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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조영남 무죄? 현대미술 낙후된 인식이 문제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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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중앙포토]

1심은 유죄, 2심은 무죄, 대법원도 무죄.
 25일 대법원이 조영남 그림 대작 관련 사기 혐의에 대해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가수 조영남에 대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화투를 소재로 한 조 씨의 작품이 조 씨 고유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고, 현대미술에서 작가들이 조수의 도움을 받아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미술계에 흔한 관행이므로 이를 사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영남 대작 사건 '무죄' 판결 반응

법원의 판결을 바라보는 미술계의 시각은 아직도 분분하지만 "이제라도 법원이 상식적인 판결을 내려 다행"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자세히 들어봤다

"예술의 존립 근거 없어질 뻔"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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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애초에 이것은 법정으로 갈 게 아니라 학술대회에서 논의했어야 하는 사안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다행히도 상식적인 판단을 했다"면서 "문제는 예술의 영역 감성적인 영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조영남의 작품을 개념 미술로 보면 무죄이고 전통적인 평면 회화에서로 보면 대작으로 볼 수 있는데, 설사 대작이라고 해서 처벌받은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정성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에 정량적인 잣대를 들이대 유죄로 판결했다면 예술의 존립 근거 자체가 없어질 뻔했다"면서 "이런 영역에 대한 판단은 법원이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맡기는 게 옳다. 대중들의 감정적인 부분에 의해 여론으로 끌고 가 판단하려고 하면서 문제가 더 커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반성해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조영남 대작 사건을 두고 법정 공방이 여기까지 온 사태의 책임은 전문가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진 전 교수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현대미술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이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를 알게 돼 충격이 정말 컸다"면서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현대미술 본질을 설명할 의무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국내 전문가 중에 상당수가 현대미술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조영남 '유죄'를 주장한 이들 중에 화가, 평론가, 개념 미술 전공한 학자도 상당히 있었다는 것이다. 이어 "현대미술이 시작된 지 100년이 지났는데, 한국 사회는 100년 전 인식에 묶여 있었다"면서 "한국에서 벌어진 이 상황은 양자역학 시대에 뉴튼 물리학 얘기를 하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

진 전 교수는 이어 "앤디 워홀도 대작 작가가 있었고, 대작 작가들에게 대작비도 적게 줘 별명이 '스크루지 영감'이었다"면서 " 대작 작가에 대한 인색한 대우는 도의적인 문제일 수는 있으나 그게 본질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게 상도에서 크게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조 씨가 대작 그림을 완성하면서 기여한 부분이 적은 게 문제였을까. 진 전 교수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대작 작가가 100% 다 그렸어도 '무죄'"라는 것이다. 현대미술의 개념적 혁명은 물리적인 실천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1917년 뒤샹이 변기에 사인했을 때 이미 미술세계는 아이디어, 즉 '컨셉'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시 "진짜 문제는 전문가 집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 미학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너무 낮다"면서 "아직도 상당수가 예술가라는 것을 기능의 문제가 아닌 신분의 문제로 보고 있다. 현대미술은 컨셉을 누가 정했고, 누구 브랜드로 보느냐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낡은 미술관 드러내 준 해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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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심리학자이자 화가인 김정운 씨도 한국 사회의 낡은 미술관을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지목했다. 김 씨는 이번 사건을 가리켜 "한국 사회가 얼마나 협소하고 낡은 미술관을 가졌는지를 드러내 준 '웃기는 해프닝'이었다"면서 "아직도 미술이 대상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을 잘 그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은 미술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 시각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이 미술을 그런 관점에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결국 이 이슈는 한국의 미술교육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미술이라는 게 내면을 표현하는 도구가 돼야 하는데 대상을 모방하는 것이 미술이라는, 일본 메이지 때 왜곡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현대미술을 폭넓게 인식하고 긍정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관행은 아니다. 그건 짚고 가야"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문제는 조영남씨가 자신을 방어하며 그림 대작이 미술계의 관행이라고 얘기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 평론가는 "세계적인 화가 데이비드 호크도 개념은 중요하지만 초안은 작가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면서 "모든 작가가 이렇게 대작을 하고 있는 것처럼 호도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조씨의 무죄가 맞지만 그것을 가리켜 "관행"이라고 한 조씨의 주장은 옳지 않았다는 것이다.

 홍 평론가는 "마티스만 해도 백내장이 와도 자신의 그림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손으로 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시켜 그림을 그리게 하지 않았다"면서 "그림 대작이 미술계의 일부 작업임에도 쉽게 '관행'이란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조씨의 대처가 아쉬웠지만, 그가 '무죄'라는 데에 대해서는 다른 전문가들과 의견이 같다. 홍 평론가 역시 "이는 미술계에서 토론으로 이론적 접근을 해야 했다. 조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는 과잉 대처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영남 "더 열심히 그리겠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조영남 씨는 "이제 그림에 더 집중하겠다"는 말로 소감을 전했다. 앞으로도 조수를 쓰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수를 써야 할 정도로 바쁘고 인기 있는 화가가 되고 싶다. 곧 전시 일정을 잡고 여러분을 만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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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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