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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없이 죽었다···국경 난투극 사망자 처리에 중국 분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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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중국과 인도의 국경 충돌에서 사망한 중국군 숫자가 처음으로 중국 내부에서 나왔다. 인도는 충돌에서 인도군 2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중국은 아직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상태다.

지난 15일 인도군과 충돌한 중국군 피해 #부상 다섯 명 중 두 명이 칼에 찔려 사망 #중국 전쟁사 연구 학자가 웨이보에 올려 #중국 네티즌, 인도 사망자 예우와 비교해 #이름도 장례도 알리지 않는 조치가 #무슨 “베이징의 선의냐”며 불만 토로

지난 15일 중국과의 국경 충돌에서 20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군이 충돌 지역인 라다크에 대한 병력을 계속 강화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라다크로 향하는 인도군.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5일 중국과의 국경 충돌에서 20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군이 충돌 지역인 라다크에 대한 병력을 계속 강화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사진은 지난 18일 라다크로 향하는 인도군. [로이터=연합뉴스]

이와 관련, 중국 인민해방군 사망자 수가 적게는 5명에서 많게는 43명에 이른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한데 지난 24일 오후 6시 무렵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에 중국군 사상자 수를 알 수 있는 짤막한 글이 올랐다.

“국가를 지키다 부상한 다섯 명의 영웅 중 두 명이 비수에 급소를 찔려 중상을 입었고 이에 8일간 전력을 다해 치료했으나 효과도 없이 그제 세상을 떠났다”. 15일 인도군과의 난투극에서 중국군은 5명이 부상을 입었고 이 중 2명이 숨졌다는 이야기다.

지난 24일 오후 6시 8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온 중국전쟁사 연구자 차이샤오신의 글. 15일 밤 중국-인도 충돌로 중국군 다섯 명이 다쳤으며 이중 두 명이 비수에 급소를 찔려 8일간 치료에도 사망했다고 알리고 있다. [웨이보 캡처]

지난 24일 오후 6시 8분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온 중국전쟁사 연구자 차이샤오신의 글. 15일 밤 중국-인도 충돌로 중국군 다섯 명이 다쳤으며 이중 두 명이 비수에 급소를 찔려 8일간 치료에도 사망했다고 알리고 있다. [웨이보 캡처]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는 아니지만, 이 글은 현재 중국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글을 올린 이의 신분이 간단치 않아서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한 적이 있고 중국에선 명장으로 통하는 차이창위안(蔡長元) 장군의 아들 차이샤오신(蔡小心)이 글을 썼다.

차이창위안(1917~95년)은 1951년 중국 인민 지원군 제63군의 189사단 사단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철원에서 미군과 한국군의 진공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중국에서 선전되고 있다. 중국은 당시 전투를 ‘철원 대혈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명장이란 말을 듣는 차이창위안이 1981년 다섯 살짜리 아들 차이샤오신을 안고 있다. [중국망 캡처]

중국 인민해방군에서 명장이란 말을 듣는 차이창위안이 1981년 다섯 살짜리 아들 차이샤오신을 안고 있다. [중국망 캡처]

이 차이창위안이 예순이 가까워 낳은 아들인 차이샤오신(44)은 그 자신이 군인 출신으로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학자다. 중국군 내부의 소식을 종종 웨이보에 올리곤 했는데 이번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던 인도군과의 충돌 때 사망한 중국군 숫자를 처음 밝힌 것이다.

차이샤오신은 사망한 중국군 두 명이 칼에 찔렸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22일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인도군의 사망자가 인도 정부가 밝히고 있는 20명이 아니라 47명에 달한다고도 덧붙였다.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 출신의 아버지를 둔 차이샤오신은 한국전쟁 등 중국의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 인민해방군 장군 출신의 아버지를 둔 차이샤오신은 한국전쟁 등 중국의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 웨이보 내용은 얼마 후 삭제됐는데 중국 당국의 조치로 해석된다. 중국은 현재 중국군의 사상자 수를 전혀 공개하지 않는 등 로우 키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화권 인터넷 매체 둬웨이(多維)는 인도가 극도로 흥분하고 있는 데 반해 중국이 조용한 이유를 인도를 건드려 중국이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과의 국경 충돌에서 20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는 22일 교전 수칙을 바꿔 총기 사용을 허가했다. 과거엔 총기 사용을 금했으나 이젠 화기 사용이 가능해 자칫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커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과의 국경 충돌에서 20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는 22일 교전 수칙을 바꿔 총기 사용을 허가했다. 과거엔 총기 사용을 금했으나 이젠 화기 사용이 가능해 자칫 전쟁으로 번질 위험이 커졌다. [중국 환구망 캡처]

중국이 인도와의 무역에서 한 해 5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보고 있는 터라 인도에서 부는 중국산 불매 운동이 우선 반갑지 않다. 또 인도와 싸워 이겨도 다른 이웃 아시아 국가들에 중국은 호전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줘 득보다 실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 편집인 후시진(胡錫進)은 중국이 사망자를 밝히지 않는 이유를 “양국 군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양국 민중의 감정만 자극할 뿐인데 이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이는 베이징의 선의(善意)”라고 주장했다.

인도에선 연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시위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얼굴에 쓴 한 인도인이 목줄을 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등장했다. [EPA=연합뉴스]

인도에선 연일 반중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시위에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얼굴에 쓴 한 인도인이 목줄을 한 채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등장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중국 일부 네티즌 사이에선 중국군이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었는데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장례 또한  제대로 치러졌는지 일반 국민은 알지도 못한다며 이게 “무슨 선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도에선 사망 군인의 이름과 사진이 언론에 공개되고 이들에 대한 국장이 진행되며 예우를 다 해 사망자를 추도하는데 중국에선 목숨을 잃은 군인이 도대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게 처리되는 데 대한 불만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군과의 국경 충돌 과정에서 숨진 한 인도군의 아들이 지난 18일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반면 중국군 희생자에 대한 장례는 제대로 치러졌는지 알려지지 않아 중국 네티즌의 불만을 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군과의 국경 충돌 과정에서 숨진 한 인도군의 아들이 지난 18일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반면 중국군 희생자에 대한 장례는 제대로 치러졌는지 알려지지 않아 중국 네티즌의 불만을 사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후시진은 “사망자가 군내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았으리라 믿으며 적당한 시점에 전 사회에 알려져 영웅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존경과 기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선 군인의 죽음 또한 국가의 계산과 편의에 따라 공표되는 모습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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