던 식탁에서 시식하는 식이었다. 두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1층 아틀리에 공사에 착수했다. [사진 pixabay]

은하의 한 마디에 초심으로 돌아가는 듯한 겸허한 기분을, 아니 등줄기가 꼿꼿하게 펴지는 듯한 긴장감을 느꼈다. 요리교실을 1층 아틀리에로 옮긴 뒤에는 다양한 요리를 폭넓게 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코스 요리로 레시피를 구성하기보다 테마를 정해 하나라도 더 많은 요리를 가르치려 했고, 점차 내 안에서 디저트란 존재가 희미해져 버렸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친구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요리교실에 다니는 게 유행처럼 번졌다. 또, 자주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세대를 중심으로 외국 식문화에 대한 지식과 요리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높아지고 있어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메뉴를 다양하게 준비할 수밖에 없다. 연희동 요리교실도 이같이 다양한 요구에 응하다 보니 예전처럼 메뉴를 하나하나 음미하며 계절에 어울리는 제철 재료로 디저트를 만들 마음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었다.

“선생님의 절대미각을 믿으세요!”
최근 요리교실 운영과 여러 일로 고민이 많은 나에게 은하가 말했다. 그때는 절대음감도 아니고 절대미각 같은 말이 맞는 건지 은하의 말에 의구심을 품었다. 26년간 한국에 살며 일본요리를 기반으로 각국의 요리를 가르치면서 나 자신이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은 늘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종종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이지? 어떤 사람이지?’ 하며 나 자신에게 내 정체성에 대해 물어보곤 한다.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걸까? 은하의 한 마디에 생각은 나의 정체성으로까지 이어졌다.

은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지금까지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자유로운 인생을 보내왔다. 주위에서 보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싶지만, 은하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말한다. 자기 나름대로 고민도 많고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아예 생각이 없어 보이지 않는 뉘앙스를 풍길 때도 있다. 내가 50대가 되고 인생의 변곡점에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진지하게 고민하듯, 30대 중반이 된 은하도 인생의 변곡점에 서 있는 듯하다.

은하는 미식가 집안에서 자란 덕인지 나의 몇 배나 될 법한 절대미각을 갖고 있다. 서울에서 안 다녀본 요리교실이 없을 정도로 먹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었던 메뉴는 어떻게든 만들어 보려고 하는 등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

“아빠가 선생님 차슈 매일 먹고 싶을 정도로 맛있으시대요. 진짜 귀찮은 아빠죠? 내일 또 만들어야 하는데. 이걸로 벌써 여덟 번째예요.”

연희동에서 스키야키를 배우면 돌아가서 몇 번이고 스키야키를 만들고, 다른 요리교실에서 배운 음식도 맛있으면 매일같이 만들어본다. 이런 성향과 더불어 학생 때부터 아무도 가지 않을 것 같은 해외의 벽지에서 살아보고 그 지역의 향토 요리를 맛본 그녀에게, 그렇게 쌓아온 시간과 경험은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재산이다. 시간이 있어서 이것저것 만드는 거라고 말하는 은하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저기, 은하는 요리교실이나 푸드 스타일링같이 음식을 일로 할 생각은 없어?”
“제가요? 절대 못 해요. 전 그냥 맛있는 걸 만들어서 다 같이 먹는 게 즐거워요!”
음식이 일인 나에게는 그런 은하가 너무도 부럽다.

요리교실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않는 수강생과 자연스레 사제관계가 형성된다.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오랜 세월 함께 쌓아온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사진 pxhere]

요리교실을 오래 운영하다 보니 한 달에 한 번밖에 만나지 않는 수강생과 자연스레 사제관계가 형성된다.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오랜 세월 함께 쌓아온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사진 pxhere]

은하는 요리교실을 1층으로 옮겼을 때부터 다니고 있으니 나와 안지도 어느새 8년 가까이 되어 간다. 최근 2년 정도는 스승의 요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수업에는 나오지 않지만, 새로운 요리를 구상할 때나 사소한 촬영 등을 할 때 도와주러 온다. 즉, 은하는 여러 제자 중 한 명이지만, 연희동 요리교실에 다니는 수강생 하나하나를 ‘제자’라고 정의한다면 그중에서도 애제자라고 할 수 있다.

사전에서 애제자의 정의를 보면 ‘특별히 기대를 걸고 예뻐하는 제자’라고 되어 있다. 스스로 납득을 못 하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은하는 기대를 걸기는 어렵지만, 예뻐하는 제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요리라는 매개를 통해 맺어진 관계여도 오랜 세월 함께 쌓아온 신뢰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의사소통에서 빚어진 오해로 갈등이 생긴 적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오감을 전부 자극하는 ‘음식’을 통한 인간관계였기에 쉽게 그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요리 기술이나 요리교실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서 오는 수강생보다 ‘요리가 좋아서, 취미여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즐거워서’ 오는 수강생이 훨씬 많다. 은하가 처음 연희동 요리교실에 다니기 시작한 이유는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요리 선생과 제자 사이의 이해관계는 없었다고 믿는다.

나는 지금까지 서로의 관계가 귀찮고 복잡해질까 봐, 때로는 배신이 무서워서 일부러 사제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특정한 수강생을 애제자라고 단언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은하와 같이 아는 요리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은하는 애제자’라고 농담 섞인 어투로 말한 적은 있어도, 요리교실이라는 특수한 세계, 대학의 사제관계와는 또 다른 미묘한 관계에 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조심하고 있다.

올여름 프로젝트는 세계의 카레. 역시 믿을 건 전 세계를 여행하고 온 은하밖에 없다.
“선생님, 파키스탄 치킨카레, 같이 시험 삼아 만들어봐요. 차파티도 굽고.”
은하와의 사제관계처럼 ‘바람이 빠져나갈 정도의 틈이 있는 관계’가 나에게는 딱 좋다.

차슈 레시피

차슈를 넣은 라면. [사진 pixabay]

차슈를 넣은 라면. [사진 pixabay]


재료(4~6인분)

주재료: 돼지고기 목살 또는 삼겹살 덩어리 1kg
생강 3톨, 마늘 10쪽, 대파 잎 부분 6개
양념: 다시 300ml, 진간장 300ml, 미림 300ml

만들기
1. 돼지고기는 길게 반으로 잘라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명주실로 묶는다.
2. 양념 재료를 볼에 넣고 섞는다.
3. 냄비에 돼지고기를 넣고 양념이 잠기도록 붓는다.
4. 생강은 껍질을 벗기고, 마늘은 밑동을 잘라낸다.
5. 냄비에 생강, 마늘, 대파 잎 부분을 넣고 센 불에서 끓인다.
6. 양념이 끓어오르면 거품을 제거하고 뚜껑을 닫아 중간 불에서 20분 정도 끓인다. 포크로 찔러보아 핑크색 육즙이 나오면 7~8분간 더 끓인다.
7. 불을 끄고 고기를 넣어둔 상태로 냄비가 식을 때까지 둔다.
8. 고기를 꺼내어 가능한 얇게 썬다.

Tip
양념장이 부족하다면 진간장 1:미림 1:다시물 1:설탕 0.5의 비율로 양념을 만들어 넣어주세요.

키친 크리에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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