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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습니다" 57년전 흑인 절규, 지금은 "숨을 쉴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숨을 쉴 수 없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을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남긴 마지막 이 한마디가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는 미국 내 140여개 도시로 번져 나갔고, 유럽 등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적힌 마스크를 쓰고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모습. [AP=연합뉴스]

흑인 민권운동이 촉발된 지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곳곳에 숨 막히는 차별의 벽이 남아있다는 방증이다. 시위대의 구호는 예전보다 오히려 더 절절해졌고, 시위의 양상도 격렬해졌다.

1957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시민권이 부여된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차별, 그 때문에 시작된 민권운동에서 분기점이 됐던 지점들을 짚어봤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 민권 행진 도중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미 국립문서기록청]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 민권 행진 도중 링컨기념관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하고 있다.[미 국립문서기록청]

아프리카계 시민들의 민권운동은 1955년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에서 시작돼 1960년대까지 미국 전역에서 이어졌다. 미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가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말을 듣지 않아 경찰에 체포된 데서 시작된 일이었다. 흑인들의 분노는 버스 보이콧에서 시민운동으로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 시기 흑인 민권운동을 상징하는 말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란 문장이다. 1963년 8월 28일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미국 워싱턴DC에서 행진을 이끌며 연설할 때 나온 말로, 흑인 민권 운동사뿐 아니라 미국 역사에서도 중요하게 꼽히는 문구다. 끈질기게 지속한 민권운동으로, 흑인들은 1965년 모든 주에서 투표권을 얻게 되는 등 성과를 거둔다. 인종 등을 이유로 선거 자격을 박탈하는 일을 금지한 연방 투표권법이 통과된 것이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연설 중 가장 유명한 부분은 아래와 같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들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닌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날이 올 것이란 꿈입니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이름의 흑인 민권운동 단체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이름의 흑인 민권운동 단체 홈페이지. [홈페이지 캡처]

흑인들의 민권운동은 이후로도 계속됐고 1992년 LA 폭동처럼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사태로 치닫기도 했다. 그리고 2013년 아프리카계 시민들의 분노는 다시 한번 폭발한다. 2012년 플로리다에서 17세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백인 자경단원(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한 경비단체)에 의해 숨진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무죄를 선고받자, 흑인에 대한 백인 경찰들의 공권력 남용으로 누적됐던 이들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시민들은 소셜미디어(SNS)에 해시태그 '#BlackLivesMatter'를 공유하며 집결했다. 2013년 7월에는 엘리시아 가자, 패트리스 쿨러스, 오팔 토메티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이름의 사회운동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경찰의 가혹 행위를 비롯한 모든 인종차별 행위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에서 만들어졌지만, SNS 등을 이용해 전 세계 시민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  

미국의 가스펠 싱어 커크 드웨인 프랭클린, 프레드 하몬드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영상을 올린 모습. [CNN 홈페이지 캡처]

미국의 가스펠 싱어 커크 드웨인 프랭클린, 프레드 하몬드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고 찍은 영상을 올린 모습. [CNN 홈페이지 캡처]

이번 시위에서는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SNS에서도 관련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조지 플라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9분간 짓눌리며 고통스럽게 외친 말이었기 때문이다. 2014년 뉴욕에서 흑인 에릭 가너가 백인 경찰에 목 졸려 살해당했을 때도 나온 구호가 다시 한번 터져 나온 것이다.

9분 동안 바닥에 엎드려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는 시위도 벌어졌다. 유명인들은 "숨을 쉴 수가 없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은 모습을 SNS에 공유하고, 아티스트들도 관련 창작물을 올리며 참여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2013년에 비해 더 폭력적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공무원에 주어진 과도한 '면책권'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이들 중 대다수는 흑인인데 경찰이 처벌받는 경우는 별로 없다"며 "공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경우에도 면책권이 (경찰에게) 매우 효과적인 보호막이 되는 탓"이라고 비판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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