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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땐 4대강, 문 정부는 민주화운동…코드 지원부터 없애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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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견제없는 권력, 시민단체〈하〉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평화나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제1443차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의기억연대·평화나비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제1443차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대표인 ‘징검다리 교육공동체’는 올해 340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교육공동체 구축을 위한 학부모 전국 워크숍’ 사업을 하겠다고 정부 지원사업에 신청했다. 지난해 3900만원을 받은 데 이어 올해도 나랏돈을 받게 됐다. ‘민주화 운동 정신 계승 국민연대’도 올해 2400만원을 지원받는다. 이 단체는 올해 지원금으로 ‘영상으로 보는 민주올레 가이드북 제작’을 하기로 했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한 서경석 목사가 대표로 있던 ‘선진화 시민행동’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론 보조금이 뚝 끊겼다. 이 단체는 2013년부터 5년간 총 1억6200만원을 지원받았다.

“입맛에 맞는 단체 지원 관행” #문 정부, 곽노현 교육단체 넣고 #보수 성향 대한민국사랑회 제외 #20년간 2176억 주고 감시 부실 #정부, 2014년 “회계 비리 근절” #사업비 관리 여전히 제대로 안돼 #깜깜이 평가 제도도 문제 #정부, 우수·보통·미흡으로만 평가 #시민단체 개별점수는 공개 안해

시민단체 국고 지원이 정부의 ‘코드’에 따라 달라지고, 20년 넘게 시민단체 활성화를 위해 공익사업 지원 명목으로 나랏돈을 주고 있으면서도 정작 사후관리는 부실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비영리민간단체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비영리민간단체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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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2000년 시민단체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비영리 민간단체 지원법’을 마련했다. 나랏돈이 지원되면서 시민단체도 급증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01년 1분기 기준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단체는 3012곳이었다. 2011년엔 9699곳으로 세 배 가까이로 늘었다. 올해 1분기 기준 시민단체 수는 1만4773개에 달한다. ‘비영리 단체법’이 만들어진 2000년부터 올해까지 20년간의 정부 지원금은 모두 2176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당시 정권의 시책에 맞는 사업에 지원금을 줬다. 일례로 행정안전부는 2009년 보조금 지원계획을 세우면서 “국가 정책에 대해 보완·상승 효과를 갖는 사업을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핵심 정책이었던 ‘일자리 창출과 4대강 살리기 운동’은 아예 지원사업 유형으로 제시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이 방식은 유지됐다. 이 때문에 당시 진보단체들로부터 “보수단체에 지원금을 몰아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 횡령이 적발된 자유총연맹은 이듬해 또다시 보조금을 받아 반발을 사기도 했다.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지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비영리민간단체 보조금지원 현황. 그래픽=신재민 기자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정부가 지원 항목을 조정하면서 보조금을 받는 시민단체도 물갈이됐다. 2017년 사회통합 분야 지원을 받은 23개 시민단체 중 2018년에도 지원을 받은 곳은 대략 10곳이었다. 절반 이상이 이탈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 성향의 서정갑 대표가 이끄는 국민행동본부를 비롯해 블루유니온·대한민국사랑회 등 보수단체들이 탈락했다. 반면에 지선 스님(최형술)을 대표로 한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는 신규로 380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정부는 올해도 223개 단체에 72억원을 지원한다.

‘코드 지원’ 논란에 대해 행안부 관계자는 “단체의 이념은 지원 단체 선정 고려 사항이 아니다. 공익사업을 위해 선정위원회가 엄격히 심의해 결정한다”며 “누가 선정위원인지도 임기 내엔 밝히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공정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유경(경희사이버대 교수) 한국NGO학회장은 “미국·영국 등도 정부와 시장이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시민사회에 사업지원비 형태로 공익활동을 지원한다”며 “문제는 진보 정권이냐 보수 정권이냐에 따라 입맛에 맞는 단체에 편중돼 지원하는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기부금 국세청 공시 차이

시민단체 기부금 국세청 공시 차이

나랏돈 지원은 20년째 이뤄지고 있지만 정작 회계 감시와 평가 등 사후관리 시스템은 부실하다. ‘회계 부정’ 사건이 끊이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2008년엔 환경운동연합에서 보조금 개인 유용 사건이 터졌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은 사업비와 보조금 횡령 등의 혐의로 전 환경운동연합 간부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관리 부실’이란 지적에 정부는 이듬해인 2014년 2월 부랴부랴 “회계 비리를 근절하겠다”며 대안을 내놨다. 금융기관·국세청 등과 연계해 사업비 입출금 내역을 모니터링하고 ‘온라인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 관리 정보시스템(NPAS)’ 사이트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동안 관리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임현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오래되고 낡은 시민사회 관련 지원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평가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정부는 “부당집행 단체 명단 및 단체별 평가 결과를 공개한다”고 하지만 관리 정보시스템엔 단체 명단만 있을 뿐 정확한 금액 등은 공개하지 않는다. 사업 평가도 100점 만점 기준으로 우수(90점 이상), 보통(90~60점), 미흡(60점 미만)으로만 나올 뿐 개별 점수는 비공개다.

박성민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는 “실사 중심의 평가를 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고 사업을 검증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운호 경희대 시민사회NGO학과 교수는 “시민단체 내부의 견제 시스템이 사실상 없다”며 “기부 및 후원을 하는 개인과 기업, 자금을 지원한 지자체와 정부가 사후관리를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예·김방현·윤상언 기자, 노유진 연구위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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