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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 다양성 보고서를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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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

얼마 전 고려대가 ‘다양성 보고서’를 냈다. 국내 사립대 중 처음이다. 여성교수 비율은 16%로 예일(56%), 스탠포드(55%), 하버드(53%) 등에 한참 못 미쳤다. 일부 단과대는 여성교수가 한 명도 없다. 본교 출신 교수는 58%인데,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교무위원은 72%나 된다.

학생들은 어떨까. 여학생 비율은 48%다. 저소득층인 2분위 이하(18%)는 전국 평균(28%)보다 낮은 반면, 최상위층인 9·10분위(45%)는 평균(25%)보다 훨씬 높다. 출신 지역도 특별·광역시와 시 출신이 95%로 압도적이다. 보고서는 “계층의 편중이 구성원의 경험을 동질화 해 지적 다양성의 토대를 약화시킨다”고 했다.

고려대는 다음 학기부터 ‘다양성 강좌’(3학점)를 개설한다. 이달부터는 라틴어로 ‘다양성’이라는 뜻을 가진 월간지 ‘dīvérsĭtas’를 발간해 전 구성원이 보도록 했다. 앞서 고려대는 2016년 성적장학금을 폐지한 재원으로 저소득층 장학금을 대폭 늘렸다. 갈 길은 멀지만, 고려대는 나름 다양성 강화에 신경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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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어떨까. 21대 여성의원 비율은 19%다. 연령별로는 50대(59%)와 60대(23%)가 압도적이다. 청년정치를 강조하면서 20·30대는 4%에 불과하다. 다문화 인구가 100만을 넘었지만 해당 정치인은 한 명도 없다. 평균재산은 22억 원이며 29%가 다주택자다. 특정 직업군이 지나치게 많다. 여당 의원 177명 중 법조(29명)·관료(17명)·언론(14명) 출신이 34%나 된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는 일종의 표본이어야 한다. 모집단인 국민의 특성을 잘 대표해야 대의민주주의의 취지를 살린다. 구성원이 다양하지 못하면 어느 집단은 과잉 대표되고, 어떤 집단은 목소리조차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 내편 네편 가르고 생각의 다름을 ‘틀림’으로 간주해 적으로 모는 이분법적 사고는 다양성의 결여에서 나온다.

이참에 국회도 다양성 보고서를 만들면 어떨까. 정치인 스스로 국민의 평균적 사고에서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성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왕이면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며 ‘책임 국회’를 이야기 한 여당부터 모범을 보이자.

제일 먼저 여당이 총선 때 약속한 최고위원 30% 여성할당제가 초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당에선 지금 선거 끝났다고 다시 뭉개려 한다는데 그러면 안 된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싫어할 게다. 2018년 집무실에서 여성비서관 5명에 둘러싸여 서명하던 사진을 떠올려 보라. 친여성적인 대통령의 성평등 의식을 배운다면 여당의 다양성은 높아질 수 있다.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