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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개미의 분노와 맞바꾼 3조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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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조현숙 기자 중앙일보 기자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

정부가 ‘동학개미’와 일전 중이다. 시작은 지난달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금융세제 개편안이다. 소액투자자에게 주식양도소득세를 물리고 대신 증권거래세를 낮추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개미 투자자의 반발이 거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딛고 증시에서 이제 막 돈 좀 벌어보나 했더니 정부가 세금으로 떼어가려 한단다. 주가가 오르든 말든 내야 하는 증권거래세는 찔끔 인하할 뿐 폐지하지 않는다니. 청와대 국민청원과 인터넷 주식 게시판에 성토 글이 넘친다. 이런 여론의 압박 속에서도 정부는 버티기 중이다. 이유가 있다.

기재부는 최근 국회에 ‘3차 추가경정예산안 세목별 경정 내역 현황’을 제출했다. 코로나19로 올해 12조원 넘게 감소할 세금 수입을 항목별로 정리했다. 법인세(-5조8253억원), 부가가치세(-4조620억원) 등 다른 주요 세수는 줄어드는데 예외가 있다. 증권거래세다. 기재부는 1차 추경 때보다 증권거래세 예상 세수를 5502억원 늘려 잡았다. 동학개미 역할이 컸다. 농어촌특별세(1191억원 증액)가 뒤를 이었다. 역시 거래세 덕분이다. 코스피 시장에서 주식을 사고팔면 거래세에 농특세(0.15%)가 자동으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거래세 수입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원칙은 코로나19 위기에도 통했다. ‘폐지는 없다’는 정부의 고집에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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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예산정책처는 증권거래세를 없애면 2023년 4조7000억원 세수가 줄겠다고 예상한다. 세율 0.25%를 0.15%로 낮추는 대신 거래세를 유지하면 3조원 안팎 세수는 지킬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부가 개미의 분노와 맞바꾼 돈은 그만큼 소중하게 쓰일까.

3차 추경 심사 분위기를 보면 답은 ‘아니오’다. 지난달 30일 16개 상임위원회는 3차 추경 규모를 3조1032억원 늘리는 안을 예비심사에서 통과시켰다. 대학등록금 환급 같은 예산이 끼어들었고, 졸속 심사 논란이 일었다.

정부도 다를 게 없다. 30만 명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3차 추경 대표 사업으로 1조5076억원 희망일자리 예산을 편성했다. 사실 30만 고용은 최저임금(시급 8590원)으로 하루 4시간, 5개월 근무만 해야 달성 가능한 목표다. ‘알바 추경’이란 비판을 들을만 하다. 게다가 예산 총액과 고용 규모가 10분의 1이라는 것 말고는 거의 같은 사업인 희망근로 지원사업이 지난해 목표 인원을 채우지도 못하고(지역별 집행률 82~98%) 끝난 전례도 있다. 국회의 졸속 심사만큼 정부의 졸속 편성 사례도 많다. 3차 추경 국회 통과를 앞두고 개미의 분노가 더 크게 들리는 이유다.

조현숙 경제정책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