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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북극비사]남극까지 진출했던 북극 썰매개가 사라지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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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그린란드 얼음물 속을 달리는 썰매개.[스테판 올센 트위터=연합뉴스]

그린란드 얼음물 속을 달리는 썰매개.[스테판 올센 트위터=연합뉴스]

18. 그린란드 썰매개 

언뜻 보면 우리 진돗개를 무척 닮았다. 뾰족한 귀, 날카로운 눈매에 누렁이 또는 흰둥이, 간혹 있는 네눈박이까지. 두꺼운 쇠줄에 묶인채 북극의 백야 (白夜) 가 지루하다는 듯 하루종일 바닥에 늘어져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진돗개보다 훨씬 크고 위협적이었다. 낯선 사람이 다가가자 온 들판이 개울음 소리로 시끄러웠다. 수년전 5월말 빙하로 유명한 그린란드 일루리사트에서 만난 썰매개의 모습이다. 들판 곳곳엔 겨울을 기다리는 낡은 썰매들이 눈에 띄었다. 그린란드 썰매개는 수천년전 원주민 이누이트와 함께 시베리아에서 알래스카와 캐나다 동토를 거쳐 그린란드로 들어왔다고 한다.

개는 사람과 각별한 유대감을 갖는 동물이다.  의리와 희생정신, 용맹성으로 우리 인간사회를 자주 놀라게 만든다. 극지라는 혹한의 공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사냥을 하고 썰매를 끌고 북극사람들을 지킨다. 그들의 활약 공간은 북극에 그치지 않았다. 남극이라는 지구 반대편의 가장 추운 공간에도 개들이 이루어낸 기록들이 존재한다. 개들은 약 100년 동안 그들은 남극개척의 동반자이면서 믿을 수 있는 동료였고 희생자였다.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중부 일리마나크 원주민 마을의 썰매개들. 온난화로 썰매를 끌 일이 줄면서 그린란드의 썰매개는 5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최정동 기자

온난화가 바꿔놓은 북극의 생태. 그린란드 중부 일리마나크 원주민 마을의 썰매개들. 온난화로 썰매를 끌 일이 줄면서 그린란드의 썰매개는 5년 사이 3분의 1로 줄었다. 최정동 기자

남극점 정복을 위한 경쟁과 비사

인류 역사상 남극점을 세계 최초로, 그리고 두번째로 도달했던 로알드 아문센과 로버트 스콧은 노르웨이와 영국을 대표하는 탐험가로, 1911년말 남극점 정복을 향한 편도 약 1700km의 운명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아문센팀은 프람호를 타고 1911년 1월14일 로스해에 도착한 후, 10월20일 베이스캠프를 출발하여 12월14일 남극점에 도달했으며 탐험대 전원을 출발 99일만에 베이스캠프로 무사히 돌아왔다.

반면 스콧팀은 테라노바호를 타고 아문센팀보다 10일 빠른 1911년 1월4일 로스해에 도착했지만, 11일이 늦은 11월1일에야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 결국 34일 늦은 1912년 1월17일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스콧팀은 돌아오는 도중에 안타깝게도 전원 생을 마감했다. 출발한지 150일, 베이스캠프를 240㎞, 다음 데포(저장소)를 불과 18㎞ 남겨둔 곳에서다.

로얄드 아문센은 1911년 12월14일 개썰매를 이용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로얄드 아문센은 1911년 12월14일 개썰매를 이용해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개가 가른 남극점 도전 경쟁 

사실 아문센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신루트를 택했고, 스콧은 이미 새클턴팀이 남위 88도23분까지 도전했던 루트로 갔기 때문에 비록 출발은 늦었지만 결과는 알수 없었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 두 팀의 레이스에서 승부를 결정한 여러 요인들을 분석했는데, 그 중 하나가 개의 활용 차이였다고 설명한다.

아문센은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이동수단을 플랜B없이 개썰매 만을 이용하기로 정했고 전문가를 고용하여 52마리의 그린란드 허스키를 엄선하고 훈련시켜 남극으로 데려갔다. 반면 스콧은 이전에 개썰매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 때문에 개보다 힘이 좋고 수송능력이 뛰어나 보이는 말과 많은 비용을 들여 제작한 모터썰매를 주요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다. 개썰매는 보조수단으로 선택했다. 이 이동수단의 차이는 결국 커다란 결과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100여년 전 아문센과 스콧이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남극점에는 이제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미국의 과학기지가 들어서 있다.

