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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전문가 "문재인 아픈곳 아는 北, 韓 가스라이팅 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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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지난 7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에서 활짝 웃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AP=연합뉴스]

북한이 9일 남북 통신선을 전면 차단하면서 후속 대남 조치를 예고한 데 대해 미국은 "실망했다"고 밝혔다. 대북 관계에서 감정적 표현을 자제해 온 미국이 이례적으로 '실망'이란 표현을 써서 북한에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강경 행보가 강도 높은 도발을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무부, "北 행동에 실망…외교로 돌아가라" #전문가 "北, 韓 심리 조작해 지배력 강화" #잇따른 대남 강경행보 김여정 통한 데 주목 #김정은 후계자 키우기 위한 큰 그림일수도

미 국무부는 9일(현지시간)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한 데 대한 미국 입장을 묻는 중앙일보 질의에 "미국은 언제나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해왔으며, 북한의 최근 행동에 실망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다시 외교와 협력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북한을 관여시키려는 노력에 있어서 동맹인 한국과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을 거친 말과 행동으로 위협하는 북한 노림수에 대해 미 전문가와 언론은 다각도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진 리 윌슨센터 한국역사·공공정책센터장은 북한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두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고 봤다.

리 센터장은 트위터를 통해 "북한은 한국이 관계를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6·15 선언이라는 이정표 20주년을 앞두고 한국을 가스라이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은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스스로 인식이나 판단을 의심하게 하여 통제와 지배력을 강화하는 심리 조작의 한 형태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젊은 층 사이에서 연애나 친구 관계 또는 성범죄 등과 관련해서 폭넓게 쓰인다.

북한은 6·15 선언 이후 20년간 진전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한국을 괴롭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고, 그게 남북 관계 개선을 업적으로 삼는 문재인 대통령의 '아픈 곳'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게 리 센터장 의견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최근 잇따라 대남 강경 행보에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최근 잇따라 대남 강경 행보에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키우기 위한 큰 그림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CBS 방송은 최근 북한의 대남 강경 발언과 조치가 모두 김여정을 통해 나왔다는 데 주목했다.

지난 4월 김 위원장이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건강 이상설이 돌았을 때 김여정이 후계자로 거론됐지만 새 지도자가 되기에는 군 경력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있었다.

잇따른 대남 강경정책 발표에 김여정 이름을 올리는 것은 이런 비판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은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 명의 담화에서 탈북민 대북전단 살포를 비판하며 “부추기는 놈이 더 밉다”고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또 개성공업지구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철거와 폐쇄, 9.19 남북 군사합의 파기를 거론하며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남사업 부문 회의를 주재하고 남북 간 통신선 차단과 한국을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주체가 김 제1부부장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한국을 "적(enemy)"으로 규정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북한이 조만간 도발을 시도하기 위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AP통신은 북·미 대화에 진전이 없고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가 지속하는 데 불만을 품고 북한이 더 큰 도발을 시작하거나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일부러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CNN은 북한이 적대감을 끌어올리는 것은 남북 대화를 시작하려는 정치적 책략일 수 있다고 봤다. 압박감을 느낀 한국이 김 위원장 요구를 들어줄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고 한국을 코너로 몰아넣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한 질의에 국무부는 "외교를 통해 진전을 이루는 데 전념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국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최종적이고 완전하고 검증된 비핵화를 포함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서로에게 한 약속에 대해 외교를 통해 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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