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쉴 줄 알았는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처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정치언박싱]
6선 고지에서 막 내려온 김무성 전 미래통합당 의원은 현직 국회의원 타이틀을 뗀 뒤 통합당의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했다. “제일 중요한 대통령 선거에 우리가 쌓아온 경륜을 총동원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김 전 의원과 가까운 전직 의원 46명이 주축이 되는 ‘마포 공부모임(가칭)’은 그의 킹메이킹 전초기지 다. 이 모임은 오는 17일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을 초청해 ‘코로나19 극복’을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마포 사무실에서 11일 김 전 의원을 만났다.
- 킹메이커 역할을 자처한 이유는
- 그게 제일 중요한 일이라서다. 지금 나라 망치고 있는 걸 중단시켜야 할 거 아니냐. 혁명을 할 수 없으니 선거에 이기는 거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 정작 유력 주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처음부터 대통령 될 줄 알았나. 현재 당 내부에서 거론되는 대선 주자들은 물론 잠행 중인 잠룡들도 아직 부각이 안 돼있다. 후보 선출 과정에서 장기가 부각되면 충분히 스타가 탄생할 수 있다.
- 부각되지 않은 후보도 있나
- 찾아야지. 쓸만 하다 하는 후배들이 있다. 다만 용기를 못낼 뿐이다. 마음 비운 사람들의 모임이니 친소 관계를 떠나 찾아볼 생각이다.
“안철수 뭉쳐야…윤석열 변신하면 가능”
“당 내부 주자들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겠다”는 김 전 의원에게 당 밖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이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윤석열 검찰총장 등이 모두 가능성 있는 주자라고 내다봤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어떻게 보나
- 안철수 대표도 문재인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지 않나. 뭉쳐야지 이길 수 있다. 분열하면 진다. 합치는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안 대표도 합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고, 본인 사고의 유연성을 가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 윤석열 검찰총장을 거론하는 이도 있다
- 내 주변에도 윤석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좌파 정권 하에 임명직 검찰총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 의문 부호가 달린다는 건가
- 정치는 사고의 유연성, 사고의 민주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검찰이라는 건 센 권력이다. 평생 그 자리에서 소신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정치인으로 변신이 가능할까. 변신이 되면 그것(대선 출마)도 가능한 이야기다. 이 사회에 영웅이 탄생하면 좋겠다.
“김종인은 '차르'처럼 하면 실패한다”
말을 이어가던 김 전 의원은 대선 승리를 위해선 “당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당내 민주주의”를 먼저 강조했다. “과거 대통령, 당 대표가 당을 자기 마음대로 하다 잘못된 공천을 해 결국에 당을 망하게 했다”는 이유였다.
-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카리스마형 지도자 아닌가
- 김종인 위원장이 ‘차르’라는 별명처럼 당을 운영하면 실패한다. 내년 4월 보궐선거도 전부 경선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내년 부산 등 광역단체장 공천권 행사를 위해 비대위 기간을 늘렸다고 하는 이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안 본다. 당헌·당규에 광역단체장은 경선으로 상향식 검증을 하도록 돼있다.
- 김 위원장이 ‘보수 탈색’ 주장으로 반발을 불렀는데
- 보수라는 말 쓰지 말자는 건 찬성이다. 단어의 뜻만 놓고 볼 때 진보가 훨씬 좋은 뜻 아니냐. ‘보수 대 진보’는 보수가 백전백패다. 우리(통합당)는 우파, 민주당은 좌파다. 좌파를 막말로 규정하는 것도 무식하다.
- 이념 노선 설정은
- 우파만 단결한다고 이길 수 없다. 4·15 총선 결과가 그렇다. 좌우 구도를 깨고 실용주의 노선으로 유연성을 가지고 가야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새 세상을 보고 새 전략을 세워야 한다. 새는 알을 까고 나오는 것이다.
- 기본소득은 어떻게 평가하나
- 나라 망칠 일이다. 현재 재정으로는 불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게 자동화되고 실업자가 양산돼 국가가 먹여살려야 할 상황이라는 사회적 컨센서스가 먼저다. 지금은 아니다.
“‘윤미향 사태’, 좌파들의 억지”
김 전 의원은 여당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이 정권의 지지율이 높다고 하지만 결국은 또 다시 실패한 정권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부보다 청와대가 훨씬 우위에 있다. 당도 청와대 의도대로 움직인다. 옳지 못한 일에는 후유증이 남게 된다”는 논리였다.
- 대통령을 향한 비판인가
- 정권 초기에 대통령은 허수아비고 주사파들이 청와대를 장악해 끌고 간다고 얘기했지만, 내가 같이 당 대표도 해보고 경험해보니까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이 제일 좌파라고 나는 생각한다.
- ‘윤미향 사태’는 어떻게 보나
- ‘조국 사태’와 똑같다. 좌파들의 억지다. 윤미향(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돈을 모아서 자기도 먹고 살려고 콩고물을 좀 먹었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돈 제대로 주지도 않고 자기들이 활용한 것 아니냐. 2015년 위안부 피해자 합의 폐기 배후에도 윤미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 해결되면 자기들 조직이 해체되니까.
- 2015년 위안부 피해자 합의가 잘 된 합의라는 건가
- 외교적 쾌거였다. 결례를 무릅쓰고 끝까지 아베 일본 총리를 몰아세워서 사과문과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을 받아냈다. 굉장히 어려운 일을 해낸 거다. 아베도 사과문을 만들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보다 탄핵 원해”
김 전 의원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제2비서관으로 사실상 공직생활의 첫발을 뗐다. 이후 만 36년 간 공직생활을 이어왔다. ‘후회 되는 일은 없었냐’고 묻자 “모든 게 후회스럽고 끝없는 후회의 연속”이라며 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윽고 “내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들어놓고 내 손으로 주동해서 탄핵을 시켰다고 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고 입을 뗐다.
- 탄핵을 주도했다고 배신자라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
- 그때 국정이 마비돼 선택 가능한 사항은 두 가지였다. 하야냐, 탄핵이냐. 하야는 민중봉기(촛불집회)에 대통령이 항복하고 나오는 것 아니냐. 대한민국 대통령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탄핵은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하야보다는 탄핵을 원했다.
- 박 전 대통령이 하야보다 탄핵을 원했다?
- 기록이 있다. 당시 의원총회에서 ‘4월말 퇴임, 6월말 대선’ 당론을 들고 이정현(당시 새누리당 대표)ㆍ정진석(당시 원내대표) 둘이 청와대에 갔다. 박 전 대통령이 ‘저는 하야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럼 탄핵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고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진석이 답하자 박 전 대통령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의총 속기록에도 남아있다. 그러면 대통령이 탄핵을 원한 게 아니냐.
- 친박계의 반발은 없었나
- 의총 끝나고 친박 핵심 8명이 모였다. 몇 시간 토론해 내린 결론이 하야였다. 허원재 정무수석에게 전화해 뜻을 전했다. 단 한 명도 내게 탄핵하지 말자고 호소한 사람이 없었다. 이런 말을 내가 처음부터 할 줄 몰라서 안 했겠나. 당이 분열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뒤집어쓰고 당분간 가만히 있어야겠다 생각했다.
글=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영상=임현동·강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