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송가인 낳고 신병···송순단 명인의 코로나 쫓는 '진도 씻김굿'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서 역신을 고이 보내드리는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서 역신을 고이 보내드리는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원래 밤새 해도 부족할 굿인디, 짧은 시간 안에 하라 허니 좀 답답하긴 하요만~.”

무형문화재 '진도 씻김굿' 전수조교 #31세 신내림 받고 전국 돌며 진혼굿 #"조상님 대접하고 베푸는 마음 담아" #한국문화재재단 40주년 무대서 갈채

하얀 고깔에 하얀 장삼을 두른 소복 차림 명인은 웃음기 섞은 인사말로 운을 뗐다. 이어 장구와 아쟁 가락에 얹은 소리가 계곡물처럼 흘렀다. 판소리 같기도, 곡(哭) 같기도 한 유장한 음률에는 슬픔보다 진한 먹먹함이 배어났다. 굿이라기보단 한편의 이별가를 듣는 듯했다.

코로나19 '역병' 이기려는 염원 담아

지난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 경복궁 수문군의 북소리로 시작된 무대가 역신을 물리치는 처용과 함께 달아올랐을 때 송순단 명인(60)이 등장했다. 그가 이날 선사한 것은 진도씻김굿 중에서도 ‘손님풀이’. 천연두나 홍역과 같은 역신을 청한 뒤 해를 끼치지 말고 좋게 해주고 가라는 축원하는 내용이다. 이날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진행됐다. 8분 남짓한 울림이 끝나자 자리에 함께 한 10여명의 주한 외국대사들을 비롯한 430여 관객들이 갈채를 보냈다.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서 역신을 고이 보내드리는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서 역신을 고이 보내드리는 ‘손님풀이’를 시연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요즘은 ‘미스 트롯’ 송가인의 어머니로 더 유명하지만 나라가 인정한 건 송 명인이 먼저다. 2001년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인간문화재의 전 단계)가 됐다. 1980년 국가무형문화재(제72호)로 지정된 진도씻김굿은 현재 악사 부문 보유자는 있지만 무가(巫歌) 부문은 송 명인을 포함해 전수조교만 둘이다. 이날 오후 공연에 앞서 만난 송 명인은 “(굿판에 입문하고) 첫 3년은 그냥 하다 이왕이면 남보다 잘하고 싶어서 씻김굿보존회에 찾아가 피 나는 고통 끝에 배웠다”고 돌아봤다.

진도씻김굿은 대대로 ‘세습무’(대물림된 무당)에 의해 전승돼 왔다. 여기에 강신무(신내림 받은 무당)인 송씨가 찾아왔으니 ‘텃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 타고난 목청은 인정받았으나 굿거리의 핵심인 사설(가사)을 안 가르쳐주니 한동안 애가 탔다. “다행히 선생 한분(고(故) 이완순 명인)이 나를 받아줬다. 일 있으면 같이 가 카세트테이프에 녹음 받아와서 혼자 익혔다. 처음엔 끼워주지도 않던 이들이 차츰 나를 찾더라.”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 앞서 분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에 앞서 분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송순단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씻김굿 전수교육조교(무가 부문)로서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모친으로도 유명하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진도씻김굿은 작두를 타는 강신무의 굿과는 사뭇 다르다. 불교에서 죽은 사람의 천도(薦度)를 위하여 지내는 제와 성격이 비슷하다. 송 명인 스스로는 “조상 앞에 상 차려 놨다는 기분으로 정직하게 소리에 열중하고. 영가(망자)들이 감동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굿을) 한다”고 설명했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씻김굿은 가·무·악 일체의 원형적 예술로서 가장 최근까지 성행한 곳이 진도”라면서 “쟁쟁한 무녀(당골)들이 돌아가신 뒤 송순단 선생의 소리가 더욱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세습무 '텃세' 딛고 2001년 문화재 전수조교

그가 신병을 앓기 시작한 것은 28세 때. 전남 진도군 지산면의 평범한 농부 아내로서 아들 형제에 이어 딸 은심(송가인 본명)을 낳아 기르던 중이었다. 3년을 버티다 31세에 신내림을 받고 무속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애들 아빠가 많이 반대했다. 살림하던 여자가 느닷없이 신 받아서 굿하러 다니고 밤새고 들어오니 오해도 많이 받고. 하지만 안 하면 몸이 아프니까. 결국 이걸로 애들 대학 뒷바라지까지 했다.”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가 끝나고 어머니 송순단 명인(왼쪽)을 만나러 분장실을 찾은 트로트 가수 송가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가 끝나고 어머니 송순단 명인(왼쪽)을 만나러 분장실을 찾은 트로트 가수 송가인.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요즘도 매달 5~6차례 의뢰 받아 다닌단다. “하루는 남양주, 다음날은 포항, 그 뒤엔 담양” 이런 식이다. “보살(신도)들이 진혼을 해야 할 때 초청한다. 엊그제는 묘 이장을 한 집인데, 아들이 폐암 말기더라. 폐암 낫게 해주라고 빌었다. 내 할 바는 다했으니 환자 분이 기분 좋게 마음 갖고 치료 받으라 일렀다.”

현대의 눈으로 보면 ‘미신’인데, 이런 시선을 거부했다. “미신이 아니라, 사람 살아가는 이치라 생각한다. 아픈 사람이 이것 저것 해보는데, 굿 해서 나은 사람도 실제 있다. (굿을 통해) 조상한테 대우하는 거다. 좋은 음식 대접하고 새옷 갈아입고 더 멋진 곳으로 가시라고 비는 거다.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나도 매년 한차례 사람을 불러 가족을 위한 굿을 한다. 굿으로 돈을 벌었으니 조상께 이를 감사드리고 다시 베풀려는 마음이다.”

딸 송가인 "전통문화 하나로 즐겼으면…" 

제대로 하면 밤새 해야 하는 씻김굿을 전수받으려는 이는 극히 드물다. 송 명인은 “인식도 그렇고, 힘드니까 안 하려고 한다. 수백년을 내려온 전통이 끊길까봐 안타깝다”고 했다. 자신을 찾는 이가 있으면 전국 어디로나 가는 이유다.

“딸(송가인)이 돈을 잘 버니까 굿을 안 하는 거 아니냐 묻는데, 나를 필요로 해서 부르는데 안 한다 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실망하겠어요. (그래서) 놀 수가 없고 힘 닿는 데까지 하려고 합니다.”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 중 춤의 신 처용을 청하는 대목. 남해안별신굿 대사산이(무당의 우두머리) 정영만의 구음을 선두로 마을 사람들이 따라 합창하며 무대에 올랐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28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 진옥섭) 창립40주년 기념 특별공연 ‘쉘위풍류’ 중 춤의 신 처용을 청하는 대목. 남해안별신굿 대사산이(무당의 우두머리) 정영만의 구음을 선두로 마을 사람들이 따라 합창하며 무대에 올랐다.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이날 객석엔 송가인도 자리해 2시간 여 함께 즐겼다. 김운태의 채상소고춤을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난 뒤 분장실에 찾아와 어머니를 살뜰히 챙겼다. 송가인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소리에 익숙했던 게 국악을 전공하고 트로트 가수로 나아간 발판이 됐다”면서 “굿도 우리 전통의 일부다. 현장에서 직접 접할 때 감동이 훨씬 크니 이런 행사를 통해 많은 분들이 전통문화로 즐길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