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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새로운 의학, 새로운 삶'

중앙일보

입력

본디 좋은 텍스트란 어느 관점에서 접근하더라도 퍼올릴 수 있는 다양한 메세지가 있기 마련이다.단행본 '새로운 의학,새로운 삶'이 바로 그런 책이다.

건강서,혹은 의학 교양서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실은 '의학 담론을 담은 대중적 철학서'라 할만한 훌륭한 읽을거리이다. 즉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관심에,속 깊은 성찰의 화답(和答) 을 보내는 '인문적 의학서'다.

*** 서구의 대체의학 논의 소개

보통 실용도서로 분류되는 의학 ·건강서를 인문사회 과학의 메이저 출판사가 펴냈다는 점도 눈여겨 보자. 그런 점에서 의미있는 사건인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서구를 진원지로 일어나고 있는 대체(代替) 의학 논의를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대체의학 논의가 바로 이 시기 서구 모더니티를 반성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 논의,68혁명 이후 유럽의 후기 구조주의와 일치한다는 뜻밖의 발견이다. 책에 '의학과 철학 사이의 밀고 당기는 대화'가 상당수인 것도 당연하다.

"도구적 이성으로서의 서양의학은 미셸 푸코가 말한대로 몸을 관리하는 권력으로 바뀌었다."(83쪽)

"데카르트는 물질과 마음을 분리돼 있으며,서로 독립된 실체로 간주해왔다.물심(物心) 이원론에 서는 그 주장은 따라서 마음을 과학적 연구대상에서 제외하면서,인체를 시계 같은 '생체 기계'로 인식했기 때문에 오늘날 장기 이식 단계까지 이르렀다."(17∼19쪽)

다르게 말하자.지난주 '행복한 책읽기'에 소개된 윌슨의 '인간 본성에 대하여'의 경우 생물학 분야에서 울려나온 철학적 문제제기였다면,신간은 의학 분야에서도 철학 못지 않게-아니 보다 구체적으로-철학적 성찰을 진행해왔음을 보여준다.

*** 의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

책에 글을 실은 12명 필자들도 의학사, 의학사상사에서 양방 ·한방 의료인까지를 포괄하고 있다.

김광기(인제대 교수,의료사회학) 황상익(서울대 의대교수) 구한서(중국 중의학연구소 객좌교수) 김영치(서울대 초빙교수) 방건웅(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임준규(호성한방병원장) 이종찬(아주대 교수) 김혜경(구리시 보건소장) 하은경(하은경 음악치료임상치료연구소장) 정우열(원광대 한의대교수) 이승원(정형외과원장) 장현갑(영남대 교수) 등이 그들이다.

책에 따르면,대체의학을 무조건 주류에서 벗어난 사이비 의학으로 보는 의구심은 일단 버려도 좋을 듯 싶다.이 용어는 미 국립보건원(NIH) 이 공식 채택한 용어.

'기존 의학을 대신하는 대안적 학문'을 뜻한다.현재는 하버드 의대, UCLA등에도 강좌가 개설됐다고 책에서 소개된다. 따라서 대체의학 논의의 진원지는 비(非) 서구가 아니라, 제1세계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왜 대체의학이 일어났는가.지난 세기 만해도 세균감염에 의한 사망이 가장 많았으나,지금은 3%에 불과하다.

대신 스트레스 환경오염에 의한 사망이 절반 이상이다. 여기에 사람들이 암 ·정신질환을 중심으로 전체 발병(發病) 비율은 외려 더 높아지는 사태 앞에서 서구 의학계는 당혹스러움과 함께 서구 의학만이 '정통'인가 하는 반성이 일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 건강.질병 보는 시각 바꿔야

건강과 질병을 바라보고 규정하는 패러다임을 바꿔 '특정 병원균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서구의학의 시각 자체가 '절반의 의학'일 수 있다는 발견이 이 때 이뤄졌다.

따라서 물리학자 뉴튼이 말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으로 인체를 바라보는 대신 유기체적 접근법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미국 의사의 50% 이상이 대체의학 치료법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체의학이 아직은 주류가 아니다. 서구의학을 보완하는 것인가, 완전물갈이를 할 수 있는 것인가도 필자마다 견해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은 철학 ·건축을 포함한 인문 사회과학의 포스트모던 물결이 의학 영역에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동서는 진정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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