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감 떨어졌나 워런 버핏…손절매 쇼크에 거래실적도 뚝, 믿는 건 현금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최근 투자 성적표가 초라하다. EPA=연합뉴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최근 투자 성적표가 초라하다. EPA=연합뉴스

‘오마하의 현인’의 마법이 사라진 걸까. 세계적 투자가 워런 버핏(89)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얘기다. 버핏의 투자 성적표가 말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의 변동성 탓만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버핏 회장의 투자에 대해 물음표가 붙었다.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 오마하에 거주한다.

지난해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는 29% 상승했는데, 같은 기간 버크셔 해서웨이가 투자했던 주식들의 상승률은 11%에 그쳤다. S&P 500지수 대비 버크셔 해서웨이의 수익률이 이렇게 큰 폭으로 벌어진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이다. 경제 정보를 망라한 블룸버그 단말기에서 버핏을 검색하면 “수십년간 연 20%가 넘는 수익률을 매년 기록해온 투자가”라고 뜬다. 지난해 상승률은 반타작 수준이다.

올해 역시 상황은 좋지 않다. 버핏은 코로나19 확산 후 미국 항공사 주식을 전량 손절매했는데, 이후 해당 주식은 급등했다. “나이가 많아서 예리함을 잃었다”(피셔 인베트스먼트 회장 케네스 피셔) “버핏의 투자 방식은 너무 느리고 너무 낡았다 비판이 커지는 중”(파이낸셜타임스) 등의 지적이 나온다. 버핏의 투자 명언 중 세 개를 추려 지금 그의 상황을 뜯어봤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차총회(AGM)장에서 판매되는 워런 버핏 인형. 버크셔 해서웨이의 AGM은 '워런 버핏 원맨쇼'로도 불린다. 수만명의 투자자들이 몰리는 대형행사다. 로이터=연합뉴스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차총회(AGM)장에서 판매되는 워런 버핏 인형. 버크셔 해서웨이의 AGM은 '워런 버핏 원맨쇼'로도 불린다. 수만명의 투자자들이 몰리는 대형행사다. 로이터=연합뉴스

“평판을 쌓는 데는 20년이 걸리지만, 잃는 데는 5분이면 된다”

버핏의 평판은 바닥을 쳤다. “멍청한 늙은이”라는 조롱까지 나왔다. 스포츠 도박 사이트 바스툴 스포츠의 설립자 데이비드 포트노이의 말이다. 이런 거친 언사를 제외하고 점잔빼는 전문가들 역시 우려의 발언을 내놓았다. 금융기업인 에드워드 존스의 제임스 섀너핸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버핏이 이번 주식시장의 반등세를 완전히 놓쳐버린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FT는 17일자에서 “버핏이 마법의 터치를 잃어버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눈 한 번 깜빡하는 사이에 요동을 치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그의 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적 가치투자를 강조해온 버핏의 투자 방식을 두고도 “시간을 들여 수익을 내는 것도 좋지만 적시에 내야 한다”는 지적도 FT는 덧붙였다.

자신이 투자한 코카콜라의 신제품을 마셔보는 버핏 회장. 지금 그는 투자 손실로 인해 목이 많이 타는 상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자신이 투자한 코카콜라의 신제품을 마셔보는 버핏 회장. 지금 그는 투자 손실로 인해 목이 많이 타는 상황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리스크는 지금 당신이 뭐 하는지 모를 경우 생긴다”

이미 드러난 투자 실패보다 더 우려스러운 건 버핏이 투자를 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뭘 투자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코로나19 이후 주목할만한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상황이 있긴 하지만 2008년 리먼브러더스 발 금융위기 당시와 비교해봐도 버핏의 신중함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8년 당시 버핏은 반등을 자신하며 골드만삭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 등에 과감히 투자했다. 케네스 피셔 회장은 “버핏이 감을 잃었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 나이의 인물은 위기에 처하면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고 에둘러 말했다.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오른쪽)가 7일(현지시간)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주총에서 의견을 나눴다. 버핏은 ’트럼프케어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부자를 돕고,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블룸버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왼쪽)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오른쪽)가 7일(현지시간) 네브래스카 오마하에서 열린 버크셔해서웨이 주총에서 의견을 나눴다. 버핏은 ’트럼프케어가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 부자를 돕고, 재정적자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블룸버그]

“썰물일 때면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코로나19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큰 타격을 안겼다. 올해 1분기 버크셔 해서웨이는 497억달러(약 60조3358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버핏의 현재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허점이 있다. FT는 “기술주는 적고 은행 등 금융주는 많은 게 버핏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버핏의 포트폴리오에서 톱10인 기업 중 기술주는 애플이 유일하다. 애플이 그나마 제일 투자 평가액이 높지만 나머지 9개 기업 중 7개가 뱅크오브아메리카(2위) 등 금융 관련 업계에 속해있다. 아마존 등 우량주는 상대적으로 소액투자만 했다. 버핏 자신이 이미 아마존에 대해선 “놓친 것을 후회한다”고 말한 바 있다.

코로나19 이전 버핏의 뼈아픈 실패 중 대표적 사례는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다. 버핏은 2013년 하인즈를 공동 인수했고, 2015년 크래프트 푸즈와 합병시켰다. 크래프트하인즈의 주가는 2017년 2월까지는 올랐으나 그후 75% 가까이 급락했다. 버핏 회장도 지난해 버크셔 해서웨이 연차총회(AGM)에서 “크래프트하인즈 투자는 실수였다”며 “너무 많은 돈을 지불했다”고 실패를 인정했다.

버핏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고 있으나 그래도 그의 시대가 저물었다고 단정짓는 건 이르다. FT는 “장기 투자를 중시해온 버핏의 전략이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열매를 맺을 수도 있다”고 적었다.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발생한다면 또 다시 증시가 폭락할 것이고, 몸을 웅크리고 있던 버핏에게 악재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버핏이 여전히 1370억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는 것도 실탄 확보 측면에선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가드너 루소 & 가드너 투자사의 임원인 토마스 루소는 FT에 “여기까지 (투자를 안 하고) 왔다면 차라리 그 1370억 달러는 신중하게 쓰는 게 장기전에선 좋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버핏의 또 다른 명언 “다른 이들이 욕심을 부릴 때 공포에 떨고, 다른 이들이 공포에 떨 때 욕심을 내자”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