100여년 전 아문센과 스콧이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남극점에는 이제 두 사람의 이름을 딴 미국의 과학기지가 들어서 있다.

아문센팀의 개들은 이미 남극과 비슷한 북극의 추위에 익숙해 있었다. 북극의 전통적인 교통수단으로서 오랜 역사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숙련된 원주민 조련사와 함께 남극의 눈과 얼음 위 어떤 지형조건도 쉽게 극복했다. 또 개의 식량은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같은 것을 먹거나 탐험 중 포획한 펭귄ㆍ물개 등으로 충당해 짐의 양과 부피를 최소화했다. 아문센팀은 철저하게 탐험의 성공만을 위한 전략으로 개를 활용한 것이다. 탐험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개는 11마리에 불과했다. 나머지 41마리는 탐험대원과 생존한 개들의 식량이 되었다고 한다.

반면, 스콧팀이 데려간 17마리의 말은 남극대륙 도착 직후 바로 절반이 죽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려웠다. 말에게 먹일 사료는 남극에서 조달할 수가 없어 전부 처음부터 가지고 다녀야 해서 짐의 양도 크게 늘였다.  몸무게가 무거운 말들은 남극의 눈위에서 속도가 크게 떨어졌다. 크레바스와 같은 불규칙한 지형에서 짐을 싣고 이동하는데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모터썰매는 엔지니어가 합류하지 못해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차이로 인해 스콧팀은 아문센팀보다 출발부터 늦어졌고 이동 효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결국 한 달 이상의 격차로 첫 남극점 정복이라는 성과를 아문센팀에게 허용했고, 그의 탐험대는 모두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맞은 것이다. 스콧도 대탐험가인 프리쵸프 난센의 조언을 듣고 개를 활용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수단이었다. 특히 영국인들의 개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개를 식량으로 쓰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든 것도 이유일 것이다.

부숴진 집, 무료하게 늘어진 썰매개. 지구온난화가 바꿔놓은 그린란드 풍경 중 하나다. 최준호 기자

부숴진 집, 무료하게 늘어진 썰매개. 지구온난화가 바꿔놓은 그린란드 풍경 중 하나다. 최준호 기자

세계 최초로 남극점을 밟은 동물.

아문센팀이 남극점에 도달했을 때 당연히 18마리의 그린란드 허스키들도 거기에 있었다. 개썰매 구조상 어쩌면 사람보다 몇초 먼저 남극점을 밟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문센이 남극점에서 찍은 사진에도 그 개들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람이 먼저인지 개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을 제외한다면 최초로 남극점을 밟은 동물은 개였다.

남극대륙이 개와 인연을 맺은 것은 1899년 2월17일 영국탐험대에 의해서 75마리가 상륙하면서부터였다. 이후로 남극에서 ‘개의 역사’는 100여년을 이어왔다. 혹한의 환경 속에서 인간이 탐험과 과학활동을 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1994년 2월22일 마지막 14마리의 개가 공교롭게도 스콧의 모국인 영국의 로테라기지에서 나오면서 남극에선 더이상 개를 볼 수 없게된다.  남극에 대한 국제적인 약속(마드리드 의정서)에 의해 외래종의 유입이 제한됐기 때문이다. 개가 퍼트릴수 있는 질병이 남극의 야생동물에게 큰 위협이 될수 있었다.
남극에서 이루어낸 인간의 초기성과가 개와 함께였다고 하니 개와 인간의 인연을 다시보게 되지만, 반면 그들의 희생이 처음부터 예정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니 미안해진다. 그린란드에서 만났던 이 개들의 선조가 인간과 함께한 남극정복과 초기 과학연구에 일등공신이었다.

썰매개들은 이제 이렇게 관광상품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임현동 기자

썰매개들은 이제 이렇게 관광상품으로 역할이 바뀌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제 이 개들에게 도전할 대상이 사라지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는 북극지방 얼음땅을 줄여 사냥이나 어업활동에 필요한 개썰매를 이용할 시간을 줄인다. 가끔 관광객들에게 개썰매체험을 하는 일이 주 업무가 되었다. 또 관광객이 늘면서 따라 들어오거나 그동안 접촉하지 않았던 동물들로부터의 질병으로 인해 많은 희생이 생기기도 한다. 결국 그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도전과 활기찬 삶의 기회가 대부분 묶여지내는 시간으로 대체되고 있다. 100여년전 남극을 정복했던 그들의 선조가 가진 용맹함이 사라지고 있다.

19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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