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함께 부를 노래'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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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로 떠나는 우리집 가족 나들이는 소란으로부터 시작된다. 먼저 차 안에서의 지루함을 덜기 위해 아내와 중학생 딸애가 들고 나온 콤팩트 디스크를 차량 오디오에 넣기 위한 다툼이 일어난다. 승리자는 언제나 고집불통인 딸애다.

그리하여 아내와 나는 강제된 신세대의 음악공간 안에 영락없이 갇힌 채 랩과 광기어린(?) 댄스뮤직 등의 무차별적인 노래세례를 받고 만다. 서정적인 음악과 재즈 등을 즐겨 듣는 우리 부부에게 '어쩌구 저쩌구''쿵쿵 꽝꽝' 하는 와중에서 흥얼거리는 딸애의 목소리까지 겹쳐지면 정말 힘든 소음 공해다.

"시끄럽다. 그것도 노래라고 부르니?" 참다 못한 아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문제는 그 순간 눈이 둥그레지며 보여준 딸애의 반응이다. '도대체 왜 시비를 거느냐'는 것이다. '엄마.아빠는 세련되지 못하게 왜 우리들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노래의 단절이 세대 간 단절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세대 간 음악 차이를 주제로 담론하던 자리에서 지인 한 분이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요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는 점에 통감한다"며 다음과 같은 예언적 발언을 했다. "요즈음 아이들 60, 70세만 되면 숨차서 지금 노래 따라부르지도 못할 것이고 아마 듣기 싫다고 할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유행가요는 한 시대의 사회정서와 환경들이 감응해서 만들어 놓은 산물이다. 팔순 노부모의 평생 애창곡인 '목포의 눈물'과 '눈물 젖은 두만강'은 일제 강점기 민족의 애환을 담아낸 노래다. '아침이슬'이니 '마이 웨이'니 하는 나의 애창곡 또한 1970, 80년대 사회상황 속에서 탄생했다. 요즘 정신없이 빠른 랩과 댄스뮤직은 아마 급변하는 사회변화 속에서 느끼는 젊은이들의 불안.초조와 단절감을 역(逆)으로 일탈 욕구에 담아 표현한 노래가 아닐까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10대부터 60, 70대까지 모든 세대가 동시대의 사회환경 속에 살아간다고 해서 같은 노래의 수요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유행음악의 수요자는 어느 시대에나 10대와 20대를 축으로 만들어졌다. 그 중심축을 만드는 핵심적 매개에 언제나 확장 지향적인 이들 세대만이 누리는 풍요한 '감성의 창고'가 자리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 본 영화 한 편이 최근 본 영화보다도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례는 비단 나만의 경우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나이들수록 확장되지만 거꾸로 감성은 무뎌가게 마련이다. 연극 한 편을 봐도 기성세대의 감동의 기폭은 10대처럼 예민하지 못하다. 10, 20대 시절의 '감성의 창고'는 확장되다가 어느 지점에서 정지돼 버린다.

따지고 보면 애창곡이라는 것도 그 옛 창고에서 꺼낸 노래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양희은.조용필의 콘서트에 40, 50대 중년관객이 몰렸다는 소식은 다른 음악으로 출구를 못 찾은 세대가 지난날에 대한 그리움에 몸을 착 기댄 현상이다. 누구나 젊은 날에 부르던 노래에 갇혀 산다.

그런 측면에서 요즘 아이들이 노년이 되었다고 해서 10대에 열광했던 랩과 댄스뮤직을 숨차다고 마다할 리 없다. 30년 후 이효리와 드렁큰 타이거가 여는 콘서트장에는 괴성을 지르며 열광하는 중년 관객들로 메워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도 다시 노래로 빚어진 세대 간 단절을 맛볼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러나 '함께 부를 노래'를 찾는 방법도 이의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우리 가족의 요즘 나들이 차에는 핑클이 부른 '당신은 모르실거야'와 DJ. DOC이 부른 '해변으로 가요'가 있다. 혜은이와 키보이스의 목소리는 포기했지만 발라드풍의 멜로디와 가사만은 지켜낸 세대 간 슬기로운 타협물이다. 어찌됐든 함께 부를 노래가 있어야 행복한 사회다.

홍사종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