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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엄마" 소리쳐 부를 땐, 쉰 살 넘은 사람도 아이가 된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42)

엄마, 간데이.
오냐.
엄마, 갈게.
그래.
엄마, 가요.
그래, 그래….

90대 엄마와 50대 막내딸이 몇 번씩이나 간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쉬 돌아서지 못하고 마당에서 서성인다. 그는 몇 달 전 큰 언덕같이 든든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홀로 되신 어머니께 자식들이 돌아가며 ‘당분간은 함께 있자’ 해도 내 집이 편하다며 집으로 가길 원하셨다. 마당에 심을 모종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고 애를 태우셔서 드디어 아버지 없는 빈집으로 모시고 왔다.

혼자 돌아 나오기 두렵다며 ‘동행해 주면...’ 하길래 나도 따라나선 길이다. 지인은 두 분이 살아 계실 적에도 자주 찾아뵙는 오남매 막내딸이다.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을 돌며 새 이불과 먹을거리, 마당에 심을 것을 이것저것 사 들고 들어간다. 고구마 모종 한단, 고추 모종 다섯 개, 오이 세 개, 가지 세 개 등. 지인과 나는 집 앞에 있는 손바닥만 한 밭에 참깨랑 고구마를 심었다. 어머니의 일주일 치 밭일을 반나절에 다 끝내고 들어와 손수 지어주신 하얀 쌀밥에 된장찌개, 상추 쌈 싸 먹으니 그보다 더 맛있는 밥은 없다. 어머니의 손맛은 흉내 낼 수 없다.

간다고 나선 그는 인사하고 돌아서서 입구에 세워진 엄마 닮은 몽당 빗자루 들고 마당 한번 쓸고 서성이고, 난간 벽에 걸린 호미 들고 빈 땅을 긁다가 또 인사하고, 창고를 둘러보며 헛헛한 인사를 자꾸 한다. 늙은 엄마도 기역자 허리를 하고 쓰러질 듯 서 있는 창고 한쪽에 기대서서 손을 흔든다.

그는 몇 달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홀로 되신 어머니께 ‘당분간은 함께 있자’ 해도 내 집이 편하다며 집으로 가길 원하셨다. 마당에 심을 모종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고 애를 태우셔서 아버지 없는 빈집으로 모시고 왔다. [사진 Pixabay]

그는 몇 달 전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홀로 되신 어머니께 ‘당분간은 함께 있자’ 해도 내 집이 편하다며 집으로 가길 원하셨다. 마당에 심을 모종을 사서 들어가야 한다고 애를 태우셔서 아버지 없는 빈집으로 모시고 왔다. [사진 Pixabay]

차를 출발시키고 한참을 말없이 운전만 하던 그가 잠시 쉬어가잔다. 그러면서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두 분은 평생을 농사지어 자식들을 도시에 내보내 공부시키셨다. 아버지의 부지런함을 보신 동네 지주는 많은 논밭을 맡기셨고 두 분은 밤낮으로 고생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뜨거운 여름날, 학교에서 우등상을 받아 밭가생이에 서서 흔들어 보이면 땀범벅이 된 모습으로 잠시 허리를 펴고 기뻐하시던 아버지, 억척같이 일하시며 오남매 모두 대학을 졸업시키신 아버지.

애잔해 하는 그녀에게 아버지가 미울 땐 언제였냐고 물으니 아들은 결혼할 때 집도 사주시고, 딸은 그냥 시집보냈다며 당신이 아파도 아들은 모르게 하시고 딸만 불러들여서 아들딸 차별이 심했다며 웃는다.

살아온 고집을 부리시면 ‘늙으면 포기도 하셔야지요’라며 자식에게 하듯 늘 훈계조로 말한 것, 부모님이 갖고 있는 적은 돈도 내 돈인 양 이래 쓰라 저래 쓰라 잔소리한 것, 두 분 중 한 분이라도 아프면 서로 덕 본 것을 키 재기 하듯 네가 가장 많이 덕 봤으니 네가 모시라 나는 못 모신다며 형제간에 투덕거린 것, 이제 그만 돌아가시라고 왜 오래 살아 자식들 힘들게 하냐며 마음에 없는 말로 상처 준 아픈 말들이 생각나 오랫동안 울먹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잠시 마음이 바뀐다. 언젠가는 두 분이 모두 돌아가실 것이고 고아가 되는 상상을 하면 하늘이 무너질 듯 두렵다. 엄마가 아직 정정하게 사시는 것에 감사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엄마”를 부르면 아이가 된다. 엄마의 잔소리와 투정이 음악같이 들리는 지금의 마음이 바뀌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엄마까지 떠나면 어떻게 살아질까…. 그는 상상만으로도 겁난다. 부모님과 남편까지 다 떠나보낸 나도 꿋꿋이 살고 있건만,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두렵고 무섭다.

저녁 뉴스엔 경제가 안 좋은 요즘 가장들의 고뇌를 인터뷰한다.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투잡, 쓰리잡을 뛰며 일하는 아버지들, 그들이 죄인마냥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난데없이 내 눈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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