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해 선생은 올해 우리 나이로 아흔넷이다.
그 앞엔 ‘현역 최장수 방송인’이란 수식어가 늘 따른다.
최근 송 선생 입원 소식이 여기저기서 보도되었다.
감기로 인한 입원인데도 화제가 된 건 그만큼 팬의 관심이 많다는 방증일 터다.
송 선생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우연한 모임에서다.
일을 마치고 가느라 제일 늦게 참석했다.
도착하자마자 송 선생이 술을 건넸다.
“제일 먼저 온 사람으로서 마지막으로 온 사람에게 소주 한 잔 드리죠.”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는데도 특유의 넉살과 살가운 마음으로
꼴찌로 참석한 민망함을 한순간에 풀리게끔 하였다.
송 선생에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모임이었다.
그렇지만 이내 당신이 주도한 모임처럼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했다.
참석한 이들과 일일이 소주 한 잔씩 주고받으며
순간적인 재치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흡입력,
아흔을 앞두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오래지않아 인터뷰차 송 선생을 다시 만났다.
그날 아흔이 다 되도록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온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죽은 나무가 와도 살아있는 나무가 되게 하고,
시든 꽃이 와도 싱싱한 꽃으로 만드는 게 사회자죠.”
그는 스스로 대중을 웃고 울리는 ‘딴따라’라고 했다.
죽은 나무가 와도 살아있는 나무로 만드는 딴따라, 그에게도 아픔이 있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난 아들과 북에 두고 온 어머님의 사연을 들려주며
주체할 수 없는 북받침을 억지로 참고 또 참았다.
참느라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눈물이 흘러 버렸다.
대중을 웃기고 울려 온 딴따라 송해 선생,
그날의 눈물은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눈물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