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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의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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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박진석 기자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2000년 10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한 여관방에서 중년 사내가 사체로 발견됐다. ‘정현준 게이트’에 연루돼 수배 중이던 금융감독원 국장이었다. 그는 옷걸이에 묶은 나일론 줄을 이용해 세상을 등졌다.

난리가 났다. 그는 로비스트들과 정·관계 ‘윗선’ 간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된 인물이었다. 줄을 매달았던 옷걸이 높이가 키 높이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나 유서를 통한 비리 혐의 부인(否認)과 실제 행동 사이의 괴리감 등은 의혹을 눈덩이처럼 키웠다. 자살을 가장한 타살 아니냐는 시선이 감지됐지만 거기까지였다. 그가 사라지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이 사건은 20세기까지만 해도 민주 투사들에게나 사용됐던 ‘의문사’라는 단어의 세속 하방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의기억연대 마포 쉼터 손모 소장의 비극을 둘러싼 논란이 그를 기억 속에서 불러냈다. 몇 가지 측면에서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어서다. 물론 손 소장의 ‘물리적 사인’(死因)과 관련해 의문사를 운운하는 건 과해 보인다. 20년 전과 달리 ‘사인 조작’을 의심할 만한 시대는 아니라서다.

그러나 ‘심리적 사인’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언론에 이름 한 번 거명된 적 없고, 소환 대상도 아니었던 그의 선택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풀리지 않는 숙제와 같다. 더구나 사건 당일 그와 주변인들의 미심쩍은 행적이 발견되면서 의문은 덩치를 키우고 있다. 개인 문제에 그치는 사안이 아닌 만큼, 의문 제기가 합리성의 범위를 넘어선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손 소장 주변인과 일부 여당 인사는 의문 제기 자체를 옥석 구별 없이 ‘패륜 행위’로 치부하는 듯하다. 야당과 검찰, 언론을 주범으로 규정하면서 “죽음의 정치적 이용을 규탄한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거둬야만 멈출 것인가” 등 강하게 비판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나 국민 사이에서는 이번 비극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건 검찰이나 언론이 아니라 진실을 감추는 듯 보이는 이, 또는 그 세력이라는 시선이 엄존하는 게 사실이다. 한발 더 나아가 과연 죽음을 이용하는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강한 반발이 제 발 저린 도둑의 그것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길 기원해본다. 손 소장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