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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피던 중학생, 오케스트라 재미에 빠져 눈빛 바뀌었다"

중앙일보

입력

문화 소외 아동으로 구성된 올키즈스트라에서 10년간 활동한 최호진(트럼펫,왼쪽), 원총재(타악). [사진 함께걷는아이들]

문화 소외 아동으로 구성된 올키즈스트라에서 10년간 활동한 최호진(트럼펫,왼쪽), 원총재(타악). [사진 함께걷는아이들]

 “너무 안타까웠다.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연습하러 올 지하철 승차권값을 간식 사 먹는 데 써서 연습하러 올 수가 없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지난해 11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때 저소득층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치고 “배고프고 외롭고 희망이 없을 때도 음악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 음악은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꼭 답을 준다”는 메모를 아이들에게 남겼다.

이때 백건우와 한 무대에 섰던 ‘올키즈스트라’ 오케스트라는 2010년 창단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이 설립해 각 지역의 아동복지센터와 연계했고 지난해까지 4000명 넘는 청소년의 오케스트라 경험을 도왔다. 10년간 연주 활동은 490회. 현재는 양주ㆍ동해ㆍ아산ㆍ은평 등 7개 관악단이 있다.

관악기와 타악기로 이뤄진 올키즈스트라에는 원년 멤버인 강사 두 명이 있다. 트럼펫 강사인 최호진(39), 타악기 강사인 원총재(39)다. 이들은 “실력을 키워주는 ‘레슨'을 우선 생각하며 오케스트라에 참여하게 됐는데, 아이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을 보고 음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고 했다.

지금 ‘올키즈스트라’에는 소득과 상관없이 선발된 학생도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10년 전엔 소득을 기준으로 문화와 가까이할 기회가 없는 아이들로 전부 구성됐다. “처음에는 억지로 학습지 하듯이 연습 시간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특히 지역에서 ‘문제아’로 꼽히는 아이들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원총재)

음악은 정말로 빠른 시간 안에 아이들을 바꿀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꼭 유치원생들 같았다. 음악이나 악기를 접해본 적이 전혀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서 꼭 유치원생들처럼 신기해하면서 악기를 만지더라.”(최호진) 트럼펫ㆍ플루트ㆍ클라리넷 등 관악기와 드럼 등 타악기를 각자 골라 레슨을 받은 후 합주를 했을 때부터 아이들은 변했다. “자기 소리만 내다가 다른 악기와 소리를 합치기 시작하니까 성취감이 생기기 시작한 거다. 몰입하고 집중하고, 특히 부모님이 칭찬해주니까 재미를 느끼게 됐다.“(원총재)

 청소년들이 자신의 삶에서 거의 처음으로 목표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아주 간단한 동요 하나를 연주해도 마치 세계적 무대에 서는 것처럼 완벽히 하자는 목표를 가지고 연습했다.”(최호진) 아이들은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했다. “손버릇도 안 좋고 담배를 피우던 중학생이 있었는데, 합주하면서부터 휴대전화의 모든 노래 목록을 우리가 연습하는 합주곡으로 꽉꽉 채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음악을 꼭 잘하고 싶다며 집중하면서 나쁜 버릇들이 다 사라졌다. 농담처럼 ‘음악 덕에 금연했다’고 한다.(웃음)”(원총재) ‘금연에 성공한’ 그 중학생은 지금 직장생활을 하면서 ‘올키즈스트라’의 OB 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의 소리를 듣고,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면서 삶이 바뀌었다.

최호진과 원총재는 음악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오케스트라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만 생각하고 들어왔다”고 했다. 원총재는 “아이들을 실력을 키우도록 해서 악기를 잘하게 돕겠다 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들이 거꾸로 선생들에게 일깨운 것은 음악의 에너지다. ”아이들의 눈빛이 바뀌고, 성격도 긍정적으로 되는 걸 보면서 음악의 힘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제는 이 아이들에게 배운 것을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최호진)

물론 녹록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한 학생은 아버지의 지속적 가정 폭력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케스트라 연습에 나왔고, 연습 때문에 귀가가 늦었다는 이유로 다시 매를 맞은 후 집안에 며칠 동안 갇혀있었다고 한다. 최호진은 “그 아이는 오케스트라를 계속하고 싶어했지만 결국엔 그만둬야 했다. 그렇게 안타까운 사연도 많았다”고 덧붙였다.

올키즈스트라의 정기연주회 모습. [사진 함께걷는아이들]

올키즈스트라의 정기연주회 모습. [사진 함께걷는아이들]

음악의 힘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셌을까. 아이들이 변화한 이유는 뭘까. 원총재는 “음악은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40, 50명이 모여 연주하는데 거기에 자기 역할이 정확히 있다. 혼자서도 잘하면서 또래들과 화음도 만들어야 하는 자유와 책임감이 아이들을 성장시켰다고 본다.”

10년 넘는 경험을 토대로 강사와 지휘자들은 비영리법인도 세웠다. TAG(Teaching Artist Group)라는 이름으로 예술교육을 하는 연주자들과 노하우를 공유한다. “기능적인 음악 교육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상황과 처지를 헤아리는 가르침을 주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복지와 인문학의 개념들까지 다 배우고 음악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호진은 저소득층 오케스트라의 10년이 모든 이에게 특별한 의미를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특히 클래식 음악은 돈 많은 사람이 배우고 즐긴다는 통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누구나 열정을 쏟아서 몰입하면 즐거울 수 있다. 변화하는 아이들의 오케스트라가 그걸 보여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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