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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정말 지뢰밭일까? 독립병입 위스키의 세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73)

“독립병입 위스키를 사는 건 지뢰밭을 걷는 것과 같다.”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 ‘독립병입 위스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흔히 나오는 말이다. 특정 회사가 증류소에서 숙성 중이던 오크통을 사서 병입해 판매하는 걸 ‘독립병입 위스키’라고 한다. 오크통을 사서 위스키 블렌딩과 병입, 그리고 판매까지 증류소와 독립적으로 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최초의 독립병입 위스키 회사는 스코틀랜드의 ‘케이든헤드(CADENHEAD’S)’다. 현재는 위스키 소비량이 많은 국가에 여러 회사가 독립병입 위스키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최초의 독립병입 위스키, ‘케이든헤드(CADENHEAD’S)’ [사진 김대영]

최초의 독립병입 위스키, ‘케이든헤드(CADENHEAD’S)’ [사진 김대영]

왜 독립병입 위스키에 ‘지뢰(맛없는 위스키)’가 많다는 걸까? 우선, '마스터 블렌더'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위스키를 생산하는 증류소는 위스키 품질을 관리하는 마스터 블렌더를 두고 있다. 마스터 블렌더는 어느 순간에 위스키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난지 판단해낸다. 또 여러 가지 위스키 원액을 섞어서 균일한 위스키 맛을 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독립병입 위스키를 만드는 회사에는 마스터 블렌더가 없다. 물론, 마스터 블렌더로 일했던 사람이 독립병입 위스키 회사에서 오크통 선별을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립병입 위스키 회사에는 맛과 향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없다.

다음으로 생각해볼 문제는 과연 독립병입 회사가 좋은 오크통을 구입할 수 있느냐다. 증류소에서는 맛있는 오크통을 독립병입 회사에 팔 필요가 없다. 직접 병입해서 팔면 더 많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에선 “독립병입 회사는 증류소에서 계륵 같은 오크통만 사서 판다”고 말한다. 하지만 100%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증류소와 독립병입 회사는 위스키 숙성 전에 판매 계약을 맺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팔기 싫어도 증류소는 오크통을 독립병입 회사에 내놓아야 한다.

스코틀랜드 브룩라디 증류소 위스키 숙성고의 오크통. [사진 김유빈]

스코틀랜드 브룩라디 증류소 위스키 숙성고의 오크통. [사진 김유빈]

마지막으로 ‘팔레트 구입설’이 있다. 독립병입 회사가 증류소에서 오크통을 살 때, 맛도 제대로 안 보고 여러 오크통이 놓인 팔레트 채 오크통을 구입한다는 거다. 오크통 구입할 때 선택권이 제한되어있고, 증류소는 한 번에 여러 오크통을 판매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위스키를 사는 회사도 있다. 그러나 오크통 선택 기준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맛이 이상한 위스키를 팔면 독립병입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기 때문이다. 요즘 출시되는 독립병입 위스키 중엔 직접 테이스팅 후 신중하게 오크통을 선택했다는 문구를 표시하기도 한다.

독립병입 위스키는 워낙 종류가 다양해서 증류소에서 발매하는 위스키보다 맛의 다양성이 훨씬 크다. 생소한 맛이 맛없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것도 다양한 위스키 맛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독립병입 위스키 = 지뢰밭’이라는 말은 표현은 그르다고 생각한다. 또 증류소에서 발매하는 ‘오피셜 위스키’도 품질이 떨어지는 건 얼마든지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내겐 맛없는 위스키라도 누군가에겐 맛있을 수 있다는 사실. 세상에 오피셜 위스키만 존재했다면 몰랐을 위스키의 새로운 맛의 세계. 그것이 독립병입 위스키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

맛과 향의 개성이 강한 독립병입 위스키. [사진 김대영]

맛과 향의 개성이 강한 독립병입 위스키. [사진 김대영]

위스키 인플루언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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