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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배후설' 음모론에 "할머니 모르는 사람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특정 세력에 의해 기획됐다는 이야기가 확산되고 있다. 일부 커뮤니티는 물론 친여 성향 방송인까지 가세해 이 할머니 뒤에 특정 세력이 있다는 ‘배후설’을 퍼트리며 이 할머니 '주장 흠집내기'에 나섰다.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 발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기자회견을 열어 입장 발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뉴스1

곽상도 의원 개입설까지…"고발 검토"

지난 25일 대구 인터불고호텔에서 열린 이 할머니의 2차 기자회견이 끝나자 일각에선 ‘곽상도 의원 주도설’이 불거졌다.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이 기자회견을 기획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곽 의원이 이 할머니 휠체어를 밀고 회견장에 입장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의혹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 할머니의 휠체어를 끌고 온 관계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곽상도씨는 못 봤다. 제가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갔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곽 의원이 대구 기자회견에 참석했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같은 시각 곽 의원은 국회 본청 228호에서 ‘위안부 할머니 피해 진상규명 TF’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트위터 계정에 한 글쓴이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캡쳐]

트위터 계정에 한 글쓴이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곽상도 미래통합당 의원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주장했다. [트위터 캡쳐]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소셜미디어에서 소문을 퍼트린 글쓴이는 “혼선을 드려 죄송하다”면서도 “곽상도가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개입한 것은 맞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곽 의원 측 관계자는 “우리도 할머니 연락처나 위치를 잘 알지 못하는데 (곽상도 의원 개입설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며 “이런 자료를 모아 허위사실 유포로 고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유튜버 개입설도 제기됐다. 한 커뮤니티에선 ‘이용수 할매한테 작업 들어간 증거’라는 제목으로 이 할머니 기자회견에 정치 세력이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보수 유튜버가 기자회견 직후 이용수 할머니에게 “할머니 힘내세요”라고 말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한 커뮤니티 회원의 글. [딴지일보 게시판 캡쳐]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에 배후 세력이 있다는 한 커뮤니티 회원의 글. [딴지일보 게시판 캡쳐]

거듭 제기되는 '최용상 배후론' 

배후설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일 이 할머니의 첫 번째 기자회견이 열린 직후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는 최용상 가자인권평화당 대표가 배후에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최 대표는 8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해서 기자회견을 연 것”이라며 “(기자회견 시작하기 전까진) 할머니께서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있었다”고 반박한 바 있다.

2차 기자회견이 있고 난 뒤로부턴 친여 방송인 김어준씨까지 나서 ‘최용상 배후론’을 주장했다. 김씨는 26일 자신이 진행하는 tbs 라디오 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할머니가 굉장히 뜬금없는 얘기를 하셨는데 여기서부터 누군가의 의도가 반영돼 있다”며 “정대협은 일관되게 위안부 문제에 집중했고 강제징용(정신대)을 주 이슈로 삼던 단체는 따로 있다”며 최 대표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 할머니가 준비한 사전 기자회견문을 두고선 “‘소수 명망가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표현은 정치권 용어로 일상용어가 아니다. 할머니가 쓴 문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김어준씨. 뉴스1

김어준씨. 뉴스1

이에 대해 2차 기자회견 사회를 본 서혁수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할머니께서 말씀한 내용은 예전부터 자주 들어왔던 내용이다”며 “조금씩 다른 내용도 있었지만 기본 논조는 같아 새로울 게 없는 이야기였다”고 반박했다. 기자회견문 문구와 관련해선 “기자회견문과 기자회견하고 달랐다”며 “사전에 작성된 기자회견문은 아직 보지 못해 나중에 정리해서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답했다. 그는 “할머니를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로 뜻이 왜곡돼 전달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두고 음모론이 연이어 제기되자 ‘이용수 할머니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배후세력’이니 토착왜구이니 떠드는 것은 이들이 이용수 할머니가 던지는 메시지를 수용하는 데에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뭘 알아야 고치기라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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