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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체성 들키자 극단선택···코로나가 만든 '아우팅 금지조례'

중앙일보

입력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본인 동의 없이 타인이 공개하는 '아우팅(outing)'을 금지하는 조례가 일본에서 처음 등장할 전망이다.

성 정체성 공개돼 정신질환, 목숨 끊는 사례도 #"코로나 19 검사에 성소수자들 불안감 커져"

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미에 현은 이날 성 소수자(LGBT)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조례를 제정하면서 '아우팅 금지'를 포함하기로 했다. 아우팅 금지를 조례에 담는 것은 일본 47개 행정단위에서 미에 현이 처음이라고 교도통신은 보도했다.

일본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을 타인이 폭로하는 '아우팅'의 금지 조례가 첫 등장하게 됐다. 사진은 2018년 일본에서 열린 성 소수자 가두 행진 [EPA=연합뉴스]

일본에서 본인의 동의 없이 성적 지향을 타인이 폭로하는 '아우팅'의 금지 조례가 첫 등장하게 됐다. 사진은 2018년 일본에서 열린 성 소수자 가두 행진 [EPA=연합뉴스]

스즈키 에이케이 미에 현 지사는 의회 본회의에서 "아우팅이 가족 관계나 고용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고 인간관계를 끊어지게 해 개인을 고립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조례 제정 취지를 설명했다. 미에 현은 향후 관련 회의를 설치해 벌칙 수위를 검토할 예정이다.

조례 제정까지 나선 건 아우팅을 당한 사람이 충격으로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끊는 사례가 나오면서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강제로 폭로 당한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었다. "네가 게이인 것을 숨겨주는 것은 무리다"라는 내용과 함께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 그룹에 실명이 밝혀진 학생이 결국 학교 건물 6층에서 떨어져 숨진 것. 일본 언론은 아우팅을 빌미로 직장·학교 내 '성 소수자 괴롭힘'은 물론, 협박·금품 갈취 등 2차 범죄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19계기로 성 소수자 이슈 수면 위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도 성 소수자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성 소수 사이에 자신이나 동성 파트너가 코로나 19에 감염될 경우 성적 정체성이 강제로 공개되어 버린다는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일본 시가 현의 회사원 이마쿠라 슌(가명)도 그중 하나다. 그는 "게이는 머리가 이상하다"라고 말한 직장 동료에게 상처를 받아 주위에 성 소수자임을 숨기고 있다. 이마쿠라 씨는 "성 소수자들은 코로나 19 조사 과정에서 커밍아웃을 강요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에서도 최근 코로나 19와 아우팅 문제가 함께 대두했다.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일어나면서다. AP통신은 "한국에서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 혐오증이 커지고 이는 소수자들의 코로나 19 진단 검사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오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걱정해 성적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이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성 소수자들의 불안감은 또 있다. 법적 혼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의 병세를 제대로 알기 어렵고 수술 결정 등에서 배제될 수 있다. 동성결혼이 인정되지 않는 일본에서는 한쪽이 병을 얻어 위독해져도 법적으로 '남남'이기 때문에 의료·행정 면에서 개입하기 어렵다.

성 소수자 단체인 '모두를 위한 결혼'의 공동대표 데라하라 마키코 변호사는 "문제의 근본에는 차별이 있다"면서 "국가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는 것으로 그간의 편견이 누그러져 일본이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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