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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조홍준 인의협 정책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사상 초유의 의료대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느낌표만 있고 마침표는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의료계 왕따를 감수하면서 끝까지 진료실을 지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의 입장이 궁금했다. 수차례 인터뷰를 고사한 인의협 조홍준(趙弘晙) 정책위원장(40·서울중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을 어렵게 만나 봤다.

―이번 폐업 사태로 마음 고생이 심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인의협이 반 의사 단체로 낙인찍힌 것이 안타깝습니다.의사에게 조금만 불리한 말을 하면 ‘너 인의협이지’하는 식입니다. 마치 과거 공산당 대하듯 하지요. 지금도 병원에서 동료 의사들을 대할 땐 서먹서먹하고 감정의 골이 깊게 패어져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인의협은 좋은 의사,나머지 의사는 나쁜 의사’란 이분법적 단정은 곤란합니다. 인의협 의사들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환자 곁을 떠날 순 없다는 소신을 지켰을 뿐입니다.”

―한 네티즌이 PC통신에서 이번 사태를 ‘정부의 패배,의사의 상처,국민의 피해’란 말로 요약했는데요.정부와 국민은 그렇다치고 ‘의사의 상처’란 표현엔 동의하시는지요.
“수가 인상 약속을 받아낸 것이나 약사법 개정 협상을 7월 임시 국회로 앞당긴 것도 그렇고,의보 수가를 결정하는 심사평가원장도 의료인이 됐습니다. 분명 소득이 있었지요. 하지만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 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습니다.의사들은 적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었습니다. 의사들이 상처받은 것은 맞지만 결코 영광스런 상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실추된 의권(醫權) 을 회복하기 위해 폐업이란 극단적 수단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데요.
“방법이 틀렸지요.중환자실과 응급실에서까지 철수하겠다는 발상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어떠한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의협의 방침은 극단적인 노동 투쟁보다 더하다는 생각입니다.의권이란 의사가 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인정해주는 것이라야 합니다. 의사는 먼저 뼈를 깎는 자기 반성부터 해야 합니다.차라리 진료를 계속하면서 모든 의사들이 단식에 나섰다면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의사들의 주장이 국민들에게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평소 의사들이 국민 보건을 위해 발벗고 나서는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선 의사들의 대표 단체인 의협이 반성해야 합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전염병 유행 등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의협이 나서서 정부를 질책하고 대책을 발표합니다. 그들에게 의협은 신뢰 받는 전문 단체이지만 우리에게 의협은 이익 단체로 인식될 뿐입니다. 살인적인 의료비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이지만 미국민의 90%가 자신의 주치의를 신뢰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되새겨 봐야 합니다.”

―의사들의 주장 가운데 일리 있는 부분은 없습니까. 현행 의약분업안이 임의조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데요.
“일반 의약품이라도 환자가 약사에게 증상을 이야기하고 약사가 진단해 약을 판매하는 것은 임의조제로 명백한 의료법 위반입니다. 의사는 약사를 믿지 못한다고 하지만 임의조제는 국민들이 용납치 않을 것입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모의 환자를 약국에 투입해 임의조제 여부를 모니터한다면 임의조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임의조제를 막기 위해 알약의 최소 판매량을 30정으로 정하자는 의협의 주장은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비현실적 제안입니다. 개인적으론 최소 판매량을 10정으로 제한하는 타협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장지 알약의 낱개 판매를 금지함으로써 임의조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 구실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은 임의조제로 감기 등 가벼운 환자들을 약국에 빼앗길 것으로 우려하는데요.
“감기 환자가 모두 의원에 가야한다는 지적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의약분업이 잘 되어 있는 외국에서도 가벼운 증상을 앓는 환자 1백명 중 25명만이 의원이 가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벼운 증상에 대해선 환자가 직접 약을 고를 수 있어야지요. 이 점에서 아스피린 등 진통소염제의 슈퍼 판매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히려 국민 보건을 위해 의사들이 걱정해야 할 대상은 고혈압이나 당뇨같은 만성 질환자입니다. 현재 이들 환자의 30%만이 의사를 찾고 있지요.이들이야말로 의사의 전문 치료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만성 질환자들이 왜 의사를 찾지 않고 약사나 민간 요법 등에 매달리고 있는지 의사들은 고민해봐야 합니다.”

―또다른 쟁점인 의약품 분류나 대체조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의사들은 미흡하게 생각하지만 제가 보기엔 정부의 의약품 분류안이 의사에게 불리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일부 스테로이드 함유 연고가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된 것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분류라고 봅니다. 미국에서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된 잔탁이 국내에선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았습니까. 대체조제 역시 제조 회사간 약효가 같음을 보장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실험만 뒷받침 된다면 모든 약을 약국에서 비치하기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비현실적인 수가로 교과서에서 배운 양심 진료가 어렵다는 주장이 있는데요.
“소득의 3%만 의료보험료로 내는 우리 수가 체계는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의보 수가는 올려야지요. 그러나 그것이 의료보험료가 됐든 세금이 됐든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하는 것입니다. 국민적 설득과 동의가 필요하다는 뜻이지요. 수가가 올라가면 과연 의료서비스가 개선될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해 의사들의 책임있는 답변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보건 분야 예산 지원에 인색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정부의 역할은 어떠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지역의보 재정의 50% 국고 보조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기본적으로 보건 예산을 투자보다 소비로 생각하는 경제 관료들의 인식이 문제입니다. 공공 의료가 취약한 국내 환경을 감안할 때 전체 의료서비스의 80% 이상을 맡고 있는 민간 의료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동네의원 살리기를 위해 장기 저리로 의보공단에서 자금을 빌려준다거나 전공의들의 교육환경 개선에 국가 예산을 투입하는 방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폐업 사태의 특징은 전공의 등 젊은 의사들이 주도했다는 점인데요.젊은 의사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무엇일까요.
“의사라고 입장이 모두 똑같지 않습니다.새로 배출된 의사들의 진료 환경이 열악한 것은 사실입니다.20% 의사가 80% 소득을 누린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그러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까지 뛰쳐나오는 방식은 곤란합니다. 오히려 의료계의 비리를 과감하게 척결하는 자정 노력을 보여주는데 젊은 의사들이 앞장서야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약분업이 순조롭게 정착될 것으로 보십니까.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요.
“의사와 약사간 이해 관계가 걸려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이룰 수 밖에 없습니다.의약분업도 결국 의사나 약사보다 국민을 위해 도입된 제도 아닙니까. 구하기 힘든 약을 일부러 처방하는 의사나 임의조제를 일삼는 약사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말아야합니다.그러나 반목과 대결 구도를 통해 타율적으로 정착되기 보다 의사와 약사의 대승적 협조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하겠습니다. 제일 우려되는 것은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을 다니는 만성 질환자들이 한꺼번에 약국에 몰리는 일입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계도기간 중 환자들에게 처방전을 공개해 미리 약을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의사들의 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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