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팻말 몸에 묶은 한 남자···"궁핍한 시대가 만든 명작"

중앙일보

입력 2020.06.14 10:00

업데이트 2020.06.14 17:34

임응식, 구직, 명동 미도파 앞, 서울, 1953.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구직, 명동 미도파 앞, 서울, 1953.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청계천사람들, 청계천, 서울, 1957. [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청계천사람들, 청계천, 서울, 1957. [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상주, 서울, 1957.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상주, 서울, 1957. [임응식사진아카이브]

모자를 깊이 눌러 쓴 젊은 남자가 '求職(구직)'이라 쓰인 팻말을 허리춤에 묶고 벽에 기대어 서 있다. 일자리가 필요한 그의 등 뒤로 번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악수를 하고 있다. 1953년 명동 거리 풍경이다. 누가 찍었는지는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 봤음직한 이 사진은 '한국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1912~2001)의 대표작 '구직'이다.

'한국 사진의 선구자' 임응식
'부산에서 서울로' 52점 소개
1946~60년 서울, 부산 풍경

최연하 사진평론가는 이 사진을 가리켜 "궁핍한 시대가 탄생시킨 명작"이라고 했다. "군더더기 없는 구도와 인물의 자연스러운 포즈"로 전후 실업자가 넘쳐나던 현실을 생생하게, 또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얘기다. 임응식이 1957년 서울 청계천에서 찍은 '청계천 사람들' 역시 빈곤했던 195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개천을 끼고 빼곡히 들어선 판잣집들이 보이고, 개천 한가운데 엉성하게 만들어놓은 메뉴판이 눈에 띈다. 설농탕 100환, 백반 150환, 불고기백반 300환···. 오래전 눈 밝은 사진가가 발로 뛰어다니며 렌즈로 낚아챈 이 순간들이 지난 50여년간 한국 사회가 겪은 변화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한국 사진계의 태두' 임응식 

임응식은 대학 사진교육에도 매진해 한국 사진의 제도교육 발판을 마련했다.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은 대학 사진교육에도 매진해 한국 사진의 제도교육 발판을 마련했다. [임응식사진아카이브]

한국 1세대 리얼리즘 사진가 임응식의 사진전 '부산에서 서울로'가 서울 강남역 인근 사진·미술 대안공간 SPACE 22에서 열리고 있다. 임응식이 부산에서 활동하던 시기인 1946년부터 서울로 정착하는 1960년 이전까지의 작품 52점을 모은 자리다. 전시에 맞춰 임응식의 작품세계를 정리한 사진집 『부산에서 서울로』(이안북스)도 함께 출판됐다. 임응식의 업적을 본격적으로 되돌아보는 작업의 일환이다.

1912년 부산에서 태어난 임응식은 일본 와세다 중학교 입학 선물로 카메라를 받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933년 일본인 중심으로 결성된 부산여광사진구락부에 가입하고 1934년 일본 사진잡지인 ‘사진살롱’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면서 등단했다. 이후 그는 일본 도시마체신학교를 졸업한 뒤 강릉·부산 체신국에서 근무하며 사진 작업을 이어갔다. 1944~46년 일본물리탐광주식회사에서 과학사진을 찍었고, 1946년부터 부산에서 사진현상소 ‘아르스(ARS)’를 운영했다.

사진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는 사진에 관한 한 '최초' 타이틀을 줄줄이 보유하고 있다. 1952년 12월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창립했고, 1953년 국내 사진가로는 처음으로 서울대 미대에서 사진강좌를 맡았다. 이후 그는 1974~78년 중앙대 사진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연 작가이기도 하다. 이어 2011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도 탄생 100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열린 바 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임응식, 아침, 부산 서면, 1946.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아침, 부산 서면, 1946.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은 처음엔 서정적이고 형식미에 중점을 둔 사진으로 시작했으나, 한국전쟁 이후 생활주의 리얼리즘 사진을 추구한 작가로 꼽힌다. 생활주의 리얼리즘이란 그가 추구한 사진 철학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보통 사람들의 일상생활 현장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사진가로서 자신의 임무는 "아름다운 대상을 찍는 게 아니라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임응식이 주목하고 포착한 1950년대 전후 사회가 '구직' 사진처럼 빈궁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시선은 당시 사회에 감돌던 역동적인 공기를 그냥 놓치지 않았다. 1946년 부산 서면에서 찍은 '아침'이란 사진도 그중 한 예다. 댕기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소녀 셋이 머리에서 꽃을 가득 채운 양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고 있다. 아침 햇살을 흠뻑 받으며 걸어가는 그녀들의 모습에 눈부신 활기가 감돈다.

최연하 평론가는 "이번 전시는 특히 전쟁 중이거나 폐허에서 복구 중인 부산과 서울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면서 "거칠고, 소란스럽고, 위태롭고, 어지러운 당시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전했다.

이것이 명동이다   

임응식, 명동 부감, 명동, 서울, 1954.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명동 부감, 명동, 서울, 1954.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연인, 시청앞, 서울, 1955.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연인, 시청앞, 서울, 1955.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명동여인들2, 명동, 서울, 1959.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명동여인들2, 명동, 서울, 1959.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명동거리1, 명동, 서울, 1959.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임응식, 명동거리1, 명동, 서울, 1959. [임응식사진아카이브]

이번 전시에선 1950년대 '명동'과 을지로, 장충동 등 서울 거리에서 찍은 사진과 부산 곳곳을  사진을 보는 재미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중절모를 쓴 신사와 여인('연인', 1955), 할리우드 여배우처럼 차려입은 멋쟁이 여성들과 그녀들을 태우고 있는 올드카('명동 여인들2',1955) 등이 모두 옛날 영화 속 장면 같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명동 거리를 내려다보고 찍은 '명동 부감'(1954). 2층 높이의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즐비한 명동 거리가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처럼 보인다.

"나의 생활 속에서 명동을 떼어놓을 수 없다. 찍고, 찍고 또 찍어도 한없이 찍고 싶다. 명동의 망령이라도 붙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고 쓴 임응식은 1950년대부터 2001년 세상을 떠날 때 가지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명동 거리를 누볐다고 한다.

"임응식 업적 더 연구·조명돼야" 

이번 전시와 사진집 출간은 임응식사진아카이브(대표 임상철)와 SPACE22(대표 정진호). 그리고 이안북스(대표 김정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3년 전부터 임응식사진아카이브를 운영해온 임상철 대표는 "지난 3년간 임응식 작가의 유품을 정리하며, 저의 할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이자 사진가, 예술인으로서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됐다"면서 "이번 전시와 사진집 출판을 계기로 임응식 사진가가 한국 사진계, 나아가 한국 문화계에 남긴 유산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9일까지(월~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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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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