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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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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애란
한애란 기자 중앙일보 앤츠랩 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한애란 금융팀장

‘싸이질’이란 말이 있었다. ‘싸이월드를 이용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당시 20대는 싸이질에 빠졌다. 전성기 가입자 수가 2700만명에 달했다.

1999년 시작된 싸이월드가 인기를 끈 건 2003년쯤부터다. 똑딱이(컴팩트) 디지털 카메라, 휴대폰 카메라의 보급과 맞아 떨어졌다. 자신의 사진과 콘텐트를 쉽게 꾸미고 자랑할 수 있는 서비스에 젊은층이 열광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방문자 수는 인기의 척도였다. 미니홈피 꾸미기에 이용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1개에 100원인 사이버머니 ‘도토리’를 충전해 아이템을 구입했다. 배경음악 하나에 도토리 5개, 글씨체 10개, 홈피 스킨은 20~50개였다. 도토리 하루 매출이 3억원. 광고가 아닌 디지털 아이템 판매로 수익구조를 차별화한 사례였다.

싸이월드에선 이름과 생일 같은 기본 정보만 알면 그 사람의 미니홈피를 찾을 수 있었다. 일촌의 일촌을 타고 미니홈피를 탐색하는 ‘일촌 파도타기’ 재미도 쏠쏠했다.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기자들이 가장 먼저 뒤진 것도 미니홈피 속 흔적이었다.

그리고 2009년 아이폰이 등장했다. PC에서 모바일로 디지털 환경이 급속히 변했지만 싸이월드는 따라가질 못했다. 핵심 서비스 미니홈피가 웹 기반이었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과거가 혁신을 막은 셈이다. 싸이월드가 스마트폰에 맞춘 새로운 ‘모바일앱’을 내놓은 건 2012년. 이미 이용자들이 페이스북, 트위터로 떠나간 뒤였다.

2016년 싸이월드가 부활을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모집했던 것을 기억한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소액이나마 투자를 신청해봤다. 하지만 결과는 목표금액(5억원)의 12%만 채우면서 투자자 모집 실패. 흘러간 추억은 추억일 뿐. 트렌드는 흘러가도록 내버려둬야 하는 법이었다.

최근 국세청이 싸이월드 사업자 등록을 말소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폐업 신청은 안 했지만 사실상 폐업 직전이다.  ‘내 데이터 돌려내라’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제 떠나보낼 때가 됐다고 여긴다. 동시에 깨달았다. 아날로그 자산은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더라도 남아 있지만, 디지털은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더라. 디지털 세상에선 언제든 다 버리고 떠날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한애란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