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번째 빛 본 경주 금동신발...1500년 전 신라 무덤 주인은

중앙일보

입력 2020.05.27 15:23

업데이트 2020.05.27 16:58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 금동신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망자 의례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란 타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현재 출토 상태 모습으로 한켤레가 그대로 수습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문화재청]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 금동신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망자 의례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노란 타원으로 표시한 부분이 현재 출토 상태 모습으로 한켤레가 그대로 수습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 문화재청]

녹색빛이 돌 정도로 부식된 타원형 금동 물체가 흙더미 속에서 빠끔히 몸을 내밀었다. 표면에 ‘T’자 무늬가 촘촘히 뚫려 있고, 둥근 금동 달개(瓔珞, 영락)가 주변에 흩어져 있다. 5세기 후반~6세기 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경주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신발의 발등 부분이다. 살아서 영화를 누렸을 주인공을 마지막까지 귀하게 모신 증표가 1500년 만에 햇살 아래 빛났다.

경주 황남동 120호분에 딸린 무덤서 발견
은제 허리띠, 금동 말 안장 등도 함께 나와
"왕족·귀족 무덤 가능성" 본격 발굴 기대감

경주 황남동 120호분 조사에서 신라 적석목곽묘 사상 13번째로 금동신발이 발견됐다. 적석목곽묘는 신라 시대엔 경주 시가지 안에서만 확인되는 양식이다. 문화재청과 발굴조사를 맡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7일 발굴현장에서 언론공개회를 열고 “지난 15일 조사에서 120-2호분에 묻힌 피장자 발치에서 금동신발 한 쌍을 확인했다”면서 “아직 발굴 초기 단계지만 1970년대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 나온 신발과 양식이 유사해 보인다”고 밝혔다.

5세기 신라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에선 발굴 당시 금관, 금제 허리띠, 금제 귀고리류 외에 금제 말 안장 등이 다수 나왔다. 이번에도 피장자가 안치된 주곽의 머리 부근에서 (금동관이나 관식에 쓰인) 금동판 등이, 무릎 부분에서 허리띠와 은제 장신구(추정)가 출토됐다. 별도의 부장곽에선 금동 말안장과 금동 말띠꾸미개를 비롯한 각종 말갖춤(마구) 장식, 청동 다리미, 쇠솥 및 다양한 토기 등이 출토됐다. 현장에서 공개된 유물들은 상당수 변형‧변색됐지만, 무덤 주인의 생전 위세가 상당했음을 추정케 했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갖춤 장식.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북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사진은 황남동 120-2호분에서 출토된 금동 말갖춤 장식. [사진 문화재청]

이번 조사에선 또 120호분 봉분이 이례적으로 마사토(화강암이 풍화하여 생긴 모래)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은 무덤 주인을 묻은 목곽 위에 돌을 쌓고 그 위에 봉분을 만드는 구조인데, 모래흙으로 조성할 경우 흘러내릴 우려가 있다. 그런데 120호분은 북서-남동 26.1m, 북동-남서 23.6m 규모로 봉분을 축조하면서 가운데를 마사토로 축조했다고 한다.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마사토 봉분 축조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 어떻게 해서 흘러내리지 않았는지 등은 향후 연구 과제”라고 덧붙였다.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에 위치한 황남동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됐지만 이후 민가 조성 등으로 훼손돼 고분의 존재조차 파악되지 않았다.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2018년 5월부터 유적 정비사업 일환으로 120호분 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지난해 120호분의 북쪽에 위치한 120-1호분과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을 추가로 확인했다. 이들은 적석목곽묘의 특성상 도굴되진 않은 걸로 보이지만 그 위에 주택이 지어지는 등 풍파 속에 유물 상당수가 유실됐을 수 있다.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동신발이 나온 120-2호분은 주 유적인 120호분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게 조성된 혈연관계의 무덤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20-2호분이 120호분의 절반 규모인데도 금동 관 장식, 마구 장식 등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향후 120호분에선 더 중요한 유물들이 출토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최근 심현철(37)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부산대 박사학위 논문( ‘신라 적석목곽묘 연구’)에서 출토 유물을 토대로 할 때 여자의 경우 신발이 나오면 신분이 1등급, 남자도 신발과 관 장식이 함께 나오면 최고 위계라고 설명한 바 있다.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신발과 함께 출토된 청동다리미. [사진 문화재청]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신발과 함께 출토된 청동다리미. [사진 문화재청]

경주 신라 무덤에서 금동 신발이 나온 것은 1977년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이번이 43년만이다. 앞서 일제 강점기와 1970년대 이뤄진 대규모 발굴조사 때 총 12켤레가 출토된 바 있다. 이들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게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 지내어 보내는 의례용으로 제작된 걸로 알려져 있다. 경주 주변인 양산, 대구 달서, 의성 탑리의 무덤에서도 금동 신발이 나왔고 이들을 합치면 20여 켤레이 이른다. 한편 2014년 전남 나주시 정촌 고분에서 거의 완전한 형태의 백제 금동 신발이 발굴되기도 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됐던 신라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됐던 신라 금동신발. [사진 문화재청]

2014년 발굴 당시의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중앙포토]

2014년 발굴 당시의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중앙포토]

경주=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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