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회고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조선 22대 임금 정조는 즉위 직후인 1776년  외종조부(작은 외할아버지) 홍인한을 여산(전북 익산)에 유배했다. 이어 고금도에 위리안치했다가 사사(賜死)했다. 아버지 사도세자 죽음이 자신의 외가인 풍산 홍씨 가문, 특히 홍인한 때문이라고 여겼다. 정조 재임기 풍산 홍씨는 서서히 몰락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1795년(정조 19년) 자신과 친정 얘기로 회고록을 쓰기 시작했다. 『한중록』(閑中錄 또는 恨中錄)이다. 친정의 억울함을 풀려는 목적에서 썼다. 목적 없이, 그냥 회고만 하려고 쓰는 회고록은 세상에 없다.

회고록은 문학작품이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레프 톨스토이의 『나의 참회』 등이 대표적이다. 윈스턴 처칠은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을 회고록(『제2차 세계대전』)으로 남겼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회고록은 중요한 사료도 된다. 한국의 전직 대통령 7명이 회고록을 남겼다. ▶윤보선(『외로운 선택의 나날』, 1991) ▶전두환(『전두환 회고록』, 2017) ▶노태우(『노태우 회고록』, 2011) ▶김영삼(『김영삼 회고록』, 2001) ▶김대중(『김대중 자서전』, 2010) ▶노무현(『성공과 좌절』, 2009) ▶이명박(『대통령의 시간』, 2015) 등이다. 공공기록으로 남지 않은, 국정의 숨은 이야기가 담겼다.

최근 회고록 관련 몇몇 뉴스가 눈길을 끈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회고록 『나는 누구인가』를 내놨다. 대리인 이경재 변호사는 “회고록을 넘어 ‘회오기’(悔悟記)라고 이름 붙였다”고 전했다. 뉘우치고(悔), 깨우쳤다(悟)는 뜻이다. 그런데 책에서는 여전히 국정 농단을 부인한다. 또 하나는 23일 출간 예정인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것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 A White House Memoir)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관련한 여러 폭로가 담겼다고 한다.

한국에는 회고록 때문에 재판정 피고인석에 앉은 전직 대통령이 있다. 이 얘기를 참고하면 도움이 되겠다. “자서전은 수치스러운 점을 밝힐 때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칭찬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말을 하고 있다.” 작가 조지 오웰이 1944년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자서전 서평에 쓴 얘기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